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이토록 아름다운 아르바키(Arbaki)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8

by Mihyang Eun

셀포스는 데티포스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유명한 폭포인데, 우리가 첫날 머문 곳은 셀포스 시로, 당연히 폭포에서 머문 것이 아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주요 도시들을 제외하면 거의 인적이 드물기 때문인지, 집들도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집의 이름은 아르바키(Arbaki)였다.


우리 넷은 당시 모두 직장인으로(나만 빼고 나머지 셋은 지금도 역시 직장인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모든 일정과 예약을 엘이 혼자 도맡았다(물론 엘 역시도 바쁜 직장인이었다). 사실 그 점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안해서 더 길게 말을 하지 않는 게 좋을 정도인데, 엘이 예약해둔 숙소들은 여행지와 별개로 모두 감동이었다.


첫날 레이캬비크에서 묵었던 센터호텔 씽홀트도 정말 좋았지만, 나름 빡빡한 둘째 날 일정을 마치고 도착한 이곳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기에 더 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건물은 주인 내외의 본채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진 별채 같은 곳이었는데 숙소로 쓰기 전엔 부모님을 모셨던 곳이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집 표지판을 보고 차를 몰아 들어가던 순간부터, 집주인보다 훨씬 더 우리를 반겼던 세 마리의 개. 그냥 '반겼다' 정도로는 부족하고 너무 격하게 반겨줘서 얘들이 사람이 많이 그리웠나 보다 그랬다.


arbaki, iceland, 201309


집 주변이 너무 예뻐서 얼른 짐만 넣어놓고 산책을 나갔다.


그동안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기다리지도 못하고 창밖을 맴돌던 보더콜리들이 내가 나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러고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어디론가로 뛰어갔다. 내가 자기들 속도를 못 따라가니까 몇 번이나 멈춰서 뒤돌아보고, 또 멈춰서 뒤돌아보고 하면서.


그렇게 보채는 개들을 따라 집 뒤편으로 나가니 사다리가 놓인 울타리가 나왔다.

arbaki, iceland, 201309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남의 땅이라 가면 안 되는 곳인가 하고 차마 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개들이 한 마리는 이미 넘어가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사다리 꼭대기에 멈춰서는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닌가!


내가 사다리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두 번째 개도 사다리를 넘어가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내 바로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개들을 따라 사다리를 넘었더니 이런 곳이 나왔다.


여기를 보여주려고 이렇게 나를 보챘구나. 개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arbaki, iceland, 201309


잘 따라오고 있나?
arbaki, iceland, 201309


응, 나 잘 따라가고 있어!
arbaki, iceland, 201309 photo by 불새


그렇게 우리가 모두 울타리를 넘었고, 개들은 아주 신이 났다.

arbaki, iceland, 201309
arbaki, iceland, 201309
앵, arbaki, iceland, 201309
불새, arbaki, iceland, 201309
엘, 앵, 나, arbaki, iceland, 201309, photo by 불새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arbaki, iceland, 201309


배가 고팠던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엔 흥분한 세 마리 중 하나가 결국은 사다리의 난간을 부셔먹고 말았다.

앵이 보더콜리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개들은 우리 주변에 머물렀다. 어둑해지고서, 이제 자러 들어갔나 조금 섭섭했던 찰나, 넷 중 둘은 본채에 있는 샤워실을 쓰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 다시 귀신처럼 어디선가 튀어나와 우리를 그렇게 핥고 또 핥았다.


하루 동안 우리를 격하게 반겼던 아이슬란드의 비바람, 폭포수, 보더콜리와의 해후 끝에 라면을 끓여먹고 마시는 맥주의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arbaki, iceland, 201309
arbaki, iceland, 201309
arbaki, iceland, 201309


하루 종일 놀라고 감탄하느라 내가 평생 쓸 감탄사를 하루 만에 다 소진해버리고 만 것 같은 그런 하루였는데, 그 살가운 개들이 나를, 우리를 저곳으로 데려가 준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몇 번을 떠올려도, 그저 꿈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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