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 년 만의 방콕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02 - 태국 방콕

by Mihyang Eun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여자는 낙천적인 편이었다.


여자의 경우, 낙천적인 성격은 대개 극도의 게으름 혹은 능숙한 합리화에서 나온다. 게으른 덕에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느라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나름의 장점을 찾아냈고, 그렇게 찾아낸 장점이 누가 봐도 장점인 그런 장점이 아니라면 합리화를 통해 그럭저럭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알았다.


오래 꿈꾸고도 결국 라디오 피디가 되지 못한 걸 제외하면 - 이봐, 제일 나쁜 건 이렇게 간단히 제외해버리는 식이다 - 직장운도 나쁘지 않아서 새로운 일들에 쉬이 열정을 느꼈고 즐거움도 곧잘 찾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 년을 지냈다. 어쩌면 낙천적인 성격 탓에 그렇게 오 년이나 보내고, 그제야 여자는 실패를 인정하기에 이르게 된 거다.


여자는 실패했다.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을 얻는 데 실패했고, 그 핑계로 글 쓰며 사는 데도 실패했고, 결국 그러는 동안 단 한 편의 소설도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여자가 그럭저럭 괜찮게 살았다고 산 것은 삶이라기보다 흐름이었다.


배를 탔는데 물이 흐르니 노를 젓지 않아도 항해는 시작됐다. 풍경이 나쁘지 않아 넋을 놓고 감상하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했는데 어라 어느 순간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돌아갈 길이 너무 까마득해지기 전에 다시 배를 돌려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려야겠다 싶어진 거다.


이때도 여자의 낙천적인 성격은 여자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방해했다. 완전히 잘못 온 건 아니고 꽤 즐거운 항해였으나 이제 쉴 때가, 내릴 때가 된 것일 뿐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하지만 막상 가까운 뭍에 배를 대고 내려서 좀 걸어보니, 배에서 멀어져 보니, 잘못 왔다, 확실히 잘못 왔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여자는 이천 십사 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받은 중이염 수술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나흘이면 수술과 퇴원이 가능하다던 의사의 확신이 무색하게 여자는 보름이나 더 입원해 임계 지점까지의 스테로이드를 주입하고도 중이염과 완전히 헤어지지 못했다. 수술은 오른쪽 귀 안쪽 환부인 뼈와 살을 상당 부분 도려내는 것이었다. 수술 덕에 여자는 머리가 좀 작아지기는 했고 몇 그램 정도 뼈와 살의 무게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기는 했으나 중요한 건 도려내야 할 부분이 확실히 도려내어진 건가 하는 문제였다. 도리어 수술 후 귓속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겼다. 가뜩이나 지나치게 넓어진, 넓어져봐야 소용도 없는데 훤히 비워진 그 공간에는 수술 후에도 끊임없이 물이 흘러넘쳤다.


여자는 종종 꿈을 꿨다. 우아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자가 물조리개를 들고 자신의 귓속에 물을 붓는 꿈이었다.


수술실. 담당 의사가 여자의 귀를 수술하면서 뼈를 긁어낸 자리에 아무도 모르게 꽃을 심는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의사는 자신의 아내에게만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 여자 귓속에 꽃을 심었어."

남편이 심어놓은 꽃이 잘 자라는지 어쩌는지 신경이 쓰였던 의사의 아내는 여자가 잠들었을 때 몰래 여자의 귓속에 물을 준다.

의사의 아내는 중얼거린다.

"물은 충분히 줘야 해. 푹 젖을 만큼 충분히 물을 줘야 해."


잠에서 깰 때마다 귀에서 주르르 흐르는 물을 휴지로 닦아내면서 여자는, 의사가 심고 의사 아내가 몰래 돌보아 끝내 귓속에서 피어난 꽃을 우기의 동남아에 가서 옮겨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엔 뜨거운 비가 충분히 내리니까.


이상한 일은 여자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로는 의사의 아내가 더 이상 처음처럼 열심히 꽃을 돌보지 않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매일 주던 물을 일주일에 한 번 주는가 싶더니 여자가 동남아를 여행하는 육 주 동안에는 겨우 두 번 정도 줬을 뿐이다. 한 번 물을 주면 흘러넘칠 만큼 듬뿍 주는 건 여전했지만 육 주 동안 딱 두 번, 그게 전부였다.


덕분에 여자의 여행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치유를 위한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없는 그 여행에서 여자는 자신이 가진 문제는 완전히 잊고, 단지 시간이 충분한 여행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대여섯 시간 후 비행기는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국제선을 타고 돈므앙 공항에 도착하면 대부분이 인파를 따라 자연스레 일 층으로 내려간다. 일 층 출구엔 택시와 호객꾼이 너무 많아 시달리지 않고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다.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 덕에 여자는 일 층으로 가 호객꾼들에게 시달리는 대신 곧바로 삼 층으로 갔다. 그곳에도 호객꾼은 있었지만 여자가 단 한 번 고개를 가로젓자 더 이상 설득하려 들지 않고 택시 문을 열어줬다.


삼백 바트.


호객꾼이 최초로 제시한 택시비였다. 여자는 흥정이 귀찮았다. 방콕에 한두 번 와 본 게 아니라는 인상을 주고 싶기도 해서 한 번 더 고개를 가로저은 후 미터로 택시비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 역시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조언을 따른 거였다. 여자는 카오산로드 두 블록 전에 택시에서 내렸는데, 고속도로비를 포함해 삼백이십 바트를 내야 했다. 몇 백 원 아끼려다 몇 천 원 더 쓰게 된 게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마지막은 더더욱 아니었다.



여자는 화려한 그래피티가 그려진 닫힌 셔터 앞에서 내렸다.


택시에서 한쪽 다리를 꺼내는 순간 동남아의 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에 달려들었다. 혼자 떠난 긴 여행의 첫날, 가장 먼저 여자를 온몸으로 껴안아준 것이 우기의 공기였던 셈이다. 종일 지겹도록 내리는 비를 기대하고 동남아에 간 것이긴 해도 여행 첫 날인 데다 캐리어를 끌어가며 숙소부터 찾아야 했기 때문에 여자는 일단 그런 날씨도 고마웠다.


생각보다 훨씬 더 더워서 그렇지 널린 게 게스트하우스라 여자는 일단 기분 좋게 걸었다. 배낭여행자의 도시인만큼 캐리어 덜컹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오 분 정도 걸었다. 짜오프라야(Chao Phraya) 강 근처의 프라수멘 요새(Phra Sumen Fort)가 나타났다. 이미 와본 적이 있어 반가운 장소였다. 여자가 도모한 곳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방콕엔, 그로부터 약 십일 년 전 남자와 갔다.



그때도 둘이서 이 골목 저 골목 방황하다 그 요새를 봤던 기억이 잽싸게 떠올랐다. 장소만큼 지나간 기억을 쉽게 불러오는 건 잘 없다. 그리고 더위만큼 쉽게 감상에 빠지는 것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것도 잘 없다. 여자는 요새가 있는 산티차이프라칸 공원에 앉아 그제야 지도를 검색해봤다. 원래 가려던 곳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려던 거리만큼 걸어왔으므로, 원래 가려던 곳까지 가려면 이미 이동한 거리의 최소 두 배를 걸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잠시 공원에 앉아 추억에 잠긴 모습을 빙자한 휴식을 취한 후 여자는 지나온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용하다는 점성술사를 찾아가 지금 모든 것을 관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었는데, 점성술사가 그랬다. 어차피 내릴 곳은 지나쳤는데 늦게 내리면 그만큼 더 먼 길 되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만으로 벌써 조금 치진 여자는 다시 어느새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잊고 반대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걸었다. 하지만 다행히 어떤 게스트하우스의 프로모션 칠판을 발견했다.


이백 바트!


아무리 도미토리라도 하룻밤에 이백 바트라면, 아직 환산에 익숙해지기 전이긴 해도 그보다 더 싼 방은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여자는 망설임 없이 길을 건넜고, 그곳에서 사흘 밤을 지냈다. 그러나 여자를 야반도주하게 만든 파키스탄 남자를 만나 사흘 만에 야반도주하여 태국을 완전히 떠나게 됐으니 결국 그 역시 경제적인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처음 체크인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으므로 여자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믹스드 돔(MIXED DORM)'이라 적힌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에 가보면 보통은 대부분 남자들이 가득하다. '혼성 도미토리(?)란 다수의 남성 투숙객에 한두 명의 여성 투숙객을 섞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진짜 재미있는 농담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현실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통찰력의 한 마디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며 여자는 망설임 없이 이틀 밤의 방값을 지불했다.


남성 도미토리를 혼성 도미토리로 만들어주는 대가로 저렴한 침대를 얻을 수 있었던 여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깔끔한 시설에 만족했다. 깨끗한 침대, 아낌없이 가동되는 에어컨, 끊김 없는 와이파이, 네 명에 하나 꼴인 욕실까지. 거의가 남성 투숙객이어서 욕실 수챗구멍도 엉킨 머리카락 없이 깨끗했고 인당 욕실 점유시간도 짧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여자의 엄마는, 여자가 대학생이 된 후 엠티를 갈 때마다 ‘혼숙만은 안 된다’라며 몸가짐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십 년 전 체코에서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의 강당에 매트리스만 깐 채 수백 남녀와의 대단위 혼숙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것이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속이었다면 대단위 혼숙은 곧 대단위 탈의와 성교파티로 이어졌겠지만 그것은 여자의 현실 속이었고 다들 가난하고 피곤한 배낭여행자들이라 대부분이 금세 잠들었다.



여자가 우연히 선택한 숙소는 카오산 로드에서 두 블록 정도 거리로, 위치마저 좋았다. 걸어 다니기에 적당히 가깝고, 소음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중요한 짐만 몸에 지닌 후, 나머지 짐은 대충 던져두고 ㅡ도미토리에 묵을 때는 적당한 자체 보안을 바탕으로 한, 같은 방에 묵는 손님들에 대한 신뢰가 필수다ㅡ 카오산 로드로 갔다. 숙소를 나서기 직전 에어컨으로 완전히 식혀둔 몸은 배낭여행자들의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덥혀졌다. 잘은 모르지만 전자레인지의 원리가 그런 것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이 아무렇지 않게 떠오를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여자는 노천카페에 자리 잡는 것만을 유일한 목표로 정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노점상을 지나면서도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아직 환한 대낮이긴 해도 맥주만 주문했다. 사실 그것은 오히려 몸을 데우는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이열치열의 정신으로 밤이 올 때까지 맥주만 마시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 자리 잡은 카페 천장에는 선풍기가 꽤 많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저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몇 개는 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긴 했어도 날개와 살마다 묵은 먼지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아마 그런 몰골로는 방콕의 더운 공기를 아무리 휘저어봐야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더웠다. 방금 창 맥주가 지나간 목구멍과 식도를 제외하고는 그저 더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방콕에 다시 가면 어떤 마음이 들지 여자는 내심 궁금했었다. 그곳은 첫 남자와 처음 함께 간 해외에 있는 여행지였다. 숙소 욕실에서 도마뱀을 발견하고 소리 질렀을 때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도, 난생처음 먹어본 이후 십 년 넘도록 입에 대지 않은 똠양꿍의 날카로운 추억을 만든 것도, 여자의 작은 움직임에도 쉴 새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던 것도 그 남자였다.


하지만 여자는 더웠다. 아무리 그런 추억의 장소라 해도, 십일 년 만에 다시 가 혼자 앉아 있으면서 여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덥다는 것뿐이었다. 습습한 무더위는 그렇게 마약과도 같다.


그렇게 더위와 싸우는 동안 해가 저물고 무더위도 아주 조금은 힘이 빠졌다. 더위가 아주 조금만 물러앉은 밤은 그제야 이런저런 기억을 불러냈다. 여자는 카오산 로드와 람부트리 로드를 정신없이 걸어 다니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시선은 장소를, 머리는 기억을.



그때가 사무치게 그립다거나 혼자라서 외롭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단지 고장 난 채 멈춰 있던 노천카페 천장의 선풍기가 다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원하지도 않은데, 그게 자기의 일이니까 날개를 돌릴 뿐이라는 듯 돌아가던 선풍기 날개처럼, 십 년이라는 시간을 시커먼 먼지로 달고 기억의 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꽤 오랫동안 끈질기게 돌고 또 돌았다.



십일 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사이에 두고 강 저쪽의 여자와 이쪽의 여자는 달라졌을까.


십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실패가 그 순간 현실이 돼 있었고, 영원을 함께하리라 믿진 않았어도 헤어질 거라 생각도 하지 않으며 만났던 남자와는 완전히 헤어져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또한 뭔가가 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충분히 가능한 미래 예측과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조차 하지 않는 여자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무수히 많은 사례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미래는 사실 아니었다.


하나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건 여자가 방콕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정도였다.


예전엔 화려하면서도 저렴한 방콕 여행이 즐거운 와중에도, 관광 노동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코끼리 쇼를 볼 때도, 게이쇼를 보러 가서도, 안마를 받으면서도 어쩐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것 역시 그들이 사는 방식이며 그들이 여자보다, 혹은 수많은 여행자들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누가 누구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더 불행하다거나 하는 비교 자체가 고약하고 쓸모없는 습관일지 몰랐다. 그것이 여자가 이전보다 조금 더 불행해졌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둔감해졌기 때문인지, 자기 자신의 정신적 안락함을 위해 둔감해지기로 결정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래도 행복하고, 누군가는 이래서 불행하다.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는 괴롭다. 그러니까 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들은, 동남아 사람들은, 하면서 묶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 뒤 여자는 다시 맥주나 마셨다.



둘째 날엔 비옷과 카메라, 책 한 권과 지갑 정도를 챙겨 다시 목적 없이 이곳저곳 걸어 다녔다. 목적 없이 출발해도 걷다 보면 ‘그늘을 찾아야겠다’거나 ‘어디 좀 앉아야겠다’는 절박한 목표가 생겼고,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다가도 ‘바람 좀 불었으면’이라거나 ‘비라도 쏟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절로 갖게 됐다.


하지만 한국이 조금씩 아열대 기후의 특징을 갖게 됐듯 동남아도 특유의 날씨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우기 치고는 비가 너무 안 왔다. 내려야 할 비가 내리지 않은 탓에 습도는 최고여서 숙소 밖으로 나서면 온 몸이 튀겨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튀김옷을 입고 끓는 기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게 해 준 방콕의 더위는 평소 찜질방을 가도 열리지 않던 여자의 모공을 활짝 열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걷고 또 걸었다. 팁사마이(Thipsamai)라는 이름의 이름난 팟타이 식당에서 팟타이를 먹고 백 퍼센트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싶었다. 그날의 유일한 계획이자 희망이었으므로, 여자에게 그날 최대의 불행은 팁사마이가 오후 다섯 시나 돼서 문을 연다는 사실이 됐다.



좌절할 틈도 없이 어딘가 앉아 쉴 곳이 절실했던 여자는, 그럼에도 여전히 팁사마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팁사마이에서 너무 멀리 가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는 길에 봐 뒀던 사원 쪽으로 되돌아갔다.



랏차낫다람(Wat Ratchanatdaram) 사원은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었다. 여자는 단지 가까이 앉을 곳이 필요해서 이곳으로 되돌아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라, 예정에도 없이 이곳에 반하고 만다. 일 층엔 여럿이 와서 기도드릴 수 있도록 곳곳에 불상과 앉을 수 있는 대리석들이 놓여있었고, 이 층은 승려들의 도서관이었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좋았다.



도서관에서는 승려들이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쪽 구석에는 한 외국인 관광객이 소파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삼 층부터는 역시 일이 층과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진 회랑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사방이 서로 엇갈리게 뚫려 있어 시원한 바람이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원한 곳은 도서관이 있는 이 층이었는데, 아마도 바람이 잘 통해 책 읽기가 그래도 낫고 책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어서 그 층을 도서관으로 삼은 듯했다.


승려들이 보는 책은 읽을 수 없었지만 여자도 항상 책을 갖고 다녔기에 사원에서 책을 읽으며 피서를 즐겼다. 여러 도시를 여행할 계획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가져간 여자는 랏차낫다람 사원에서 디킨스가 쓴 불행한 이야기의 서막을 읽게 된다.


거기서 오후를 보내며 책을 읽는 동안 잠들었던 외국인이 떠난 이후 승려들과 관리인들 외에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여행자들로 빽빽한 방콕 시내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그늘에 숨어 바람의 호위를 받으며 여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니.


그럴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기대치 않았던 여자로서는 이틀 만에야 혼자 방콕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찾아간 팁사마이가 오후 다섯 시나 돼야 문을 여는 이유도.


그랬다. 여자는 이처럼, 여전히 낙천주의자의 표본이었고 긍정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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