글 쓰는 엄마의 하루 생존 루틴

처참한 하루에서 찾은 나만의 글쓰기 시간관리 전략

by 미고

하루에 4시간에서 6시간씩 읽고 써라. 시간을 없다면, 좋은 작가가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아저씨는 말했다.
어쩜 이렇게 절묘한지, 아이들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하원 전까지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딱 6시간이다. 집안일 포기하고, 점심시간 포기하고, 각종 일처리 포기하면 어쩌면 나도 6시간은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작가지망생 시절,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밤새워 대본을 완성하던 그때는 시간이 내 편이었다. 6시간? 그건 기본이었다. 때로는 12시간도 죽치고 앉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겨우 6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다니.


글 쓰는 엄마의 현실은 이렇다.
첫째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나면 둘째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보낸다. 들고 갈 장난감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친구네 집에 들러 놀고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 마음 약한 엄마는 아이의 애교에 넘어가기 일쑤고 그렇게 모두를 등원시키고 집에 오면 10시다.


후련한 피로감을 채우기 위해 사과와 땅콩잼을 곁들여 먹는다.
주 3회 필라테스를 한다. 20대 때 다이어트 한다고 하루 세 시간씩 헬스장에서 살다가 발목 인대가 파열됐었다. 둘째를 낳고 부동산 투자를 한다며 애 낳은 지 3주 만에 임장을 다니다가 무릎까지 나가버렸다. 더 이상 뛰거나 무게를 치는 운동은 불가능하고, 재활 목적으로 운동을 한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둘과 보조를 맞추려면 운동은 필수다. 나는 정말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 점심을 해 먹고 커피를 내리면 또 한 시간이 훌쩍. 그렇게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남은 건 고작 3~4시간 정도다. 스티븐 킹 아저씨가 하루 4시간이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브런치에 글도 써야 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콘텐츠도 만들어야 한다. 주로 책 소개 콘텐츠이기 때문에 독서도 필수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지만, 다 중요해서 뭐부터 해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또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가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이가 화장실이 너무 급했는지 줄을 기다리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옷이 다 젖었어요.” 로 시작해 요즘 아이의 유치원 생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은 또 흐른다.


이제 작업 좀 시작해 볼까.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그런데 어젯밤 아이들이 놀고 어질러진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저것만 치우고 하자.’ 시간은 또 흐른다.


수십 장의 대본도 초인적인 힘으로 뚝딱 쓰던 내가, 이제는 인스타 캡션 하나에 두 시간을 쓴다.
‘이게 무슨 퇴화지?’ 라는 생각이 스친다. 결국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 되면, 오늘의 콘텐츠를 내일의 나에게 미룬다.


그렇게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지금은 손바닥 만한 인스타 창 앞에서 멈춰 선다. 완성도에 대한 강박, 반응에 대한 걱정,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붙잡는다.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은 아이들이 하원하기 2시간 전. 이제는 정말 해야 된다는 절박함이 내 머리와 손가락을 움직인다. 학교 다닐 때도 벼락치기로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다. 이런 습관이 고등학교 때는 통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세 살 버릇은 여든 간다. 하지만 이건 내 생존의 문제다. 벼락치기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들이닥쳐 나의 고요를 찢기 전에,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드디어 결심한다. 완벽을 좇던 작가에서, 현실을 품은 작가로. 이 정체성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전의 나는 완벽한 결과물이 나와야 직성이 풀렸다. 몇 번이고 고쳐 쓰고, 밤을 새워서라도 만족할 만한 완성도에 도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이들이 “엄마, 배고파!” 하고 부르는 순간, 모든 글쓰기는 중단된다. 완벽함을 추구하다가는 아무것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만의 새로운 원칙을 만들었다. 하루에 가지 일만 끝내자. 그리고 완벽주의는 개나 줘버리자. 완료주의.

60점짜리 글이라도 세상에 나오는 게, 100점짜리 글이 서랍에 묻히는 것보다 낫다. 아이들 때문에 중간에 끊어진 글이라도, 오타가 있는 인스타 캡션이라도, 일단 완성해서 게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목표다.


하루에 콘텐츠 1개씩, (2개는 절대 금지다) 브런치 업로드는 주 1회, 일요일 하루로 정한다. 부담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엄마만의 루틴이 필요했다. 아이 때문에 생기는 변수에도, 갑자기 생긴 스케줄에도 하루 최소 2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수준의 콘텐츠만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루틴을 정착시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욕심을 부려 하루에 여러 개를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그다음에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하나에 하루 종일 매달렸다가 결국 포기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최소 단위의 성공’이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 하나만 정하고, 그것만은 반드시 해내는 것.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어느새 루틴이 됐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늘 미뤄두던 생각하는 시간을 편하게 갖는다. 하지 못해도 괜찮다. 하루에 목표한 일을 끝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오히려 즐기면서 할 수 있다.


때로는 아이들이 일찍 잠든 날, 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날, 여유 시간이 늘어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쁘다. 의무가 아닌 즐거움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스티븐 킹이 말한 4~6시간을 온전히 글쓰기에만 쏟을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하루 2시간이라도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료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찾은 글 쓰는 엄마의 생존법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지속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송작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하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10 명의 독자 앞에 서려면 길이 멀다는 안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천천히 간다. 속도를 올리다 중간에 포기하는 두렵기 때문이다. 매일 작은 성공을 쌓는 , 그것이 끝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제는 안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 하원 30분 전까지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성하는 것, 그게 오늘의 승리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작가지망생을 그만둡니다]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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