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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Feb 05. 2017

엄마의 품

제주도 '해녀박물관'

올해 설날에도 엄마는 묵직한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양손 가득히 얻어온 음식을 정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엄마는 자식의 게으름을 뻔히 알기에 여러 번 소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관심은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된다. 그릇 하나하나에 가득 담긴 마음. 엄마의 품은 언제나 따뜻하고 넉넉했다. 



제주도 ‘해녀 박물관’

우리 집 담장 너머 모든 곳에도 누군가의 엄마가 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 뒤에도 바쁜 하루를 보내는 엄마가 있겠지. 해녀란 이름으로 살아온 많은 엄마들. 어찌 보면 제주 해녀는 제주의 삶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방향으로 달려간들 바다에 가로막히는 섬, 그들이 기댈 곳은 결국 바다뿐이었다. 제주시 구좌읍에는 그녀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제주해녀박물관’이 있다. 



‘제주해녀문화’는  작년 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해산물의 채집 방식을 의미하는 ‘물질’뿐만 아니라 굿이나 음악 등 관련 문화를 모두 포함한다. 그간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마음 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비 내리는 오늘 날씨는 박물관을 들르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바다 옆에서 일상을 보내는 여성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바다로 나설 준비를 한다. 먼 바다로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해녀의 삶은 익숙한 것이었다. 엄마는 바다가 내어준 것들을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잠수 장비 없이 무거운 납덩이를 허리에 차고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매년 그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굿판이 벌어진다. 서로를 위로할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같이 나간 동료가 돌아오지 못했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눈물도 두려움도 바다에 뿌리며 깊이 더 깊이. 



잔뜩 눌러둔 숨을 돌고래가 물줄기를 내뿜듯이 내뱉고 다시 물속으로. 바다는 많은 것을 내어주지만 자신을 잊어버리는 순간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을 쉬게 될지도 모른다. ‘물숨’이라는 단어에 담긴 ‘죽음’. 매 순간 자신의 한계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는 데, 철학이 삶 속에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이롭지 않다고. 

숨비소리(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숨을 내뱉는 소리)



물질 후에는 불턱에 모여 앉아 차가워진 몸을 데운다. 요즘 같으면 탈의실이나 휴게실 정도일까. 오늘의 바다는 어땠는지,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눈다. 미지의 바다에서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경력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다. 나름 자리도 정해져 있다.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환경 탓에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바다는 함께 쓰는 것이니 모두를 위한 규칙도 논의한다. 어찌 보면 개인사업자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한 배를 탄 사람들. 무분별한 채취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룰도 정하고, 계절별로 할 일도 정리해둔다. 그들의 삶 속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자연과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사실 철학이다 뭐다 하는 것도 울타리 밖의 시선일 뿐,  물속에서의 일과는 그리 녹록지 않다. 수압으로 인한 두통에 시달리며 매번 약을 먹는다. 속이 좋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밥도 먹지 않는다. 오전 8-9시에 들어가서 오후 3-4시까지 쉼 없이 계속되는 물질. 요새는 잠수복이라도 생겼다지만 예전에는 천으로 된 얇은 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들의 고된 시간은 고스란히 쌀이 되고 옷이 되었다. 때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이나 러시아로 건너가 며칠이고 낯선 바닷속을 헤매기도 했다. 



전시 말미에 놓인 인터뷰 영상 속에서 그녀들은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바다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고 위로해주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릴 해산물을 아낌없이 내주었고, 괴로운 마음에서 내뱉는 하소연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속절없는 울음을 얼마든지 내비쳐도 괜찮았다. 그녀들에게 바다는 언제나 넉넉한 엄마의 품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살림을 꾸려가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지금을 맞이했다고. 땡볕 아래 소금기 많은 물에서 부대끼다 고운 피부는 잃었지만, 주름 꽃이 핀 얼굴에서 묘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립고 좋다는 바다, 엄마의 품. 바다의 품에 안긴 그들은 다시 누군가에게 푸근한 엄마가 된다. 

저 넓은 바다 너머 그 길을 찾아
희미해진 하얀 꿈들 파도속에 묻히네

-이상은, To Mother (인어공주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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