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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May 31. 2017

드디어 불금

베트남 '다낭'

‘시간’ 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지만, 체감 속도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여행자의 시계는 두 배속으로 움직이는 한편 현지인의 것은 멈추기 직전처럼 더디게 간다. 그래도 휴일을 앞둔 금요일 오후는 정말 좋다. 사람들의 말투도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지는 마법 같은 날.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마냥 좋은 불금이다.  



다낭(Danang)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다낭(Danang)은 오른편에 넓은 바다를 두었다. 안으로는 우리와 이름이 같은 ‘한강’이 흐른다. 긴 해변과 낮은 물가를 무기로 인기 있는 휴양지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전쟁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 모래사장을 따라 리조트 공사장이 줄을 잇는다. 도시는 그렇게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오토바이와 차량이 뒤섞인 도심은 하루 종일 소음에 취해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더욱 요란한 거리.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다. 나이, 성별, 연령 등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특별한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인도는 상점에서 바깥으로 내어 놓은 물건들과 각종 먹거리를 판매하는 노점으로 북적인다. 그나마 빈 공간은 오토바이의 주차공간이 된 지 오래.  



중심가의 유럽식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다. 지금은 이방인이라면 꼭 한 번 들렀다 가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모양새만으로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건물의 색이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핑크. 관광객이 뜸해지는 늦은 오후, 연휴를 코 앞에 둔 금요일, 성당은 문을 활짝 열고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한다.



복잡한 거리를 지나 강변에 이르자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아서 그런지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근하다.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아 건너기 수월하고, 건물이 없어 한결 여유롭다. 다리에서 작은 쇼(show)가 열리는 주말 저녁에는 사람이 제법 모인다고.  



오토바이 부대의 뒤를 쫓아 다리를 건넜다. 오늘의 바다는 일몰의 쓸쓸함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은 보트와 튜브가 하루의 마감을 알리고 있지만, 현지인의 불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하늘빛이 짙어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 관광객이 떠난 자리는 일과를 무사히 마친 시민들로 채워진다.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불금이다. 모래사장 한쪽에서 청소년들이 팀을 나누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작은 어딘가 어설프고 엉성했지만, 온몸에서 뿌듯함, 즐거움, 행복함 같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꼬마들은 체육복을 입은 채로 깔깔대며 공놀이에 빠져있다. 오래전 우리의 골목길이 떠올랐다. 해가 저물 때까지 친구들과 노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던 때. 아직 여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날들이 살아있었다.  



신나는 휴일 전야. 온 거리의 상점이 들썩거린다. 오토바이가 잔뜩 주차된 식당 안쪽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는 환경은 달라도 왠지 친숙한 광경. 사실 나 또한 대부분의 날들은 이들과 별 다르지 않다. 퇴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여행자들이 내게서 이들과 같은 표정을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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