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잃어 버린 것

by 허미희

산모롱이 돌아가는 굽은 도로에 외따로 앉아 있는 오두막집이었다. 수줍게 돌아 앉아 있으면서 바깥세상이 궁금했는지 여닫이 창 두 개가 나란히 도로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었다. 한지를 바른 그 격자창이 열리면 창틀에 매달려 있던 노란 알전구가 길 가는 행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 집엘 들어가고 싶었다. 그것도 혼자…. 시간은 어스름이 지는 초저녁이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했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아야 했다. 이 세상에 그런 곳이 얼마나 필요한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퇴근 후 시장을 오가다 그 오두막집에 자꾸 눈길을 빼앗기며 나는 남몰래 그 집을 흠모하게 되었다. 흠모하는 만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 학교에서 처참해진 어느 봄날이었다. 사랑 밖에 모르는데,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는데, 가끔 장난치며 어린 것들과 함께 웃는 것 밖에 모르는데, 세상사 지나오며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 일에 잔뜩 성이 난 학부모가 선생인 나를 속죄양으로 무참히 할퀴었다. 그래도 저녁 준비는 해야겠기에 퇴근길 고등어 한 마리 사들고 그 집 앞을 지나오는데 평소처럼 열린 창 너머로 고개 내민 노란 등(燈)이 그날따라 애잔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 가자, 저 곳으로 가자.

묵직한 나무문을 끼익 밀고 들어섰다. 다시 나타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양옆으로 길고 앞으로 짧은 낡은 기와집인데 제법 기다란 공간의 짜임새가 반듯했다. 오른쪽으로는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무탁자 대여섯 개가 칸칸이 나뉘어져 있고 왼쪽엔 주인장 부부가 쉬는 반지르르한 대청마루와 손님이 들 수 있는 아늑한 안방이 마주 보고 있었다. 안방 앞 댓돌에 놓인 하얀 남자 고무신 한 켤레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주섬주섬 오른편 깊숙한 곳인 창가 아래 탁자로 가서 앉았다. 이른 초저녁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어 쭈뼛거리는 내 모습을 들키지 않아 맘이 놓였다. 앉은 자리 바로 옆에는 흙으로 바른 벽난로가 있었는데 두꺼운 쇠문으로 닫혀 있었다. 통로 한가운데에 있는 연탄난로가 큰 양은 주전자의 보리차를 자그르르 끓이고 있었다.

60 초로에 머리 먼저 새어버린 백발의 주인장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나는 항아리 막걸리와 햇감자부침개를 주문하였다. 손님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왔다. 뜨거운 무쇠팬에 구워져 나온 고소한 부침개를 한 입 머금은 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향긋한 감자내음과 칼칼한 막걸리가 어우러져 가슴 언저리를 훑으며 내려갔다. 음식으로 힐링이 된다면, 술 한 잔이 나를 위로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15년 전 수원에서 천안시 성환읍으로 출퇴근 할 때마다 차 속에서 수없이 들었던 가수 김광석의 노래가 축 처진 내 어깨를 휘돌아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어느 새 얼굴이 보이지 않는 칸막이 너머에는 사람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중년의 동창 남녀들이 왁자하게 나누는 얘기들이 들려왔다. ‘누구야!’라고 이름을 불러대며 추억을 더듬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릴 적 내 모습도 들어 있었다. 통로 건너편 탁자에는 역시 50대 중반은 된 듯한 두 여자가 머리를 맞대고 세일즈의 고충을 나누는 중이었다.

혼자 마시는 막걸리 두어 잔으로 충분히 주변탐색을 한 나는 내심 이 곳을 점 찍으며 주인장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주인장은 조용히 계산처리를 해주며 그저 말없는 가운데 공손히 손님을 보내 주었다. 등 뒤로 보이는 낡은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마그네틱 테잎과 낡은 cd 케이스만이 나이지긋한 주인장의 연륜을 말해 주는 듯했다. 육중한 통나무 대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니 들어설 때는 보지 못한 문간 흙벽이 눈에 들어왔다. 무뎌진 낡은 농기구들이 세월을 머금고 고즈넉히 걸려 있었다. 좁다란 골목이지만 오른편 담벼락에는 물레방아가 삐거덕대며 물을 받아 내리고, 뒤돌아 골목 끝 산기슭에는 서너 개의 옹기들이 정답게 드러누워 있었다. 그 중 옹기 밖으로 삐죽이 고개 내민 하얀 풀꽃 하나가 나를 말갛게 쳐다보았다.


내 아지트와의 첫 만남은 그 이후 3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글 한편이 마무리되면 무작정 그 집으로 달려가 막걸리를 자작하며 하염없이 통속적인 가요에 취했다. 경상도에서 서울 출장 온 촌놈 친구가 서울 사는 동기들을 대동하고 호기롭게 나를 찾으면 나 또한 당당하게 수원의 내(?) 주막으로 그들을 불렀다. 직장에서 회식 후 가까운 동료 예닐곱 명만 따로 대동하여 2차로 막걸리 대신 전통차를 마시러 들르기도 했다. 이런 때는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통나무 탁자 대신 훈민정음 해례본 글귀가 도배 되어 있는 안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 날,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어느 나이 지긋한 남선생님이 쪽마루 밑 댓돌에 내려서는 내 발 앞에 구두를 가지런히 놓아 주었다. 그 장면은 유난히 내 가슴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삶에 지쳐 힘겨운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 날에는 나 홀로 찾아가 항아리의 절반도 넘게 마시며 평생 알아내지 못한 내 주량을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 항아리 하나를 다 비우고 ‘여기까지구나’ 느꼈을 때는 이미 눈꺼풀이 무거워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주막을 나설 때 흔들리는 모습을 감추느라 온몸에 힘을 주어 어깨마저 뻣뻣했지만 백발의 주인장은 술 취한 중년 여인을 모른 척 해주었다. 한 번의 눈 마주침도 없이, 비껴선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만 뛴 주인장의 말없는 배려는 또 얼마나 멋진가?

그런 인연을 맺으며 정을 나누던 곳이었는데... 올 해, 새로 맡은 업무로 한 학기를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느라 봄이 가고 여름이 무르익도록 주막에 들르지 못했다. 드디어 방학을 맞아 수목이 무성한 그 집을 찾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오두막집은 도로변에 접한 격자창 너머로 집기들을 쏟아내 놓고는 금줄을 치고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렸다. 집을 철거 당한 사람처럼 아니 애인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처럼 내 눈동자는 오랫동안 흔들렸다.

오두막이 허물어진 자리는 내내 나를 슬프게 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붉은 흙이 다져지고 무쇠 철근이 땅에 박히더니 이제는 주사위처럼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가는 중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드버그>는 ‘제 3의 장소’란 저서에서 집과 직장 외에 스트레스 해소와 에너지 충전을 위한 제 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런 공간을 ‘아지트’ 라고 하는데, 격식 없이 소박하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사람이 일상에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하는데….

하여 이 가을, 나는 사랑하던 아지트를 잃어버리고 도심의 빌딩 숲에서 방황 중이다. (201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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