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파 속을 얼레벌레 따라가는 기록
연말의 도시는 언제나 반짝거렸다. 12월이 되기 전부터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지하철역에는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위한 종소리가 울린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아도 롱패딩으로 중무장하고 연일 만남을 이어가는 기간. 불빛과 사람이 섞여 북적거리는 거리를 보면서 한 해가 드디어 끝나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모든 것들이 다소 생경해졌다.
떠들썩하게 고요한 시즌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지 못한 지 제법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부지런히 사람을 찾지 않은지 오래다. 여기저기 갑자기 연말모임을 잡자며 카톡방이 늘어나는 일도 없다. 보신각 타종행사를 TV로 보면서 거리에 몰려있는 인파를 본 게 언젠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년 말에는 큰맘 먹고 야무지게 짐을 싸서 서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다만 한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밤, 내가 머물기로 한 곳이 그 어느 해보다 긴장감이 넘칠 거라는 예측을 하지 못했다. 북촌을 둘러싼 공권력 때문에 사람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연말의 들뜬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다른 의미로 떠들썩하게 고요했다.
떠들썩하게 화려한 시즌
일 년이 지나 다시 겨울이다. 작년에는 북쪽의 마을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서쪽의 마을을 선택했다. 여전히 캐럴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짙은 어둠이 사라져 있었다. 구불한 골목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건너왔을 법한 사람들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제각기 개성을 뽐내는 예쁜 샵과 카페, 식당 안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불빛이 가득한 광장은 일요일 밤이 무색할 만큼 사람이 가득했다. 킹세종과 제너럴 순신 동상은 여전한데, 그 주변으로는 말 그대로 온갖 색이 넘쳐흘렀다. 광화문을 스크린 삼아 현란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고, 그 뒤로 다양한 이벤트존과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가는 줄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청계천에는 또 다른 빛축제가 열렸다. 전체적인 맥락이 다소 어색하지만 물량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바뀌는 풍경이 제법 자극적이다. 그야말로 사전 그대로 떠들썩했다.
종로의 거리는 개인적으로 익숙한 곳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심해서, 답답해서, 때로는 약속이 있어서 혼자 또는 누군가와 함께 수없이 걸었던 곳이다. 인파에 당황하긴 했지만 소란스러움이 반가워 견딜 만했다. 오랜만에 한 걸음 세상의 연말에 잠시 가까워졌다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