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제하고 취소를 미루다 보니 결국 외출
화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만 너무 소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져 음악을 튼다. 그러면 차갑고 날카로운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도망가자
애써 찾지 않아도 눈앞으로 무엇인가 계속해서 밀려드는 시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각종 소셜미디어를 켜면, 언젠가 관심을 가졌었거나 앞으로 가질 것 같은 콘텐츠와 광고가 흘러간다. 이따금 몇 번씩 돌려보는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까딱거리는 손가락과 함께 규칙적인 템포로 흘러갈 뿐이다. 마치 나는 그 거대한 흐름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앉아 끝없는 먹방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먹지도 않았는데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수많은 썸네일 중에서 비교적 요란한 자막이 없는 것을 클릭해 본다. 대개 플레이리스트나 최근에 화제 된 가수의 노래다. 새로 시작된 알고리즘을 따라 끊임없이 플레이리스트가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내가 좋아요를 눌렀거나 그와 비슷해서 좋아할 거라고 예상되는 곡들이 이어진다. 덕분에 시간과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곳으로 밀려간다. 꽤나 효과가 있는 셀프 처방이다.
순간의 선택
한바탕 플레이리스트를 돌릴 때면 이따금 멈춰서는 순간이 있다. 어떤 노래는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니까. 예전에는 더 많은 순간 음악을 들었고, 그러다 곧잘 라이브를 찾아가곤 했다. 아이돌 콘서트를 찾아 굴러다닌 적도 있다.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온몸이 아작 나는 것 같았지만 그럴만한 정신력이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걸까.
비행기도 타던 에너지가 언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건지 알 수 없지만 다시는 예전처럼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효도관광 같은 작은 공연도 마음먹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을 듣다 갑자기 아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좀 놀랐다. 돈이 쓰고 싶은 건가? 일단 마음이 변하기 전에 질러보자. 무슨 곡을 들을 때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덕분에 어쨌든 티켓 한 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ON
막상 어렵게 표까지 샀는데 감흥이 떨어지는 건 또 뭘까. 날짜가 점점 다가오니 가기 싫다. 취소할까? 여전히 노래는 좋은데, 왜 마음은 다시 뒷걸음질 치는 걸까. 티켓이 배송되었다는 알림이 와도 무심하게 그래. 날은 점점 추워지고 퇴근 후 달려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온몸이 쑤시는 것 같다. 무기력은 그렇게 조금만 틈이 생겨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다행히 역에서 나와 인파에 섞이니 설레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마음이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는 건지, 정말 나도 나를 모르겠다.
항상 공연에 가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좋은 것도 아쉬운 것도. 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펼치는 라이브는 언제나 실패가 없다는 것 정도는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이번에는 춤을 추지 않는 가수가 무대를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잔잔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몇몇 장면은 오래도록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음이... 좋았다.
공연은 아무리 에너지가 넘쳐도 목적지에 이르기가 험난하다. 그러니까 적당한 시기와 장소에, 적당히 용납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하고, 요즘은 더욱 쉽지 않은 티켓팅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그때까지 나의 신변에 어떤 일이 없어야 한다. 덕분에 잠시 새로운 마음으로 눕는다. 무사히 엔딩을 보고 이불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