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선명해지는 밤이다.
이제 나를 만나러 간다.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뜨거운 해를 떠나보내고 열기가 누그러진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이제 나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쓰던 일기를 달이 떠 있는 동안 쓰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스위치를 일기 모드로 전환했다. 하지만 전력이 부족했다. 일기 모드로 전환이 되질 않았다.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지운다. 또 적는다. 이게 아닌데. 밤은 점점 깊어지고 눈에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진다. 꾹 참는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방 안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다시 앉는다. 오늘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다. 너 오늘따라 도도하구나!
내가 왜 글을 쓰고 앉아 있을까? 쓰라고 시킨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이 밤이 지나면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없다. 기록해야 한다.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웠다. 글이 뭐라고. 첫 번째 일기는 봄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했다. 지금의 계절은 여름이다. 나의 계획은 여름을 잘 보내고 가을을 지나 겨울의 끝자락까지 쓰는 것이다. 어쩌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포기해도 상관없다. 그것 또한 나의 결정이니까 존중해주고 싶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만나러 간다. 내가 남겨 놓은 기록을 꺼내 읽으면 만날 수 있다. 네가 이런 생각과 감정을 느꼈구나! 그것들을 다시 한번 알아봐 준다. 아마 그래서 계속 일기를 쓰고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말이다. 밤이 깊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맘은 조급해진다. 빨리 쓰고 잠들고 싶다.
내일의 나에게 보낸다.
넌 오늘도 기록되었다.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