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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23. 2022

‘우울해’라는 바다에 휩쓸려

내가 ‘우울해’ 라는 바다에 휩쓸려 온 지 오늘로 딱 0일이다. 여기서 0이란 숫자 안에는 며칠 밤이지만, 결코 며칠인지 짐작할 수 없는 밤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울해 라는 바다가 지닌 특징이다. 서서히 잠기지만 빠졌다는 걸 감지하는 순간 우울의 파도는 느닷없이 덮쳐온다. 처음엔 넘실거리다가 철썩거리다가 이내 고요하다가 다시 넘실댄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벗어나는 법은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손을 저어야 하고 발을 움직여야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헤엄쳐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울해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벗어나더라도 다시 휩쓸릴지 모르니 안심하긴 이르다.

    

우울해의 밤은 고약하다. 밤이 되면 검은 하늘과 검은 바다가 하나가 되어 공포는 배가 된다. 그래서 낮보다 밤을 조심해야 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두 개의 달을 볼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당신. 당신은 모릅니다. 우울해 바다는 달과 별이 없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우울해 바다 앞 경고 안내판이 그것을 말해준다.         


 

<위험>

여기서부터 우울해 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일몰 이후 접근 금지     

관리자 : 아무것도 안 했군     



난 ‘우울해’에서 빠져나와 집에 도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다. 어제보다 집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때 처마 밑에 달아놓은 풍경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청아하고 편안함을 주는 소리다. 나는 힘을 내서 소리를 향해 나아갔다. 얼마나 헤엄쳤을까? 입가에 짭조름한 우울해의 바닷물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우울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했다.      


나는 조금 지쳐있었고 멍했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래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다신 휩쓸리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저 멀리 내 집이 보였다.


‘오늘도’ 섬에 ‘잘 보냈군’.


나 혼자 살고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외딴섬이다.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 알갱이를 털어가며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모래사장을 지나자 산책로가 보였다. 양쪽으로 새빨간 장미가 도도하게 피어있었다. 장미밭을 지나자 이름 모를 풀꽃들이 있었다. 안 본 사이 한 뼘은 더 자란 듯했다.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에 닿았다. 집에 도착했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다리던 집에 도착했다. 먼지가 살포시 내려앉은 툇마루에 앉아 숨을 크게 쉬었다. 우울해 에서는 숨만 쉬어도 아팠는데 여기서는 아프지 않았다. 살 것 같았다.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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