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의 마찰열 이후

천천히 뛰기, 그리고 야구


하루 12시간, 주방은 마찰열로 가득하다. 물과 기름이 끓으면서 나는 습기,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두뇌의 판단에 앞서 몸은 움직이고 있다. 칼질, 소테, 플레이팅. 손님들의 피드백, 골치 아픈 직원 관리,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 매니지먼트의 끝없는 요구. 지나고 보니 직원들 병가 신청으로 16일째 연속 근무다.

그런데 나는 퇴근 후 달린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더 이상 극한의 육체노동을 원하지 않아야 하는데, 가장 격렬한 활동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달리기는 주방의 열기를 식히는, 그리고 멈추지 않는 두뇌를 식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주방에서 지배받았던 몸과 시간이, 달리는 동안 온전히 나의 리듬으로 회복된다. '요리사라는 습관'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나'를 확인하는 시간. 나는 나를 검증한다.

내 러닝은 사색의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주방에서 나를 뒤흔들었던 모든 잡념들이 가빠지는 숨 뒤로 서서히 밀려난다. 나는 굳이 '뛰면서 무엇을 생각할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집중하는 것은 오직 현재다. 조금씩 무거워지는 다리, 습한 저녁 공기,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번지는 가로등 조명. 달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의식적인 몰입에 빠진다. 주방에서 시작된 모든 걱정들로부터 해방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짧은 미래의 걱정을 지운다.

러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잠든다.


KakaoTalk_20251107_012309966.jpg 이스트 코스트 파크 (싱가포르)

출근 2시간 전, 지구 반대편에서는 메이저리그가 한창이다. 나는 야구를 본다. 이것은 러닝 이후의 또 다른 의식이다.

초록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규칙적인 경기. 주방의 뜨거운 마찰열이 아닌, 초록색 필드 위의 다른 시간. 요리사로서 '손님의 만족'을 쫓던 내가, 관객으로서 '승패'라는 타인의 서사를 느긋하게 관람한다.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본다.

나의 체력에 기댄 비규칙적인 러닝과 출근 전 야구 시청. 이 두 시간은 내가 습관이라는 껍데기에서 벗어나 나만의 '자유'를 확인하는 의식이다. 격렬한 비생산적 시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를 균형 잡게 한다.

주방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이 의식들을 통해 확인한다.

나는 나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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