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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30. 2022

가족도 타인이다

오늘 일기는 시커먼 어둠이 방 안을 지배한 저녁에 쓴다. 가사 없는 조용한 음악을 틀었다. 마음이 진정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평소 나에게 TV 또는 유튜브를 틀어주던 아이패드를 펼쳤다. 녀석에겐 실로 오랜만에 제 역할을 부여해 주었다. 원래 이러려고 산 거였는데. 뭐 아무튼 밤에 쓰는 글이니 어떤 글일지는 대충 예상할 것이다. 이 무겁고 진득한 이야기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해주길 바란다. 마음속 판도라 상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왼쪽엔 위스키 한 잔을 두었다. 술의 도움이 조금 필요한 이야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읽고 나서 ‘뭐 별거 없네’라고 할 수 있겠다. 난 원래 케케묵은 상처를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에 이게 최선의 표현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요즘 난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면 긴장한다. 특히 부재중 전화 알림 메시지, 카톡 알림창이 뜰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기다리던 전화나 연락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연락이 올까 봐 그렇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면 다행히 스팸 전화나 광고 메시지다. 그제야 긴장을 풀며 숨을 고른다.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 내가 바라던 바다. 그러나 언젠가는 연락이 올 것이다. 그땐 나에게 질타하겠지. 늘 그렇듯 난 그 질타의 맞서 평정심을 잃고 발톱을 세울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정말 싫다. 그 뒤에 이어질 후유증이 무섭다. 난 오늘도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쪼그라드는 나를 발견한다.     


드문드문 오던 연락이 끊긴지 두 달 반이 되었다. 조용한 일상을 방해받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줄 상처를 더는 일이라 여겼다. 어떤 부분은 오해일 수 있고 왜곡된 기억일 수 있으며 대화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덜 아팠으면 좋겠다. 사과받지 못했다. 또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타인에게 꽤 친절하고 살가운 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곧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에너지가 넘쳤고 분위기를 잘 끌어나갔다. 하지만 그들에게 난 그냥 투덜대고 불만이나 뿜어대는 골칫덩어리에 불과했다. 원래 내 모습이 골칫덩어리인지 아니면 친절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난 어떤 사람일까? 나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지금의 난 모든 타인을 두려워한다. 이건 어쩌면 내 문제일 수도 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선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눈에 봐도 빛이 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이 가진 빛나는 아우라였다. 그것은 그가 받은 최고의 자산이었다.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를 볼 때면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는 사랑과 상처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받았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일까?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상처일까? 아마 둘 다 받았을 것이다. 사랑이 서툴러서 상처를 주었다는 말은 차마 하기 싫다. 왠지 모두 용서해야 할 것만 같다. 용서하지 못하고 곱씹어대는 내가 찌질하게 느껴져서다.     

 

누가 뭐라 해도 난 언제나 내 편이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이다. 나는 타인에게서 나를 지켜야 한다. 난 아팠고 슬펐고 외로웠고 힘들었으며 혼자서 잘 견뎌내고 있다. 과거의 나를 달래가며 버티고 있다. 어른의 탈을 쓴 어린 나에게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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