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 물을 비춘다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03 - 태국 아유타야

by Mihyang Eun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여자가 아유타야로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별다른 계획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으니 모든 여정이 다 우연일 수밖에 없는데도 여자는 굳이 '-한 건 우연이었다'라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자신의 대책 없음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기에 좋았다.


원래는 태국 휴양지 중 가장 한적한 곳에 가 거기서 먹고 마시고 읽고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가장 한적한 곳이려면 일단 '파타야' 같은 익숙한 이름은 피해야 했다. 낯선 이름일수록 인파가 적겠지, 물론 더 비싸겠지만 며칠 정도 그 정도 사치는 괜찮잖아 그랬다. 어떤 이름이 좋을지 정하지 못하고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 여행사, 저 여행사 기웃거리던 여자는 나무뿌리에 휘감긴 부처 머리 사진을 발견한 순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의지를 갖게 됐다. 역시나 인생은 계획대로 흐르는 법이 없어서 그곳은 바다가 없는 육지였고 휴양지가 아닌 유적지였지만 거기에 가고 싶었다.


여자는 종교가 없었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 뭐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남을 믿으면 믿었지 스스로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놈의 타고난 낙천성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지만, 그건 전적으로 오해였다. 그놈의 타고난 낙천성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힘만 믿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게 자기 자신이나 스스로의 의지 같은 걸 믿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따지면 여자의 종교는 어쨌든 흐르긴 흐른다는 전제 하의 세월이었다.


가끔은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아무 의심 없이 무언가를 믿고 그것에 의지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건 가장 순수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로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절대 가질 수 없을 한 가지가 바로 종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명한 사찰이나 사원, 교회 건물에 가는 건 좋아했다. 신앙 있는 사람들이 신을 만나러 간다면, 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렇게 열렬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고 싶어 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려 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훨씬 쉬웠으니까.


방콕 시내에도 사원이 많지만 신도보다 관광객으로 더 북적였기 때문에 여자는 아유타야를 선택했다. 여자를 한눈에 사로잡은, 보리수나무 뿌리에 휘감긴 불상의 머리 부분이 있는 곳. 보리수나무와 부처라니 너무 심하게 뻔하다 할 만큼 적절한 조합이었기 때문에 신비로운 일. 가설은 몇 가지가 있었다. 어떤 게 맞는지, 맞는 게 있는지 알 도리 없었지만 어쨌거나 불신론자인 여자도, 사실 부처는 신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걸 보면서 잠시나마 어쩌면 신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만큼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아유타야로 가는 일정은, 방콕 근교 투어가 대체로 그렇듯 새벽같이 봉고차를 타는 것에서 시작했다. 봉고에 함께 탄 여행자들은 국적도 나이도 다양했다. 여자는 보통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가급적 피하는 편이지만 해외에서는 종종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는데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도 싸구려 의자 시트에 닿아있는 등과 엉덩이가 금세 축축해질 정도로 기온이 높은 날이었다. 봉고차에서 내리고, 투어 일정에 있는 사원을 돌아보고, 다시 봉고차에 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단순한 반복만으로 여자는 이미 패배한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여행의 시작인데 아무리 애써보아도 진심이라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이, 어떤 순수한 감상이라는 것이, 새로운 사유라는 것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그 정도의 더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번 여행의 본질을 너무나 흐려놓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작심에 그렇게 소모적인 이동과 관광이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했다. 낯선 사람들과 나누는 말도, 눈빛도 모두 아꼈다.



아유타야는 수백 년 전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였다. 작은 도시 규모에 비해 공들여 지은 사원 숫자가 많았는데, 아유타야 왕조는 버마와의 전쟁 후 겨우 사백여 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흔적은 남았는데 한 왕조가 끝난 후에도 그 왕조의 역사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사원들에는 당시 전쟁의 흔적, 무엇보다 패망의 흔적이 가장 뚜렷이 남아 있었다.


방콕에서 출발해 한 시간 반 만에 봉고차가 멈춘 곳은 야이차이몽콜 사원(Wat Yai Chai Mongkol)이었다. 여자는 이것이 누가 누구를 위해 언제 지은 것인가 하는 건축 역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여자는 게을러서 공부를 즐기지 않았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런 여자의 눈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높고 가파른 계단 위에 모셔진 뾰족한 사리탑이나 건축 방식 같은 것보다는 수많은 불상과 그 불상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 조금씩 크기와 모습이 다른 불상들은 어느 하나 완전히 홀로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건 낮은 곳에 담벼락을 등지고 있고, 어떤 건 좀 더 높은 곳에서 담 너머를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떤 불상들은 담벼락 바깥에 일렬로 위치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게 어디건, 불상들은 전부 서로 시선이 닿을 만한 거리, 닿을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신의 돌보심보다는 인간의 배려를 봤다.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 그렇게 놓여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상들이 항상 서로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기에도 어떤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겠지만 배경지식 없는 여자의 눈에는 그게 보였다. 부처나 신만 인간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그렇기 때문에 외로울 것이고 이미 모든 것을 해탈한 부처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울 것이므로.



야이차이몽콜 사원에서 여자가 느끼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의 감각 능력은 무더위에게 완전히 포박당했으니까. 사원 여기저기를 다니는 동안에 땀이 끝도 없이 흘렀다. 평소엔 땀구멍이 꽉 막힌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폐물 배출에 인색했던 여자의 몸도 그날 그곳에선 온몸의 구멍에서 최고의 효율로 최대한의 땀방울을 배출해내고 있었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일행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여러 국적, 여러 연령의 사람들이 똑같은 일정으로 움직이다 보면 약속한 시간보다 늦는 사람이 꼭 있어서 기다리게 하고, 일정이 조금씩 지연되게 마련이지만 그날은 누구 하나 늦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은 시간을 꽉 채워서 쓰고 돌아가던 여자도 이날만큼은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차로 돌아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먼저 와서 쉬고 있었다. 하나같이 땀에 홀딱 젖은 사람들을 보며 여자는, 있으나마나 한 에어컨이나마 있는 봉고차에 빨리 타고 싶다는 마음, 아무리 더워도 그 봉고차에 다 같이 타는 일만은 최대한 늦추고 싶다는 모순된 욕망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그건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봉고차는 그 모든 사람들을 다시 한 차에 모두 싣고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야이차이몽콜 사원에서 마하탓 사원(Wat Mahathat)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그 잠깐 동안에도 여자의 몸은 다시 시트에 스티커처럼 들러붙었다. 아직 점성이 남은 스티커를 떼어내듯 의자에서 젖은 다리를 떼어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하찮은 인간에겐 그것도 고행이라면 고행이었다. 비록 불심보다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고행길이었지만 여자는 보리수나무 뿌리에 휘감긴 부처의 머리를 보는 것, 오직 그 하나의 목적만으로 그 더운 날 거기까지 가서 그 모든 것을, 날씨가 휘두르는 그 모든 폭력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뎌냈다. 그것은 고행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되돌아봐도 그것은 추억으로 치환되기보다 여전한 고행으로 기억되었다.



명백한 고행 끝에 마주한 불상. 그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전쟁 때 잘려나간 불두가 보리수나무 뿌리에 휘감기며 자연스럽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설, 땅 속에 묻혀 있던 불상이 보리수나무 뿌리가 자라 나올 때 얽혀서 함께 다시 땅 위로 올라왔다는 설, 불상을 훔쳐가려고 누군가 몰래 숨겨뒀던 자리에 나무뿌리가 자라나 불상을 휘감아버린 거라는 설 등 비슷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추측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가 보기에 그 세 가지 가설 모두 설득력이 떨어졌다. 실제로 본 불상과 보리수나무 뿌리, 그 기이한 합일과 균형은 우연히 맞춰진 거라기보다 완벽히 연출됐다고 보는 편이 합당했으니까.



믿음이 깊지 않은 여자는 결국 불경한 의심을 품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머리 위치를 만지지 않았다면 저렇게 반듯할 수 없으며, 나무뿌리가 나무를 받치고 있던 벽을 부술 정도로 거칠게 자라 나왔다면 저렇게 부처의 머리만 피해 뻗어나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하고.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표정이 달라 보이는 부처와 수차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신비로운 것은 그뿐, 마하탓에 남은 나머지 흔적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전쟁의 상처가 전부였다. 바로 전날까지도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누가 말했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전쟁 당시 버마군은 아유타야 왕조의 사기를 꺾기 위해 불상마다 머리를 잘라냈고 아유타야 왕조는 그 잔재들을 미처 복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여자는 그 흔적 속을 거니는 것이 이상하게, 더워서 지치는 와중에도 좋았다.


복구하지 못한 사정이야 어떻든 본래 사원의 모습이 어떤 거대한 힘과 평화를 상징한다면, 평화가 이미 깨진 후에는 본래 모습을 애써 복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화재라고 해서 반드시 처음 모습 그대로여야 그 의미가 보전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얼굴과 몸과 마음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듯, 건물도 시간의 흐름과 역사적 사건들을 온몸에 고스란히 새겨나가야 생물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억지로 보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은 그렇게 사라지도록 두는 게 맞다. 세월의 흔적은 굳이 보정하기 않고 그냥 두는 게 좋다. 여자의 생각은 그랬다.



좋기는 했지만, 무더위 속에서 거기 남은 과거를 얼기설기 되짚어 본 후 여자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사원들은 하늘 아래 있는 그대로를 벌겋게 다 드러내 놓고 있어서 햇볕을 피하거나 쉴 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앉아서 쉴 수 있는 봉고차 안은 조금 더 불쾌하고 찝찝한, 또 다른 종류의 더위를 체험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여자는 이날 생리 때문에 존재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래서 아유타야행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부터는 목적의식도 집중력도 모두 잃고 오로지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좀비처럼 일행을 따라다녔다. 무언가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기보다 그늘을 찾아 앉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미 몸이 마음을 압도한 후라 의지로 움직이기보다는 몸이 기능할 수 있는 곳까지만 움직였다.



덕분에 태국에서 몇 번째로 길다는 와불상과 탑 입구에 닭 모형이 잔뜩 놓여 있는 사리탑도 그저 대충 스윽 훑기만 했다. 그렇게 견딘 덕에 마침내 당도한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 원래는 거기가 마지막이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일정 축소에도 누구 하나 반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종착지가 된 프라스리산펫 사원(Wat Phra Sri Sanphet)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여자는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사원 입구에는 작은 못과 나무 그늘이 있었다. 설명할 기운조차 없었지만 설명할 기운이 남아있었대도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 위로 놓은 다리 너머 사원이 있었다. 여자는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일행들이 사원을 다녀오는 동안 물가에 머물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딱 한 사람 정도가 앉을 만한 바위도 있었다. 그것도 나무 그늘 아래였다. 그런 게 진정한 부처의 자비로움 아니던가.



그렇게 바위 위에 잠시 앉아 있는데, 또 다른 여행자 무리를 싣고 온 태국인 가이드가 왜 사원을 보러 가지 않느냐 물었다. 여자는 사원은 들어가 보지 않고 여기에서 보아도 좋다고, 여기가 너무 좋아서 여기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남자가 차 안에서 돗자리를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덕분에 여자는 족쇄 같던 신발을 벗을 수 있었다. 돗자리 위에 젖은 빨래 널듯 몸을 널었다. 그제야 염불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천천히 연못을 둘러보고 있자니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볼 거라곤 물과 물에 비친 나무, 늘 보던 하늘 같은 것들 뿐이었지만 여자는 물에 반영된 모든 이미지를 사랑해 왔다. 물에 비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물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물 표면에서 모두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았고 그게 좋았다.


여자는 흔들리는 수면과 수면에 비친 풍경을 들여다보는 게 정말 좋았다.


그리고 이날, 지금껏 그렇게 물을 들여다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껏 물만이 나뭇잎을 비추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나뭇잎도 물을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커다랗고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는 순간, 거기에 물이 비쳐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물만 풍경을 비추는 줄 알았는데 풍경도 똑같이 물을 비추고 있었다.



그 발견만으로도 이제 막 시작된 여자의 여행은 이미 충분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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