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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29. 2022

외출 체력 저하증

의무적으로 밖에 나가곤 한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무슨 변덕스러운 말이냐? 하겠지만 사실이다. 집에 있고 싶은데 남들이 주말을 신나게 즐길 때 집에만 있으면 아깝다는 뭐 그런 생각. 그리고 걷고 구경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경기도민 뚜벅이는 오늘도 집 안과 집 밖 경계선에서 두리번거린다. 나가? 말아? 하지만 몸은 집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어제 너무 돌아다녀서 기운이 없는 상태다. 날씨까지 더워진 탓에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영혼은 집으로 미리 갔던 상황이었다.


어제 일과를 잠깐 소개하자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기차로 갈아타서 서울로 갔다. 조조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더니 오후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높은 빌딩 사이로 걷다 보니 막 점심시간이 끝나서 커피를 들고 회사로 복귀하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그 틈으로 걸어가서 도착한 곳은 맛집이라는 명성답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문한 음식은 금방 나왔고 내가 먹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식당은 지하에 있었고 그들이 한 마디씩 주고받는 소리가 울려서 귀가 멍했다. 약간 울렁거렸고 그 울렁거림을 음식으로 눌러 내렸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었다.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 매장에서 술 구경을 하며 간의 즐거움을 충전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다른 버스로 갈아타서 노들섬에 도착했다. 이벤트가 있는 건지 그곳은 무대 설치가 한참 중이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콘서트 무대를 설치하는 거였다. 나무 그늘에서는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소라면 물멍도 때리고 사진도 찍고 즐겼을 텐데 더위 때문인가 구경할 맛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만 혼자다. 약간의 우울감을 끌어안고 고민했다. 집에 갈까? 다른 데로 가볼까? 집에 가기엔 너무 대낮이다. 결국 또 버스를 탔다. 광화문 근처를 지나자 공사로 인해 차가 막혔다. 서촌에 들러 맘에 드는 향수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고민했다. 커피 한 잔 마실까? 골목 여행을 해볼까? 도저히 안 되겠다. 집으로 가자.      


난 어제 아홉 시가 넘어서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여섯 시가 되었다. 진이 빠졌다. 더위와 외로움에 찌들어 있는 몸을 깨끗이 씻고 잠시 쉬었다. 나 오늘 뭐 했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기억밖에 없었다. 아, 이래서 서울 서울 하나 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한가롭게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내 체력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제는 왜 그렇게 힘들었지? 여유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하고 쉬지를 못했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쉽게 지쳐버렸다. 분명히 이상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의사: 환자분이 걸린 병은 외출 체력 저하증이에요.     


윤: 의사 선생님 저는 죽는 건가요?     


의사: 아니요. 잦은 외출이나 외출 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생긴 병이에요. 좋아하는 음식 드시고 술도 적당히 드셔주면 좋아요.     


윤: 음식을 많이요? 배 터지게 먹어도 되나요? 술이랑 같이요?     


의사: 환자분. 배 터지게 먹으면 죽어요. 음식도 적당히 술도 적당히 드세요. 그리고 당분간 최대한 외출하지 마시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세요. 잘 먹고 잘 쉬어야 낫는 병이에요.    

 

윤: 네. 선생님 밥도 먹고 술도 마실게요.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난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쉬었다. 상상 속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이게 주말이지! 뭐가 주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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