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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Feb 15. 2020

[인터뷰] 봉준호, 기생충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

WIRED JAPAN 번역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마법같은 스토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한주 였습니다.


일본 매체들도 앞다퉈 봉 감독님의 특집과 분석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수상의 의미 부터 일본 영화는 왜 한국에 뒤쳐질 수 밖에 없었는지, BTS와 더불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한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경쟁력, 심지어 한국의 반지하 거주 체험까지..일본 언론의 디테일한 관심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네요.


번역하면서 같이 보고 싶은 기사가 너무나 많았지만, 역시나 오래 두고 읽기에는 인터뷰가 적격이라 지난  1월 <기생충> 일본 개봉 당시의 WIRED JAPAN 단독 인터뷰 기사를 골라봤습니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굉장히 deep한 내용들이라 #Bong_hive 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원문 : "그물을 빠져가나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다 "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기생충> 의 깊은 뜻  (2019.1.18)

TEXT : Fumihisa Miyata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로 전 세계를 놀라움과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리고 있는 영화 <기생충>.

공동 각본을 집필하고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이 일본을 방문했다. <기생충> 은 어떻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나. 이토록 완벽하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봉준호 감독을 만나 직접 들어 보았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충격적인 전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화제작 <기생충> 이 드디어 일본에 상륙!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이 부유한 IT회사 사장의 저택에 서서히 잠입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이하는 내용을 그린 이 작품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적이면서도 소름끼칠만큼 ‘피지컬한’ 그의 영화가 어떻게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그 커다란 몸을 비틀어가며 고민을 거듭하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Q.  <기생충> 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하던 부자이건 상관없이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봐 온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에서도 뭔가 새로운 경지에 오른 느낌입니다.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드셨나요?


A. 한국에서 <기생충> 이 상영 중일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한 관객이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자마자 지하철에 탔는데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계속 킁킁거렸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힌 영화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Q. '냄새'는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이지요.


A.  예전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지면 좋겠다, 여러 가지 감정들을 끌어내 보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이런 것들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스토리를 포함해 "뭔가 찜찜한 상태로 몰아가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거나 “불편한 마음 상태가 되는 것이 관객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이다"라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Q. 그 불편한 마음의 반대 편에는 분명 엔터테인먼트적인, 쾌락적인 장치들도 마련해두셨죠. 영화는 쾌락적인 것이다 라는 점에도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A. 저에게는 이런 욕망, 제가 추구하고 원하는 관객의 마음 상태.. 같은 것이 분명 있어요. 뭐냐 하면, 제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남짓 동안은 뒤척이지도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는 그런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진동 모드로 해둔 핸드폰으로 '집에 불이 났다'라는 메시지가 오더라도 전원을 꺼버리게 만드는 그런 상태요 (웃음). 2시간 내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완전히 몰입되는 느낌이길 원하는 거죠.


마음이 요동치고 여러 가지 생각에 지배당하다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헤어 나올 수 없었으면 좋겠어요. 보는 동안에는 완전히 무아지경이 되어 영화 속으로 푹 빠져드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전에 샤워하려고 옷을 벗었는데 내 몸 어딘가에 멍 자국이 있거나 상처가 생긴 것을 그제야 알아차리는 거죠. "이게 왜 이런 거지?" 라며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가게 만드는 그런 상태로 관객을 몰아가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변태라는 의미


Q.  냄새, 멍 자국, 상처,  감독 봉준호라는 사람은 대단히 피지컬, 육체파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회적인 관심을 받기 전, 나의 정체성은 '변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변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A.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 영화적 재미와 흥분이 극적으로 파워풀 해지려면 역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에 대한 관찰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깊게 파헤치고 싶고, 그 방법론적인 접근이 바로 '변태'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고 남들이 꺼려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변태적'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독창적'이라는 의미도 될 수 있겠네요.


나아가 '사람'을 파헤쳐 가다 보면 '사람들'로 확장되어 이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예요. 사람은 무리를 만들고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가는 존재라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죠.  예를 들어 <마더 (2009)> 는 좀 더 개인적인 작품이었죠.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내용에 집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좀 더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날카롭게 파헤치는 과정들입니다. 제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아까 제 영화에 '피지컬' 한 부분들이 있다고 말씀 주셨는데, 굉장히 기분 좋은 얘기였어요. 제 영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항상 육체적인 느낌들이  잘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기생충> 에도 그런 피지컬 한 요소들을 추구하기도 했고요.


<기생충> 일본 개봉 90초 예고편. 2020년 1월 10일 개봉


Q. 피지컬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영화의 주 배경인 '반지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A. 한국 사람들에게 '반지하'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감각이나 기억이 동반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곰팡이 내가 나고 습하고 10분 정도 해가 들었나 싶더니 금새 사라지는 공간. 영화에서는 꼽등이가 등장하는데 반지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벌레예요. 저도 대학 다닐 때 반지하에 사는 친구 집에서 자주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생생하고 육체적인 기억을 갖고 있는 공간이지요. 송강호 배우가 맡았던 한 가정의 아버지 역할과 딱 맞아떨어지는,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Q. 인간을 깊게 파헤치기 위한 피지컬이라는 철학의 기원은 어디서 온 걸까요? 감독님의 개인적인 영화적 경험인지, 라이프 스토리 안에서 그런 철학이 만들어진 건지 궁금하네요.


A. '철학'이라는 표현을 써주셔서 너무나 감사한데, 제 스스로도 아직 정리가 잘 안된 것 같아요. '철학'이라고 할 만큼 깊고 넓은 체계가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 보다 집착이 강한 제 성격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것이 충동적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고요.


제 안에서는 어떤 상징이나 은유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평론가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를 해석하려고 하시지만, 그 해석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물고기 되고 싶은 충동이 존재한다고 해야하나.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로 확장된다. 사람을 담는 것이 봉준호 감독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기생충> 또한  '변태적' 상상력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틀에 갇히지 않는 즐거움


Q.  사람을 고민하다 보면 '사람들'이나 '사회'로 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감독님 자신은 현실 세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영화의 창작자로서 아이덴티티가 강한 편인가요? 아니면 더 나아가 아시아, 또는 세계 영화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강한 걸까요?


A.  저는 대체로 경계를 없애고 싶고 분류되는 것을 꺼려하는, 카테고라이징 되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어요.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거든요. 예전에는 제 영화에 대해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장르의 구분이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특히 마케팅 담당자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 감독님,  이 시나리오는 어떤 장르인가요?"라고 물어오시면 "저도 잘 몰라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장르별로 작품이 분류되어 있는데요. 액션, 드라마.. 이 중에 어디에 제 작품을 두어야 할지 주인도 헷갈리는 영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그 점이 자랑스럽기도 해요.


이번에  <기생충> 이 출품된 칸 영화제에서 기쁜 일이 하나 있었는데, 물론 큰 상을 받게 된 것도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던 것은 미국의 어느 영화지에서 "봉준호 자체가 장르이다. 더 이상 봉준호를 장르로 규정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 영화가 한국적인 것인지, 또는 보편적인 글로벌한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헷갈려했으면 좋겠어요. 딱히 규정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오히려 좋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논쟁이 오가는 게 즐겁습니다.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존재로 '반지하'를 담은 봉준호. 재개발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도쿄의 거리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Q. 역시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영화를 만들 때 즐거운 순간은 언제입니까?

A. 음.. 사운드 믹싱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네요.


Q.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A.  무엇보다 일단 귀가 즐겁거든요. 일 년 내내 눈이 혹사당하고 있어서 감각의 중심이 귀로 이동되는 그 순간. 귀가 즐거워집니다.


Q.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계속 몸이 혹사당하는 게 아닐까요?

A.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귀를 쓰는 일은 그래도 즐기는 것 같아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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