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이 흘렀다. 다음은 모르겠지만 일단 Do IT
오랜만에 '광고' 배너를 클릭했다. 브런치 10주년 이벤트, 나도 한 번 해볼까? 고여있는 지금에 잔물결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성실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로또를 살 때의 기대처럼, 약간의 운이 따라 당첨이 되면 그것도 좋겠다는 바람도 살짝 얹어서. 그렇게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매주 화요일, 8PM
지글거리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첫 글을 썼다. 꽤나 오래 걸렸다. 제목으로 '전두엽 리부트 선언'을 외치고 나니,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능한 루틴을 만들자. 약간 숨이 차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말에 한 편씩 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12개의 글이 쌓인, 12월을 맞았다.
일단 Do IT
처음 몇 번은 초고를 쓰는 데 두 어시간은 걸린 듯하다. 가끔 한 번씩 주제를 생각한다. 주말 아침, 카페에 간다. 막상 자리에 앉으면 조금 버거운 마음이 들어 일단 회피하곤 했다. 한참 아무 생각 없이 서핑을 하다가 지루해질 때쯤 시작한다. 인트로, 내용, 아웃트로 세 개의 구조만 지키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쓰자. 그리고 일단 덮는다.
몇 시간 뒤, 아니면 다음 날, AI를 부른다. 대필을 시키지는 않고 조언만 받는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까지 외주를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서툴러도 직접 마침표를 찍어야 진짜 리부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 머리가 아팠는데 머리가 맑아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느꼈던 그 기분.
가끔 회사에 매여있다는 사실이 괴롭지만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무척 드물게 겪는 일이다. 머리를 쥐어짜내고 나면 힘이 쫙 빠지면서, 동시에 상쾌해진다. 누가 일에서 보람을 느낀 경험을 하나라도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순간이라고 할 것 같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면 진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데 오히려 좋아
어려운 건 그림이었다. 사진을 다시 찍어야 한다는 강박까지 일상에 밀어 넣을 순 없어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경추가 그만하라고 하기 전에 잠시 취미라고 부르던 것. 그림. 못난이 같은 수채화라도 AI가 모자란 내 그림체를 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삽화를 넣어보자.
이리저리 긁어모은 내 그림을 미드저니에 넣고, GPT에게 프롬프트를 부탁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는 변덕이 심했다. 글쓰기보다 더 어려운데, 이게 맞나? 디자인을 모르는 문과라 그런가 싶었지만, 설정을 하나하나 더 파고들 에너지가 없었다. 적당히 '다시'를 외치다 타협. 그래도 가끔은 오히려 좋아. 얻어걸리는 행운도 만났다. 괜찮은 건 다시 넣어 레퍼런스를 늘리며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귀찮지만
사실 귀찮지 않은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써야 하는데 쓰기 싫다'를 읊조린다. 하지만 멈추면 정말 끝일 것 같아서 약간의 압박도 감수하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리고 지난 주말, 이제는 진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조금은 나를 믿어줄 수 있게 된 걸까.
시작은 더웠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한다. 꼬박 3개월, 약속을 지켰어.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해보는 게 낫다. 요즘은 멍하게 사는 몇 년 동안 현실 세계에서도 너무 뒤처졌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답답했는데, 꾸준히 뭐라도 한 걸음씩 가보자고 다독여본다. 아직도 방향은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 뭐라도 하면 결국은 앞으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