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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28. 2017

가을의 문턱

제천 청풍호 메밀꽃

아침마다 겉옷을 들었다 놨다 고민하는 환절기가 돌아왔다. 퇴근길에 지하철역 출구에서 올려다보는 하늘빛은 점점 빠르게 어두워진다. 그렇게 어렴풋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만,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은 다가오는 계절의 꽃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였다. 강렬한 장면은 자연스럽게 상징이 된다.



제천 청풍호 메밀꽃

제천에서 ‘청풍호’로 불리는 ‘충주호’는 제천, 충주, 단양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를 말한다. 충주댐을 지으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주호’로 명명되었다. 가장 많은 토지를 내어준 제천시는 수몰된 마을의 이름(청풍면)을 따서 ‘청풍호’라 부르고 있다. 호수를 끼고 달리다 보면 무심하게 툭 던져놓은 풍경에 시선이 꽂혀 몇 번이나 멈추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은 오늘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는 날이 있다. 푸른 바탕에 흰색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메밀밭을 마주하면, 여름이 남은 듯해도 가을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멀리서 봤을 때는 온통 꽃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벌과 색색의 나비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때를 제대로 만난 이들은 만개한 꽃무리를 헤집으며 꿀을 찾느라 분주하다.



건너편의 수풀에도 두 계절이 섞여있다.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꽃부터 생김새조차 낯선 꽃까지, 오랜만에 만나는 다채로운 색이다. 어린 시절에 자주 보던 몇몇, 여름을 보여주는 나팔꽃이나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에게는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서로 다른 계절을 발견하는 시기. 여름의 끝에서 몇 번의 재채기를 내뱉으며 가을을 맞이한다. 여름꽃에 이어 메밀꽃까지 지고 나면 호숫가의 가을도 깊어지겠지. 오늘도 시간은 가을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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