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불안한 경단맘'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이름, 미고스토리

by 미고

“If you don’t get out there and define yourself,

you’ll be quickly and inaccurately defined by others.”
— Michelle Obama




당신이 나서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으면,
세상은 당신을 빠르게, 그리고 부정확하게 정의해 버릴 것이다.”


나는 한때 5년간 나의 인생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이 나를 '경력단절 육아맘’으로 정의하도록 내가 허락해 버렸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본격적으로 대중의 평가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가 만들어낸 프레임과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것을 자각한 뒤 그녀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미셸 오바마가 '화난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면, 나는 ‘불안한 경단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했다.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였다. 첫째 아이 이름이 로아인데 그때부터 나는 ‘로아 엄마’로 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새어머니가 있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아빠가 재혼을 했고, 내 성격상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어서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 호칭 때문에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 나는 새어머니를 '할머니'라고 불렀고, 새어머니는 나를 '로아 엄마'라고 불렀다. 이 호칭은 그리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부르는 데 더 편했고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덩달아 아빠도 나를 '로아 엄마'라고 가끔 불렀고, 시어머니도 나를 '로아 엄마'라고 불렀다. 어린이집, 병원, 그 어디를 가도 나는 '로아 엄마', 내 아이의 보호자였다.


내 이름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시간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 또한 내가 선택한 나의 인생이었기 때문에 존중했다. 문제는 나를 부르는 호칭이 '누구 엄마'라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점점 나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역할이 '엄마'로만 한정되어 가는 것이 두려웠다.


곧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발이 필요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때를 대비할 나만의 이름이 필요했다.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내가 나서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으면 세상은 나를 계속 '누구누구 엄마'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로아맘이 아닌 나를 정의하는 이름이 필요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나를 '나미꼬'라고 불렀다. 당시 시청률 50%를 넘나들던 드라마 <야인시대>의 극 중 인물 이름이었다. 단순히 내 이름의 발음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부르던 별명이었다. 그 친구들과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면서 내 남편도 나를 나미꼬라고 불렀고, 앞글자를 빼고 '미꼬'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다 자연스럽게 내 이름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불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이름을 정하는 데, 본명과 별명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과 태어났을 때 지어진 나의 이름 중에서, 무엇이 진짜인가?


사실 나는 내 본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어딘가 촌스럽다. 동명이인의 유명인이 너무 많기도 하고 거기서 내가 돋보이기에는 경쟁이 치열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 본명으로 살아온 시절의 기억이 나는 별로 좋지 않다. 유년기의 상처로 인해 나는 어두웠고 부정적이었고 배려받기만 바라던 이기적인 아이였다. 그 이름으로 살아오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엄마의 가출,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아빠의 재혼, 새로운 가족 구성에 적응하지 못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 관심받고 싶어서 삐뚤어지기도 하고, 새어머니에게 미안하면서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들. 그 시절의 나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본명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항상 실망이나 동정, 한숨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꼬라는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주고 불러주는 이름이라 친근하고 좋다. 그렇게 미꼬라는 이름으로 20년 넘게 불렸으며 앞으로도 불리고 싶다. 미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달라졌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미꼬야!' 하고 부를 때의 그 따뜻함. 남편이 처음 나를 미꼬라고 불렀을 때의 설렘. 불리는 이름이 바뀌자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도,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도 조금씩 변화했다. 미꼬는 본명의 그 아이보다 더 밝고, 더 사랑스러웠다.


내가 익숙하면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름을 생각하면 미꼬뿐이었다. 그리고 '꼬'를 영어로 발음하면 'go'라는 의미가 생겨서 어딘가 진취적이고 도전하는 이미지가 있다. '가자!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나는 이름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나만의 작가 브랜드 '미고스토리'는 이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된 발음을 순화해서 미꼬가 미고가 되었고, 여기에 '스토리'를 더했다. SNS에서 처음 '미고'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렸을 때의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댓글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좋아요' 하나에도 가슴이 뛰었다. '미고'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닌, 온전한 나로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고스토리에는 '누구나 아름답고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사실 나 자신도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경험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니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되었다.


새어머니와의 어색했던 관계, 아이 엄마로만 불리던 5년, 심지어 좋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도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조각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인생은 오로지 당신만의 것이고, 그 인생은 모두 아름답다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일상도,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경험들도 당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만의 이야기가 된다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로아 엄마이고, 로윤이 엄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미고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있다. 육아에 치이다 보면 미고는 어디 갔나 싶고,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엄마 역할이 소홀해진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 두 모습 모두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미고스토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않겠다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진 '미고'로도 살아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세상이 나를 정의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정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미고스토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혹시 당신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적이 있거나,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길 바란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원치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부터라도 자신만의 이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작가지망생을 그만둡니다>

1화. 저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https://brunch.co.kr/@migostory/40

2화.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진

https://brunch.co.kr/@migostory/41



*사진 출처: Gage Skidmore (Flickr)

이전 02화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