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안녕

by 허미희

“아이들 다 키워 놓고 나면, 나 혼자 살 거야.”

여자의 음성은 조용하나 단호했다. 모든 감정의 결정체를 담아낸 명확한 한마디였다. 순간 중년 부부의 얽히고설킨 시끄러운 감정이 풀썩 내려앉았다. 상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던 남편의 고집이 무색해지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푸르스름한 밤하늘 아파트 모퉁이에서 곁눈질하던 달님도 이쯤와선 빛을 잃는다.


그런 그들에게 느닷없이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대학 가면서 큰애도 집을 떠났고, 중학생 아들마저 강원도에서 열리는 여름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엔 매정한 맘으로 분노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무슨 일로 싸워서 그랬는지는 도통 기억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래도 얼마 동안은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 되지 않나? 캠프로 가는 차 속에서 여자는 내내 고민스러웠다. 그런 분위기로 모두 말없이 횡성에 도착하여 아들을 캠프에 입소시키고는 두 사람만 다시 차에 올랐다.

산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 미끄러지는 차창 밖으로 저마다 외로이 서있는 나무들이 뒤로 드러눕는 풍경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여자는 어색한 속내를 숨기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 휴양림에 가서 차나 한 잔 하는 건 어떠냐고. 같은 심사였는지 평소 같으면 단박에 거절했을 그가 순순히 지도를 검색했다. 미친듯이 일에 파묻혀 살면서 무드나 낭만 따위는 개천에 집어던지고 산 지 오래된 남자였다.

“여기서 반대편 길로 30분은 더 가야 되는데 안 피곤하겠어?”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며 그가 물었다.

“그런가?”

쉬이 지치는 그녀라 잠시 망설였다.

“큰애 학교에 가서 같이 밥이나 먹을까?”

딸을 만나러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내심 반가우면서도 아닌 척,

“그럴까?”

답했더니 이내 그가 전화로 딸 아이의 허락을 받았다.


여름휴가가 절정인 7월의 끄트머리라 피서차량이 상하행선을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서울 신림동으로 가는 길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햇볕을 뚫고 묵묵히 운전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운 마음에서 놓여난 여자는 폰 스피커로 트롯트를 틀어놓은 채 혼미한 잠 속을 오락가락했다.

차 속에서 듣는 음악이 그 사람의 수준을 말해 준다면 그들의 취향은 좀 모자라는 데가 있었다. 50살 동갑인 남자는 워크 홀릭답게 <새마을노래> <나의 조국> 같은 산업화시대의 건전가요를 선호했고 여자는 주구장창 꺾어지는 ‘나훈아’ 노래만 고집하였다. 이기적인 그녀가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나의 조국>을 퇴짜 놓는 반면, 남자는 정작 느끼하여 싫어하면서도 ‘나훈아’ 노래를 말없이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앞유리창에 내리쬐는햇빛을 피해 뒷좌석에 앉은 아내를 힐끔힐끔 돌아다보았다. ‘옆에 앉았으면….’ 하는 그의 무언의 몸짓인 걸 알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마음의 거리를 두었다.

2학년인 큰애는 자취를 하면서 여름방학 중에도 학교에서 지냈다. 몇 달만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해후한 그들은 가까운 학생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앳된 연인으로 값싼 식사를 나눴던 추억의 장소였지만 이젠 딸을 만나러 온 학부모일 뿐, 굳이 떠오른 옛기억을 화제로 올리진 않았다. 식사를 대접한 딸은 관악산 아래 넓게 자리한 캠퍼스 중에서 자기가 하루동안 걸어 다니는 길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아침 나절의 도서관에서부터 저녁무렵 체육관까지 아이의 일과를 따라 산책에 나섰다.

사범대 건물 앞을 지날 때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울창한 수풀 사이로 청록색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처음 만난 스무 살에서 몇 년이 더 흐른 스물여섯 시절, 그녀가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기어코 건너고야 말았던 연못임이 분명했다.


교사로 근무한 지 3년이 되던 겨울이었다. 학교나 학급에서 그녀의 위치도 안정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즈음이면 누구나 대학원에 진학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때였다. 가까운 지방교육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밟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그러나 남자 친구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S대 대학원 시험을 보기로 하였다.

물론 사범대학 과정이었으니 교육대학에서 겨우 국어학 개론이나 문학 개론 정도 들은 실력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직장 일로 바쁘다가도 주말이면 멀리 S대로 가서 기출문제를 복사하여 우편으로 나르는 역할을 신바람 나게 하는 그의 열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 시험이야 볼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12월 학기말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기출문제 경향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조퇴를 달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범대학 건물 강의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련되고 지적인 뽀얀 피부의 청춘들 사이에 앉아 문제지를 받아 들었다. 단 한 줄의 문제에 드넓은 백지를 채워 나가야 하는 시간이 정말 고역이었다. 까만 비로드 원피스를 차려입은 임산부가 고개 숙여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는 모습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런 어설픈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그녀도 생뚱맞지만 실은 그런 면에선 남자 친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던 그는 전혀 준비 없이 고시를 두어 번 보았다. 공부도 안 했는데 무슨 고시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는, “몇 번 치다 보면 저절로 공부가 되거든. 그러면 혹시 패스할 지 알아?” 라고 답했다. 그녀는 일찌기 복권을 긁어대는 그의 뒷모습을 종종 목격했던지라 그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시큰둥하게 대꾸조차 안 했다. 그런 비현실적인 남자친구의 장단에 실력도 안 되는 대학원 시험을 치느라 쩔쩔매는 그녀도 실은 똑같은 부류였던 셈이다.

후줄근히 답지를 내고 나오니 줄곧 밖에서 기다리던 그가 활짝 웃으며 안아줄 듯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니, 뭐 하러 조퇴까지 달고 와서 이 고생을 한 거야?’ 하는 심통이 났다. 답지를 메우느라 얼마나 글짓기를 해 댔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던 참이었다. 심보 뒤틀린 그녀는 팔 벌리고 다가선 그를 싹 외면한 채 미꾸라지처럼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딱 그 짝이었다.

길도 모르면서 도망치듯 걸어가는 그녀 앞에, 나뭇가지 사이로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못이 나타났다. 신기루를 발견한듯 가까이 다가서니 제법 커다란 연못이었다. 한가운데에는 동앗줄로 엮은 구름다리도 놓여 있었다. 그 구름다리가 그녀를 동화 속으로 안내해 줄 것 같았다. 순간 마음이 활짝 개였다. 양팔로 다리 난간을 잡고 출렁 올라섰다.

“안 돼! 미희야, 건너면 안 돼!”

등 뒤에서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힐끗 돌아보니 어리벙벙 뒤처져 따라오던 그가 손나팔을 만들어 외치고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면 헤어지게 된단 말이야!”

그 말에 순간 그녀는 장난끼가 동했다. 애타는 그의 만류를 뒤로 하고 후다닥 구름다리 위로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팔팔 생기를 띠고 뛰어가다 냉큼 남자친구를 뒤돌아보았다. 황당한 여자의 반응에 마른 하늘에 번개 맞은 표정이 되어 망연자실 서 있는 그가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깔깔대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잰 걸음을 멈추고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쭈욱 뻗었다. 구름다리를 눈 앞에 두고도 건너지 못하고 연못을 빙 돌아서 온 그에게 약 올리듯 물었다.

“으이구, 그런 것도 전설이야?”

그즈음 애인 두고 입대한 신병처럼 불안했던 그는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철없던 스무 살에 만난 그녀가 졸업하고 고향에 발령이 나면서 왠지 다른 남자가 채어가 버릴 것 같아 몇 년간 조바심을 내던 그였었다.

잠깐의 일탈로 대학원 시험 따윈 싹 잊어버린 그녀가 그에게 업어 달라 응석을 부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내밀어 그녀를 업었다. 넓은 캠퍼스를 지나 대학 이니셜을 본뜬 높다란 교문을 겨우 벗어났다. 먼 거리에 힘들었을 텐데도 끝까지 내려놓지 않은 그였고, 그녀도 마음 놓고 응석을 부리며 따뜻한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구수한 냄새에 고개를 드니 빨간 백열등 주위로 희뿌연 연기가 자욱한 고깃집이었다. 훅 끼쳐 오는 시장기에 그의 등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삼삼오오 먹고 마시는 청춘들을 바라보노라니 그 광경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순간 그의 등이 추운 겨울날 나무 등걸처럼 쓸쓸해 보였다. 4년간의 고학시절을 지나 군복무 대신 입사한 대기업이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고지식하기만 그가 딱딱한 조직 속에서 겉돌았던 걸까? 하릴없이 고시를 기웃거렸던 그의 적막함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녀 하나 움켜쥐고 젊은 날을 버텨내고 있던 그가 아니었나. 그제야 그녀는 마음 속으로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바보야, 헤어지긴 우리가 왜 헤어져…?’


여자의 필름은 거기서 뚝 끊겨져 있었다. 그날 저녁 허기를 달랜 게 삼겹살인지 불고긴지…, 맛있었는지 어땠는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유독 그의 뒷모습만 어제 본 듯 생생했다. 연못가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그가 다가와 물었다.

“당신이 건넜던 다리가 없어졌지?”

“응….”

짐짓 그도 20대 청춘으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흔적을 찾았던 모양이다. 열에 아홉은 헤어졌을 청춘들이 말없는 구름다리를 원망했을까? 다리 대신 가장자리를 따라 난간이 쳐진 나무 데크가 깔려 있었다. 딸의 설명으로는 밤이 되면 데크를 따라 늘어선 키 낮은 조명등이 알록달록하게 수면을 비춘다고 하였다.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체육관까지 좀 더 걸었다. 그 옛날처럼 관악산 골짜기 바람이 어느새 중년 부부의 메마른 손을 나란히 잡게 했다. 오늘 공부는 파장이라며 도서관에서 가방을 챙겨온 딸을 신림동 자취방에 내려주고 그들은 수원으로 향했다. 차속에는 흐르는 FM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에 두 사람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파트에 들어선 그들은 이제 썰렁한 빈집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갛게 정리되어 있는 신혼집에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는 기분이 들었다. 20여 년 만에 갖는 단 둘만의 시간, 그도 그녀도 괜히 설레는 밤이 될 것 같았다.

열려진 창 너머 아파트 꼭대기에 걸려 내다보던 달님도 오늘 밤은 뽀얗게 웃고 있었다.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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