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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22. 2016

무엇이 없을수록 아름답다

나비를 닮은 섬, 이탈리아 '파빅냐나(Favignana)'

자연의 여백은 도시의 것과는 제법 다르다. 텅 빈 도시는 어딘가 외롭고 쓸쓸하다. 반대로 탁 트인 들판이나 바다 앞에 서면 모든 것이 자유로운 느낌이다.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두 팔을 벌리고 선 사진 한 장은 남기고 싶어진다.



Favignana

에가디 제도(Aegadian Islands)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섬 3개를 일컫는다. 셋 중에 가장 큰 파빅냐나(Favignana)는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놓인 한 마리 나비와 같다고. 오른쪽 날개에 해당하는 지역은 비교적 평탄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서 섬을 둘러보기도 한다. 참치 어장이 유명하여 통조림을 파는 상점도 많다.


On the Ship

연휴를 맞아 북적거리는 매표소. 앞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도 발음을 잘 모르겠다. 유튜브에 발음 영상이 있는 것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소심하게 말끝을 흐렸지만, 매표소 직원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탑승장을 물어보면서 알게 된 아줌마는 섬 안의 별장에 간다고 했다. 그녀는 자전거로 가기 좋은 곳을 몇 군데 알려주면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일정이 꼬여 조금 긴장했는데, 따뜻한 오지랖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칠리아의 트리파니(Tripani)에서 배로 30분 정도 걸린다.


먼저 내리고 싶은 마음들이 둥그렇게 뭉치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그네들이 우리와 닮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서둘러 내린 사람들은 빠르게 멀어져 갔고, 현지인들도 휴일을 즐기는지 정박해 있는 배가 많았다.

파빅냐나 항구


부둣가는 언제나 부산하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을 태운 배는 이제 막 항구를 떠났다. 한쪽에는 노부부가 자리를 잡고 낚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낚았는가 싶었더니, 다잡은 물고기를 놓쳐버린 할아버지. 구경꾼에게는 눈치를 보는 할아버지도, 정색하는 할머니도 그저 귀엽게 느껴진다.


On the Bike

자전거 대여점에서 얻은 지도로 적당히 동선을 짠다. 쨍한 날씨가 심상치 않아 자외선 차단제까지 치덕치덕 발랐다. 몇 번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렸지만, 꽤나 정확한 표지판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 나무 아치를 지날 때, 너무 들떠서 아예 정신줄을 놓고 싶어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건물도 많지 않고, 간판은 더욱 드물게 나타난다.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항구를 벗어나니 그야말로 '섬’스럽다.


마을길을 지나 해안도로에 접어들었다. 들꽃이나 바위의 생김새가 어쩐지 낯익다. 제주의 어느 해안을 닮은 듯하다. 곳곳에 세워진 간판을 지우고 나면, 여기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상상. 땅값이 100배가 올랐다는 바닷가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나비를 닮은 섬은, 돈벌이만 생각했다면 남겨두지 않았을 청아한 풍경이 가득했다.

Cala Trono


On the Beach

서로 닮은 자연이 이렇게도 먼 곳에 있구나 싶다가도, 완전히 다른 그만의 삶을 보여주자 새로운 자극으로 온몸이 짜릿해졌다. 여기는 천국인가? 어느 광고 카피처럼 너무 좋은데 적절하게 묘사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맛을 본 선배들은 이미 여기저기에 등을 대고 누웠다.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

Lido Burrone


쨍한 햇살에 더욱 반짝이는 민낯. 제멋대로 피어난 노란 꽃 사이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렴풋하게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는 짧은 시간에도 마음이 급해진다. 저 바다가 도망갈 리 없는데도 안절부절. 좁은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뒤를 쫓는다.

Cala Azzurra


인위적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연에 기댄 사람들과 바다가 전부일뿐이다. 맑은 하늘 덕분에 한결 다채롭게 빛나는 오늘의 바다. 서서히 변해가는 물색으로 바다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Cala Azzurra


대부분의 시간을 빌딩 숲에서 보내는 내게, '섬'은 항상 특별하다. 다른 차원의 세상 같기도 하다. 섬을 찾을 때면 특유의 고립감과 탁 트인 시야, 자연의 소리와 냄새 같은 것들을 기대한다. 여백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곳. 바라만 보고 있어도 빠져들게 된다.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면, 자유로움을 넘어 나의 존재가 투명하게 흐려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비어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Cala Azzu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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