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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스스로 ‘땡’을 외치고 싶은 순간

by 시에

가능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마냥 굴러다니고만 싶다. 하기 싫은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래서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를 스스로 칭찬하면서 다독일 때도 있다. 온전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가끔은 단호하게 호통을 쳐야 할 때가 있다. 정신 차려.



아무도 외치지 않은 #얼음

어지러워, 드르륵 탕. 눈앞에 커다란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순식간이었다. 회색빛 바닥에 종이인형이 날린 것처럼 스르륵. 2미터에 가까운 장신의 사람도 막상 쓰러질 때는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누가 "얼음"을 외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었다. 황급히 빼낸 이어폰을 손에 든 채로.


시공간이 멈춘 것 같았던 순간,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병원에 꼭 가. 다음 역에 있는 큰 병원, 알지? 꼭 가야 돼. 큰일 나." 그는 얼떨떨했다. 자신이 쓰러졌는지도 몰랐으니까. 바로 열차에서 내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몇 장면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지만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그때의 나는 멈춰버린 로봇 같았다.

#Midjourney



움직일 수 없는 #고요

원래 아픈 건 내 전문이다.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에 간다고 호들갑을 떤다. 사실 병원 전문이라 해야 할지도. 반대로 그는 놀라울 만큼 건강했다. 뭐든지 "자고 일어나면 돼"라고 말하곤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말 그렇게 되곤 했다. 밤늦게 먹어도,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배탈 한 번 나지 않았다. 늘 단단하고 여유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누워버렸다. 현실감이 없었다. 언젠가는 누구나 약해진다지만, 아직은 감기에 며칠씩 드러눕거나 소화가 안 된다는 정도를 예상했을 뿐, 이런 상황을 상상한 적은 없으니까.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무너짐 앞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해진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Midjourney



차가운 빛 속의 #시작

이상한 의사를 만났다. 해 줄게 없는데 집에는 가지 말란다. 혹시 위중한 상황이 생기면 책임지란 소리가 나올까 봐 그런 걸까? 어쩌라는 건지 모를 모순 앞에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여행 중이라 가뜩이나 낯선 도시에서 찾아간 병원, 백색 조명은 눈부시게 밝은데 공기는 한없이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내 판단을 믿어도 될지 자신이 없었다.


두 번째 응급실. 그는 표준 규격의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꽉 낀 채로. 간호사 선생님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가드를 뽑아내는 것뿐이다. 마치 관에 꽉 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광지의 소품이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병원이라, 더욱 마음이 서걱거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말할 수 있었다. "응급실 가자."

#Midjourney




여전히 내가 너무 무거워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스스로 '땡'을 외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평소에는 공기처럼 익숙하지만, 생각하면 소중한 무엇들. 사실 사는 건 그게 다 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으로 조금 더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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