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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Jan 04. 2020

[인터뷰] 고레에다 감독이 밝히는 일본 영화의 미래

Newspicks 2020 대예측 번역

새해 들어 첫 포스팅이네요.

연초에는 각 언론사들이 산업별 전망이나 예측 기사들을 많이 내놓는데, 콘텐츠&컬처 분야에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터뷰가 newspicks에 등장, 저의 팬심이 발동했는데요.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후일담과 스트리밍 영화에 대한 솔직한 생각, 일본 영화계를 향한 거침없는 발언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에 더 집중하고 싶다 (2019.12.21)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진실> (국내 개봉명: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돌아왔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선 '영화'라는 매체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만, 과연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면 된다


까뜨린느 드뇌브를 섭외해 프랑스 올로케이션으로 찍은 신작 '진실'. 현장에서는  99% 프랑스어가 쓰였고  "10시 기준 촬영 시작, 11시 점심, 12시-19시 반까지 촬영 (휴식시간 X), 주말 휴무"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일본과는 매우 다른 환경이었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고생스러운 고생은 없었다" 라며 미소를 지었다.


고레에다 : 메인 캐스팅과 메인 스텝은 감사하게도 희망했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 비중있는 조연들도 오디션을 통해 훌륭한 배우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를 잘 아는 일본인 프로듀서와 좋은 통역사 덕분에 일본에서 찍던 방식대로 프랑스에서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아역 배우에 대한 디렉션, 촬영을 진행하면서 배우를 관찰하고 이에 맞춰 대본을 수정하는 방식이나 조감독과 별도로 나에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감독 어시스턴트가 붙는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줄리엣 비노쉬는 사전에 "수정된 대본을 당일 건네시면 안 돼요."라고 못을 박았었는데, 다행히도 금세 마음이 돌아섰다. 너무 빨리 "포기했어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웃음)


프랑스어를 못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연기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을지 실은 나 자신도 불안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대본 한 씬만 보더라도 연기는 물론 어느 부분에서 감정을 표출해야 할지 감이 왔던 경험들이 이내  떠올랐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예고편


내가 쓴 대본에 한정된 얘기이긴 하지만, 언어 자체의 의미는 모르더라도 내가 연출한 분량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그때 확신했다. 현장에서는 주연 배우 중 한 명인 에단 호크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면 된다"라고 얘기해줬는데, 그게 맞는 말이었다.


"이런 내용을 찍고 싶다" " 이런 화면을 담고 싶다"는 비전을 명확하게 공유하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존중할 수 있다면 언어나 종교, 인종, 문화의 차이는 크리에이티브의 허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

영화 소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대개는 TV 뉴스나 가족,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하게 된다. 좀 더 관심이 생기면 전문 서적이나 참고 도서 등을 읽고 영상 자료를 찾아본다. 이렇게 조금씩 살이 붙은 소재나 테마가  한 편의 기획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진실>의 경우, 벌써 16년 전에 의뢰를 받아 작성해 두었던,  노(老) 배우의 분장실을 무대로 한 <클로크(cloak) >라는 연극이 출발점이다. 2011년에 줄리엣 비노쉬와 대화를 나누면서 "언젠가 둘이서 작업해보자"라고  말했었는데, 4년 후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그때 대본 속 여배우 엄마와  여배우가 되지 못했던 딸의 설정을 바꾸면 (까뜨린느) 드뇌브와 비노쉬가 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기에 영화를 20년 이상 찍었던 배우들은 어떤 존재일까?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고찰이 덧입혀지면서 드뇌브와 비노쉬 배우의 그동안의 인터뷰 대화들을 대본에 담았다. "부모 자식을 이어주는 것은 혈연인가, 아니면 시간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만큼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진실> 또한 평소의 생활이나 영화 제작을 통해 얻어진 여러 가지 생각과 감각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영화는 극장과 떨어질 수 없어


 201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한 넷플릭스 제작의 <로마>는 제작비 1500만 달러 (약 170억 원), 전미 흥행 수입은 19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넷플릭스 유통으로 충분히 재미를 봤다.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아이리시맨> 의 제작비는 1억 5900만 달러 (약 1700억 원) 였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에는 수년간 투자자가 없었다" 고 밝힌 바 있다.


한편 2018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의 전 세계 누적 흥행수입 랭킹을 보면 TOP10 가운데 다섯 작품이 코믹 원작이다. 고레에다 감독 자신도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데.."


고레에다 : 할리우드 제작사 조차 오리지널 작품에는 거액의 예산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아도 좋으니 오리지널을 찍고 싶다"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 스트리밍 유통이 아닌,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가장 큰 이유는 극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웃음). 독자로써 책이 종이와 떨어질 수 없듯이 관객으로서, 창작자로서 영화는 극장과 분리할 수 없다.


극장을 경유하지 않은 영상을 '영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영화는 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같은 작품을 보고, 끝난 후에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경험들은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도 벌써 60대를 바라보는 나이라서 인생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웃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앞으로도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일본 영화업계도 할리우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58년에 전국에 약 7천 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2015년에는 580개 관까지 줄어들었다. 스크린 수로 보면 늘기는 했으나 2018년 12월 기준 전국 3561개의 스크린 중 약 88%가  멀티플렉스다. 한편 넷플릿스의 일본 국내 회원수는 300만 명을 넘었다.


고레에다  아쉽지만 지금의 일본 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낙관적이라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영화 흥행은 구태의연한 시스템에 의존하고,  독립영화를 지탱해온 배급사들이 줄면서 작은 영화관(미니 시어터) 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관객 취향에 맞춰 작품 흥행 규모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외화들도 도쿄를 제외하면 할리우드 이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은 최근 20년 사이  오히려 후퇴했다. 게다가 토오쿠(東宝), 쇼치쿠(松竹), 토에이(東映) 3대 배급사들은 일본 영화를 해외에 판매하려는 전략이 보이질 않는다. 여전히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고,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오리지널 작품에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배급사들도 스트리밍 유통이 리스크가 낮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점차 극장은 사라질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일본도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 된다면 일본 영화는 문화로써 산업으로써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막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공적 조성 시스템이 확립되어, 영화관 입장료 세금(티켓 가격의 10.7%)이나 방송국 수입세, DVD판매세 등이 CNC (프랑스 국립영화 센터)에 재원으로 확보되어 (총예산 약 8천억 원) 일정 비율의 보조금이 차기작 제작이나 독립 영화관 경영, 신인감독 육성 등에 쓰일 수 있다. 즉,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를 인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의 전제는 무엇일까.


영화는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라는 철학이다. 칸 영화제에 가 보면, 확실히 작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의 장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화라는 풍요로운 문화 자산을 위해 우리들은 어떤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지만, '문화'를 둘러싼 환경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공익'을 위한 세금이 쓰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거면 자기 돈으로 하면 되지. 국가에 왜 손을 벌리나"라는 생각을 바꾸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익숙한 젊은 세대를 극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분명 창작자들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는 더 손을 쓸 수가 없다. 나 스스로도 오리지널 작품을 극장에 걸 수 있는 창작자를 육성하기 위해 '분부쿠(分福)'라는 창작자 집단을 만들었다. 내 힘으로 '극장에 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을 한 편이라도 더 남겨서,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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