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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18. 2016

그 마을이 사는 방식

있는 그대로, 시칠리아 '체팔루'

인류는 오늘만 살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기름진 땅을 찾아 작물을 일구고, 조금 더 튼튼한 집을 지으려 노력한 덕분에 우리는 살아남았다. 언제부턴가 편리함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은 채, 지켜주면 좋았을 모습까지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체팔루(Cefalu)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에 위치한 체팔루(Cefalu)는 붉은 지붕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안마을이다.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Palermo)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절벽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과 여유로운 해변을 기대하는 여행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다. 우리들에게는 영화 ‘시네마 천국' 촬영지로 소개되지만, 그런 사실을 내세우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다.


UP

동물에게 관대한 마을이 그렇듯 대낮의 그늘은 고양이에게 점령되었다. 초여름을 맞이하는 유럽의 골목길이란, 명화에서 봄직한 꽃들이 저마다 빛난다. 기차에서 함께 내린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좁은 골목길을 걷는 건 나뿐인가 보다. 모두가 해수욕을 희망하며 짐을 챙겨 해변으로 직진한 걸까?


선인장이 알알이 박힌 돌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돌 틈을 비집고 자라나 꽃을 피운 이들에게 감탄하며 산언저리를 감아 오르는데, 갑자기 ‘Castle’이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놓인 산등성이가 펼쳐졌다. 어느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수풀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에 들어섰다.


선인장만 없으면 한라산이라고 해도 될 법한 풍경이 나타난다. 어딘지 생김새가 익숙한 들꽃, 경쾌한 날갯짓을 하며 꽃을 찾는 나비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꽤나 친근하다. 내 등 뒤를 바짝 쫓는 태양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속도를 내가며, 곁을 내준 이들의 삶을 구경한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 다다르니 오래된 성벽이 나타나고,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사람의 세상과 이를 둘러싼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적당히 섞인 마을 풍경까지. 과거와 현재가 어울려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과하게 바꾸지 않아 더욱 고마운 마음.


탄성을 지르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지금이 지나면 또 하나의 과거로 남는다. 우리 모두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무심하게 버려지지 않도록 서로를 아껴주었으면 좋겠다.


Down

처음 올라가는 산길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은데, 내려올 때는 이상하게 금방이다. 남들이 몰려갔을 바다를 생각하며 좁은 문을 지난다. 사람들은 낡은 건물이 줄지어선 작은 해변에서 여유를 즐긴다. 다른 쪽 문 뒤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해변에서 위를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이다. 바위의 표면 때문일까, 강인하고 고독해 보였다. 아기자기한 생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한없이 다정하고 상냥하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보니 무뚝뚝하고 차가운 느낌도 든다. 늘어선 집들이 세월을 더해 변해가는 동안에도 늘 그 자리에 있었겠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갔다. 조금씩 바뀌는 것들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도 있었다. 스스로 택한 결과일 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없는 변화는 없고, 각자의 입장이 있겠지만, 조금 더 시대를 아우를 수는 없을까.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리운 것들이 떠올라 씁쓸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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