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어른일기 Jun 27. 2022

오늘도 어른은 연기합니다

어둠이 시작된 골목길에 신비로운 빛이 번쩍였다.


<OPEN >    


이곳은 밤이면 불을 밝히고 어둠을 물리치는 곳이다. 문을 열자 미적지근한 온도가 느껴졌고 귓가에는 끈적하고 나른한 재즈가 파고들었다.     

길었던 연극을 막 끝마치고 난 어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백 오늘은 글렌피딕 15y 1잔 주세요”          


윤은 둥근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가면을 벗고서 왼쪽 의자에 올려두었다. 가면은 온종일 쓰고 있어서 조금 축축했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일이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맨 안쪽에 여자 두 명이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얼음이 가득 담겨 청량해 보이는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연기를 하셨나요?     


백이 넌지시 물었다.     


“나쁘지 않았어요. 그냥 보통의 어른을 연기했답니다.     


가장 까다로운 연기를 했다고 말하면서 백은 주문한 위스키를 찾기 위해 술이 가득한 곳으로 몸을 돌렸다.     

윤은 테이블에 놓인 태블릿에 핸드폰을 들이댔다. 쿠폰이 한 장 찍혔고 그 위로 메시지가 떴다.     


[위로가 필요한 밤입니다]     


백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물 한 잔과 주문한 위스키를 테이블에 두었다.     

윤은 옅은 황금빛을 입가에 가져가 목을 살짝 적셨다. 목구멍을 타고 빠르게 흘러 내려가던 위스키가 배꼽에서 팡하고 터지며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찬물만 벌컥벌컥 마셔서 온종일 차갑던 뱃속이 따뜻해졌다. 술 한 모금에 내려갔던 온도가 36.5도로 맞춰졌다. 백은 그사이 프레첼이 담긴 그릇을 무심하게 두고서 우아하게 퇴장했다.  

    

윤이 다시 술잔을 들 때 bar 문이 열렸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대화하면서 들어왔다. 그들은 오늘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았을까? 윤은 궁금했지만 탐정 놀이는 그만하기로 했다. 이 순간을 그런 일에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한 모금 한 모금 소중히 마시면서 오늘을 돌아보았다.  

    

Bar에 들어왔을 땐 어둠이 시작되었는데 창문을 보니 어느새 바깥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윤은 비워져 가는 잔을 바라보며 한 잔을 더 마실까 잠시 고민했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가면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윤이 일어나자 잔을 닦던 백이 계산대로 다가왔다.      


“위로되셨나요?     


백이 물었다.     


“네 오늘도 역시 위로가 되었답니다.”     


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백은 옅은 미소로 보답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낮과 다르게 기분 좋은 바람이 몸을 타고 지나갔다.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와 집으로 향해 걸었다. 윤은 오늘의 연극을 무사히 마쳤고 내일의 연극을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해’라는 바다에 휩쓸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