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지망생을 그만두는 이유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 Mike Tyson,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복서
복싱 경기 전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의 전략에 대해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진.”
전략을 잘 세워도 실제 싸움이 시작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 역시 다시 작가 지망생으로 되돌아와서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방향은 두 가지였다.
유명해져서 책을 내거나. 책을 내서 유명해지거나.
작가로서 내 이름 석자를 알리는 것이 먼저였다.
내가 쓴 책을 통해 작가라는 명함부터 가져야 했다.
그래야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떳떳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에 ‘출간작가’라는 타이틀만큼 확실하고 심플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난 좀 더 큰 꿈을 꾸기로 했다. ‘1년 안에 베스트셀러 작가되기’가 그 목표였다. 그러려면 단순히 글만 쓰기보단 좀 더 정교한 전략이 필요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한 플랜을 메모하면서
나는 조만간 <유 퀴즈>에 출연하는 상상까지 했다.
“아니 어쩜 글을 그렇게 잘 쓰세요?
원래도 방송작가셨다면서요?”
“하하, 저는 그냥 쓰는 사람이에요.”
원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최대한 겸손해 보이는 대답도 여러 가지로 생각했다.
나만의 스토리로 잘 포장해서 인지도를 늘리는 꽤 그럴싸한 전략이었다. 지망생이 1년 안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면 시장에서 정말 잘 먹히는 글을 쓰거나, 갑자기 인기가 상승한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내가 보기엔 그 방법뿐이었다.
후자가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SNS를 통해 인지도를 좀 더 올린 다음에 투고를 하는 것이었다.
우선 SNS 계정에 컨셉을 잡는 것이 필요했다.
책프로그램 방송작가였으니 가장 자신 있는 책소개를 중심으로 하고, 내가 쓴 글을 소개하는 콘텐츠로 채워보기로 했다.
여기서 바로 가장 큰 고민은 내가 방송작가였다는 걸 알리느냐 마느냐였다.
현업도 아닌데 방송작가 출신임을 알리는 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작가인데 콘텐츠가 왜 저래?라는 비난,
작가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혹은 역시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니까 신뢰가 가네, 역시 작가라서 콘텐츠가 깊이가 있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에서. 내 출신을 자랑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프로필만 수백 번 고쳤다.
방송작가 출신?, 전 방송작가? 책 프로그램 작가? 여러 번을 수정하다가 결국 ‘방송작가’ 하나만 남겨두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내 경험 밑천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 다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서 반응을 살펴보고 기획안을 준비해서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
아니 이런 작가는 도대체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지?
SNS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1만 팔로워를 도달했네. 이렇게 핫한 인플루언서가 우리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니.
‘이건 베스트셀러 예감이야!’
출판사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책을 낸다.
하지만 현실은 팔로워 50명. 그나마 0명에서 시작한 계정이 지인 30명, 그밖에 브런치 친구, 스레드 친구들로 조금씩 채워서 50명의 예비 독자들을 간신히 채웠다.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베스트셀러는커녕 계정 폐쇄가 더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온 우주가 나의 상상을 이루어준다고 책에서 봤다.
용기를 내어 나는 다시 한번 뇌의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SNS도 하는 작가네. 책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겠네. 글도 좋으니까 앞으로 더 성장가능성이 있겠다.
‘이건 베스트셀러 예감이야!’
그렇게 보낸 투고 결과는…
‘우리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
매크로로 만들어진 거절 답변.
맥이 빠졌다.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내 글이 별로였을까. 내가 인지도가 없어서였을까.
팔로워를 좀 더 키운 다음 투고를 할걸. 너무 성급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빠른 성공을 기대했던 탓일까. 고민 끝에 모든 게 다 잘못된 걸로 결론을 내렸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평소처럼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다가 울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괜한 목표를 세웠구나. 그냥 아이들 열심히 키우면서 취미로만 할걸.
우주가 돕는다고? 매일 명상을 하고 잘 되는 상상을 해봤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조급한 마음만 커졌다.
불안정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마음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인스타그램도 글쓰기도 모두 멈추고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실연의 상처도, 육아 우울증도 독서로 극복했던 나다.
다른 건 확신할 수 없었지만, 책을 읽고 나면 모든 기분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믿었다.
나의 멘털도, 열정도, 목적성도 책을 읽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 확실했다.
책이 위로가 되는 건, 그 안에 작가의 경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멋진 책을 낸 작가도 알고 보면 숱한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는 걸 안다.
가끔은 누군가의 실패를 통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으니까.
나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실패의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그 자체가 글감이 되었다.
SNS에 투고를 한 경험과 실패한 내용까지 콘텐츠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브런치, 스레드에 나의 투고 실패담이 사람들에게 퍼졌다.
가장 빠르게 반응이 온 건 스레드였다.
투고했는데 거절당해서 그 출판사 책은 앞으로 읽지 않겠다는 약간의 투정과 반성의 글이었다.
짧은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회수는 8천이 넘었고, 좋아요는 200이 넘었다.
50명 가까이 댓글로 응원을 해줬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어차피 출간은 거절의 연속이라는 댓글,
100군데 넘게 투고해서 어렵게 출간을 했다는 다른 작가의 댓글,
여러 출판사에 거절당했었던 해리포터의 작가 죠앤 롤링의 유명한 이야기,
시간은 스친 편이니 조급하지 말라는 조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심이든 아니든 내 글에 반응하고 공감하고 작은 연대가 일어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다시 힘을 내보기로 결심했다.
꼭 책이 아니어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은 많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의 무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눈다.
출간은 여전히 나의 목표다. 하지만 더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SNS로 책을 소개하고,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쓰고, 누군가 그 글을 읽고 공감의 말을 남기면,
그걸로 다시 며칠은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작가지망생을 그만두기로.
지망을 멈춘다는 건,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작가가 되기를 꿈만 꾸는 사람은 이제 그만, 작가로 살아보려 한다.
<작가지망생을 그만둡니다>
1화. 저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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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oodFon (www.goodfon.com) / 원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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