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같은 콘텐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초심자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숙련자의 마음에는 그 가능성이 아주 적다.”
–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글쓰기 10년 경력.
그러나 내가 초짜였다는 걸 깨닫기까지,
뼈아픈 시간이 필요했다.
방송작가 7년, 웹드라마 시나리오, 애니메이션 작가까지. 이력만 놓고 보면 글쓰기 경력이 10년도 넘는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 하나쯤이야….”
자신감이 넘쳤다. 글은 늘 써왔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이야기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책도 꾸준히 읽어왔고, 육아와 투자 경험도 있었다. 뭘 써도 사람들이 관심 가져줄 거라고 생각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는 제작진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청자들이 좋아할 소재를 찾아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웹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는 젊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트렌드를 파악했고,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할 때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경험들이 있으니까, 인스타에서도 잘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엉망진창인 피드, 방향을 못 잡은 릴스, 애매한 책 사진들. 내가 올린 콘텐츠들을 보면서 스스로 물었다.
"글은 잘 쓰는데, 왜 콘텐츠는 안 되는 거지?"
다이소 같은 내 피드, 50명에서 멈춰 선 팔로워
오늘은 책 사진, 내일은 육아 이야기, 모레는 투자 경험담. 마치 다이소 같은 피드였다. 이것저것 다 있지만 정작 뭘 파는 곳인지 모르겠는 그런 곳. 시의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시즌엔 트리 만들기 릴스, 설날에는 아이의 세뱃돈을 갈취하는 엄마의 모습, 에어비앤비 셀프 페인팅하는 영상까지… 그냥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은 다 포스팅했다.
그러다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책 이야기로 돌아갔다. 일관성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계정이었다. 팔로워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반응은 적었고,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좋아요는 10개 미만이 대부분이었고, 댓글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족들과 지인들이 눌러주는 좋아요가 전부였다. 어느 날 피드를 정리하다가 든 생각이 있었다.
"대체 나는 누구고,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그나마 지인들과 우연히 유입된 분들 덕분에 50명까지는 어떻게 갔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너무 어려웠다. 남들은 한 달 만에 천 명, 만 명 잘만 성장하는데 나는 팔로워 100명 모으기도 너무 힘들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제공하는 팔로워 분석 인사이트도 100명이 넘어야 확인할 수 있는데, 나는 분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새로운 팔로워가 생겨도 며칠 지나면 언팔로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50명에서 49명으로, 다시 50명으로, 51명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를 보며 답답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1만 조회수 찍어도 팔로우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
다른 사람들의 조회수 터지는 영상들을 보면서 따라 해봤다. 트렌드 음악에 맞춰 릴스도 만들고, 화제가 되는 책도 소개해봤다. 정말 우연히 내가 아이의 세뱃돈을 갈취(?)하는 영상이 1만 조회수를 찍었다. "드디어 됐다!" 싶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조회수와 공유는 높았지만 팔로우로 연결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내가 육아 전문 계정도 아니었고, 만든 콘텐츠가 그 순간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재밌네”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정도였지, "이 사람을 계속 팔로우하고 싶다"라는 마음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좌절했다. 조회수가 높으면 팔로워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콘텐츠는 소비했지만 나라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책도 읽고, 육아도 하고, 투자도 하고, 부업도 하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모든 걸 하는 나의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잘 쓰는 글이 '읽히는 콘텐츠'가 아니란 걸 깨달음
그때 깨달았다. "좋은 글은 사람을 움직이지만, 읽히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숙련자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더 초심자의 관점을 잃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잘 쓴다는 자만심이 있었나 보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방송 대본을 쓸 때는 시청자들을 고려했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면서 썼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내가 재미있게 쓴 글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거야." 이런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글을 잘 쓰려고만 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건 배우고, 시도하고,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내가 놓친 건 바로 이 마음이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그 깨달음 이후로 나는 '초심자처럼' 배우기 시작했다. 누가 잘하나 관찰했다. 내가 자주 보는 계정들은 왜 자꾸 보게 되는 걸까? 어떤 글이 마음에 와닿는 걸까? 팔로워가 많은 사람들의 콘텐츠를 하나하나 분석해 봤다.
그들의 콘텐츠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관된 메시지, 명확한 타깃, 그리고 진정성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분명했다.
실패한 콘텐츠도 복기했다. 왜 이 게시물은 반응이 없었을까? 제목이 애매했나? 사진이 임팩트가 없었나? 내용이 재미없었나? 하나하나 분석해 봤다. 읽히는 글과 안 읽히는 글의 차이도 분석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첫 문장이 중요했고, 제목이 중요했고, 공감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한순간에 초보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보이는 게 많아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글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전문가의 조언보다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솔직한 경험담을 더 찾고 있었다.
진짜 시작선에 서다
지금의 미고스토리 피드는 그 시절의 흔적 위에 다시 쌓아 올린 것이다. 50명에서 멈췄던 실패를 밑거름 삼아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때 깨달은 것들이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도움이 될까?"
숙련자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매일 배우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면 따라 해보고, 실패하면 또 배우고, 성공하면 그 이유를 분석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숙련자인 줄 알았지만, 나는 초짜였다.
그런데, 초짜로 돌아가길 잘했다 싶다. 50명에서 멈췄던 나는, 그때야말로 진짜 시작선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선에서 배운 겸손함이,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다. 이제는 ‘초짜’라는 말이 조금 자랑스럽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초짜다.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작가지망생을 그만둡니다]의 한 편입니다.
지금 ‘라이킷’ 누르고, 1화부터 정주행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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