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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26. 2016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느리게 산다,  터키 '샤프란볼루'

아주 가끔씩 자연에 의해 큰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굉음인 경우가 많다. 세계 인구수를 생각하면 일부의 마음이 시커먼 것이 대수로운가 싶지만, 그들이 일으킨 풍파는 생각보다 거칠고 잔인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던 날이 얼마나 될까.



사프란볼루(Safranbolu)

터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꽤나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작은 마을. 이스탄불에서 동남쪽으로 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잠시 들르는 경우가 많다. 이성으로는 하루면 둘러볼 수 있고, 감성으로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상업이 발달해서 북적거렸던 시대를 지나,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 현재. 섬유유연제 이름과 같은 사프란(Safran) 꽃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만, 잘 보존된 옛 마을과 터키의 전통 디저트인 로쿰(Lokum, 터키식 젤리)으로 유명하다.


육중한 버스에 올라 친절한 승무원에게 7시간을 사육당한 끝에 도착한 마을. 오늘의 일과를 마친 기사님은 목적지에 도착한 승객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부산스러운 이스탄불과는 달리 조용하고, 골목의 상점가에는 달콤한 향이 가득하다.  슬로비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뭔가 느려진 공기. 마을 입구에 천연덕스럽게 퍼져 있는 한량이 그를 대변하는 것 같다.


구시가지의 상점가에 드리워진 천막 위로 햇살이 내리쬔다. 오래도록 머무는 이들은 흔치 않지만, 스쳐가는 여행자를 꽤나 맞이한 듯한 할아버지가 이방인을 불러 세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쁜 듯이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념이라며 뚝딱 만들어주는 목걸이는 공짜라고. 가죽 팔찌 하나쯤은 사서 나오게 만드는 밝은 웃음.


골목길에서 동양인을 만난 아이들의 반응은 솔직하다. 바디랭귀지로 서로를 탐색하던 꼬마와 나. 수줍게 카메라를 만지며 찍어달라고. 호기심이 채워지자 활짝 웃는다. 내가 찾는 곳의 방향을 알려주더니, 옆골목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래된 집들이 내려다 보인다는 흐드를륵 언덕(Hidirlik Park). 국어식 발음으로 적어보니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이름이다. 왠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절대 잊힐 것 같지 않다. 오래된 집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 별로 없는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시계마저 거꾸로 돌려줄 것 같은 느낌.


노골적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과 달리, 곳곳에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터키, 쿠르드, 이슬람 급진주의자(IS). 세 단어에 실린 엄청난 풍파. 옛날과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 이 마을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 내려놓고 살아갈 수 있기를.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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