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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May 10. 2017

숨 막히는 풍경

베트남 중부 ‘Vung An Cu Lagoon’

창문을 활짝 열어도 좋은 오월이다. 실내에 갇힌 현실이 너무 괴로운 계절. 항상 이 무렵에는 창 너머의 산뜻한 공기로 아쉬움을 달래며 주말 나들이 계획을 짜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미세먼지에 맞서 문이란 문은 모두 닫아두었다. 점심식사 후에 카페테라스에서 즐기는 잠깐의 여유도 안녕.



Vung An Cu Lagoon

베트남은 바다를 옆에 두고 길쭉하게 뻗은 모양새라 해안을 따라서 여행하기에 좋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종종 석호(Lagoon, 바다와 격리된 호수)를 만나게 된다. 일부는 덩치가 커서 애써 살펴보지 않으면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정도. 중부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다낭(Danang) 인근의 Vung An Cu 석호는 특유의 분위기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낭 근처의 도시(Hue)를 오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차문을 열었더니 섭씨 34도의 바깥공기가 훅 밀려들어온다.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오월의 호수. 앞에는 바다를 두고 뒤에는 든든한 산에 기대어 있다. 햇빛을 제대로 받으면 소위 말하는 동남아식 엽서 풍경이 될 것 같았다.



오늘은 태양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데도 옅은 회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했다. 하늘의 파랑도 산의 초록도 구름의 흰색도 다르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호수에는 묘하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뿌연 공기 때문인지 한낮의 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기도.



특별히 어디서 연기가 피어오르지도 않는데 필터를 씌운 것처럼 빛바랜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며칠째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 갠 뒤에나 조금 괜찮아지는 우리의 풍경과 닮았다. 베트남의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흘러가는 보통의 하루. 양식업자는 석호의 물을 빌어 굴을 기르고, 호숫가 식당의 주방장은 하루 종일 불 앞에서 많은 땀을 흘린다.



여행에서 날씨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속절없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파란 하늘과 기묘한 구름에 감탄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아쉬움이 생긴다 해도 금방 잊어버리곤 했는데, 오늘은 쉬이 담담해지지 않는다.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 유해물질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자연의 아름다움. 어쩐지 더욱 마음이 아프다. 비를 기다리지 않아도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너무나 뜨거웠던 이국의 오월, 텁텁한 공기에 둘러싸인 채로 침묵하던 호수가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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