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금관 관람기
요즘은 I want to 'DO' 라는 말이 떠오르면 반갑다. 'Buy'로 끝나지 않는 어떤 경험. 그런데 호기심이 반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 시간이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몸이 따르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만다.
백 년 만에 만나는, 다시없을
매일 요란하게 지나가는 뉴스 속에서 왜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보면 흔한 광고에 불과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역사를 얼마나 모르는지 대회를 연다면 상위권에 들 자신이 있을 정도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죽기 전에 볼 수 없는 것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게다가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은 오히려 실눈을 뜨고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왜?
스스로도 납득할 이유를 찾지 못해 의아한 마음 반,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에 반가움 마음 반으로 일정을 잡았다. 얼마만의 전시지? 전시회 포스터에 마음이 갔던 게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많이 납작해지긴 한 모양이다. 어쨌든 결심은 했는데,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여기저기 흩어졌다 모인 금관을 보기 위해서는 흩날린 의지부터 모아야 했다. 리셋 방지에 효과적인 '환불불가'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평화롭게 은밀한 오픈런
티켓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끝까지 시간, 에너지, 그리고 카드가 필요했다. 그래도 경주니까 괜찮지 않을까? 서울의 오픈런에 비하면 양호할 거라는 긍정회로를 돌려가며 준비완료. 트렁크에 야무지게 자전거까지 실었다. 일단 거기까지 가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을 테니 어떻게든 되겠지.
가깝지만 먼 박물관. 숙소에서 보이지만 직진할 수는 없어서 늦가을 갈대가 풀럭거리는 하천을 끼고 걷다가 마을길로 들어섰다. 이따금 낯선 인기척에 놀라 짖는 개에게 무해함을 어필해 가면서. 뾰족했던 마음이 뭉근해지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와 시야가 확 트였다. 땅만 파면 나온다는 유적이 출토된 모양이다. 줄 너머로 돌덩이들이 잔뜩 널려있다. 티켓 배부 시간 때문에 더 느리게 가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대기줄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빠졌다.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세팅된 프로세스 덕분이었다. "가장 빠른 시간으로 가시려면 이쪽, 원하는 시간은 이쪽입니다." 전자는 빠르게 티켓을 받아 사라진다. 후자는 유물을 담아 옮길 것 같은 007 가방 앞으로. 뭔가 들키면 안 되는 비밀 거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가 좋을지 직원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 끝. 센스에 감탄하며 티켓을 가방에 고이 모신 뒤 잠시 안녕.
어제도 오늘도 반짝이고 있다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찾아왔는지는 모른다. 왕과 왕비가 착용했다던 금관을 비롯한 유물은 그를 잘 돋보일 수 있도록 마련된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아름다웠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전시회 관람객이라면 모두가 하는 대답처럼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진짜가 보여주는 분위기나 세공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우니까.
여러 개의 금관은 조금씩 다른 장식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위, 성별, 기술력 등등. 그것들을 파고들어 알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니. 딱 그 정도의 호기심이다. 그리고 잠시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사용하던 사람의 모습을 사극의 한 장면처럼 상상해 보는 정도. 그때도 지금도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을 남기고 있겠지. 모든 순간은 늘 반짝이며 지나간다.
기다리던 전시는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날씨와 숙소, 주인아저씨 덕분에 오픈런이었지만 오픈런이 아닌 행운까지 얻었으니 그저 고마운 일이다. 뭐라도 해보려는 누군가를 온 우주가 도와준 것이라고 기분 좋게 기억하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