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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15. 2016

따뜻한 무인도

물 위를 건너서, 울릉도 '관음도'

출근길에 한 번씩 바라보는 풍경이 꽤 인기가 많아서, 휴일이면 동네가 시끌시끌해진다.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은 또 다른 이에게는 여행지가 된다. 우리 모두는 현지인이자 외지인이다. 낯선 곳에서 마음이 따뜻한 현지인을 만나면, 여행의 일부로 남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관음도(觀音島)

울릉도 북동쪽에 본 섬과 아주 가까운 무인도가 있다. 언제나 고요하게 살아가는 작은 섬. 지척에 있는 것 같아도 배 없이는 닿을 수 없었는데, 몇 년 전에 다리가 놓인 후로는 누구나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뚜벅이 여행자에게 버스는 전부다. 몇 개 안 되는 노선 탓에 기사님들의 얼굴을 금방 익히게 되는 울릉도. 관음도에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번 운행하지 않는다. 다른 버스에 비해 덩치도 작다. 해안도로를 따라 20분쯤 걸리는 버스길. 기사님이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지, 갑자기 현지 가이드로 변신하셨다.


바다 냄새

언제나 바다로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비릿한 내음. 항구 근처로 가면 조금 더 진하게 나던 그 냄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좋았지만, 냄새는 조금 불편했다. 익숙한 그것을 울릉도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기사님은 울릉도 바닷물이 깨끗해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바다가 원래 그 바다가 아니었음을.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울릉도 다이빙이 그렇게 좋다는 이유를 알겠다. 마이크로 전해지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고향에 대한 애정이 찰랑거린다.


옛날 옛적에

특이한 생김새의 바위에는 짝꿍처럼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있다. 선녀바위에 담긴 사연을 소개하며, 진실은 조사해봐야 안다고 덧붙이신다. 사진 찍기 좋도록 천천히 지나가겠다고. 집으로 향하는 현지 할머니들께서 적극적으로 아저씨를 돕는다. "더 가라! 가야 댄다. 비 줘야 찍지." 강한 사투리가 어쩐지 더 구수해 좋다.


다리 위에서

기사님은 모르고 가면 그만이지만, 알고 나서는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과 함께 버스를 세웠다. 빠른 속도로 돌아보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고. 다음 버스는 그에 맞춰 온다며, 시간을 재차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쨍한 날씨에 더욱 반짝이는 물빛. 둥그런 모양새로 동동 떠 있는 게 어쩐지 귀엽다. 사람들은 제각기 인증샷을 남기며 섬을 향해 출발했다.

관음도 연도교


길 위에서

슬프지만 사람의 발길이 적을수록 경치는 아름답다. 알려지는 게 더욱 두려운 풍경이 발끝에 툭툭 차인다. 단돈 몇천 원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한 시간만에 돌아보고 떠날 수 없었다.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하는 모습. 하늘도 바람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어떻게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풍경.

관음도에서 바라본 울릉도


둥근언덕 모양의 작은 섬이라 머리 둘레(?)를 따라 탐방로를 내었다. 완만한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북쪽에 있는 터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버스가 들고 나는 시간에 약간 몰리는 편이다. 함께 들어온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나니 조용해진다. 빠르게 다녀가는 이들이 가지 않는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욱 고요해졌다. 흙색, 풀색, 바다색은 언제나 서로를 빛나게 한다. 어쩜 이렇게 선명할 수 있을까.


험한 바다에 놓인 작은 섬의 일상은 어떨까. 가끔은 거친 바람과 파도가 다리를 상하게 할 수도, 탐방로로 오르는 계단을 부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들은 그런대로 흘러가고, 버스 기사님의 애정이 담긴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의 감탄사가 울려 퍼지겠지. 둥그런 모양이 엄마의 파마머리 같아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던 섬. 오가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대하는 걸까, 아직은 얼굴이 맑다. 지금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관음도에서 바라본 죽도
주상절리를 조망하는 전망대
부채처럼 펼쳐진 주상절리


바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호박 식혜를 한 잔 샀다. 컵라면은 사 먹지 말라며, 여기까지 왔으니 맛있는 거 먹으라고 장사를 마다하신다. "의자 갖고 저기 바다 보이는데 앉아서 마셔. 바람 솔솔 불고 아주 좋아." 따뜻한 상인의 마음에 더위가 녹는다. 누군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튜브 위에서 유유히 낚시 중이다. 너무 맑아서 얕아 보이는 바다가 사실은 매우 깊다고. 막간을 이용해 수영을 하려던 어느 여행자가 놀래서 뛰쳐나왔다.


버스 안에서

튜브의 낚시꾼이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들이 그 바다는 위험하다고, 누군가 떠내려간 적도 있다고 말한다. 낚시꾼 할아버지의 쿨한 대답. "나도 두 번이나 떠내려갔어. 들어갈 때는 그런 각오는 해야지. 떠내려가면 뭐.. 그냥 끝인 거지." 바다의 삶이란 그런 것인지, 진실은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울릉도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오르막길 위에 현지인의 목소리를 얹었다. 둘레길 입구에 쭈그려 앉아 방향을 알려주시던 할머니들.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미소는 너무나 따뜻했다. 좋은 곳만 알려주던 게하의 주인장과 섬을 격하게 아끼는 버스 기사님도 영원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대로, 울릉도는 "아주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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