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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pr 24. 2016

스펙터클 동네 산책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08 - 캄보디아 캄폿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여자가 마침내 동네 산책을 나선 건 올리스 플레이스에 도착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오후 네 시가 넘어서였다. 스물네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서야 나가볼 생각이 들었던 거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이래서 좋다, 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행 가면 특히 더 부지런해지는 사람이나 원래 아침잠 적은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다. 여자도 여행 가서 부지런 떨 때 있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떠나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먼저 일어나면 굳이 여자를 깨우지 않고 쪽지만 써둔 채 혼자 산책 다녀오거나 심지어 커피까지 사서 일어날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동행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위해 준비된 뜨거운 커피를 마주한 경험은 사실 딱 한 번이었다. 그만큼 인상 깊었고 그런 만큼 다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 동행과 함께 여행 가서 그런 경험을 또 하기란 힘들 것이므로, 여자는 대체로 혼자 하는 여행이 좋았다. 상의 없이 혼자 여행지 정하고 티켓도 끊었는데 같이 가겠다는 사람 있으면 반가웠지만 대체로 시작은 혼자 했다. 무엇보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을 때는 더 자라고 해도 못 잘 만큼 실컷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여자에게 잠은 신생아가 느끼는 잠과 비슷했다. 잠들기를 끝없이 거부하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 잔다는 점에서 그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잠드는 것이 죽는 것과 같은 공포라 한다. 눈 감고 잠드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확인하기 전이고, 눈 감는 순간 눈 앞의 충실하고 듬직한 보호자 또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아기들은 두려운 거라 들었다. 물론 서른이 훌쩍 넘은 여자에게 잠드는 일은 그 정도의 공포를 주지는 않지만 모종의 두려움을 수반하는 건 사실이다. 


일단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순간 완료되는 그날 밤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아쉬움이 먼저지만, 잠자는 일을 마치고 일어나는 일이 언제나처럼 몹시 괴로울 게 뻔할 거라는 두려움이 따랐다. 사람들은 여자에게 늘 일찍 자라 충고했다. 푹 자야 아침에 개운하다 했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아무리 많이 자도 일어나는 일은 늘 피곤했다. 대체 어떻게 자면 아쉬움 없이 개운한지 늘 궁금했다.



캄폿은 기다란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아주 단순하게 생긴 도시였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캄폿은 그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인상을 남겼을지 모르지만, 게으르게 여행하는 여자에게는 그랬다. 머무는 동안 강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거나 강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여자에게 캄폿은 강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던 것이다. 이쪽과 저쪽의 공간. 더 가 볼 곳도 가 보고 싶은 곳도 없이 여기에서는 저기가 다 보이는 것 같고, 저기에서는 여기를 다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도시.


여자의 산책은 주로 머물던 강 이쪽에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가 간만큼 다시 걸어 내려오는 거였다. 여자는 방향이나 지리 감각이 뛰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지나온 쪽은 무조건 아래쪽이고, 아래쪽은 남쪽이며, 반대 방향은 위쪽이고, 위쪽은 곧 북쪽이라 생각하는 식이었다. 북으로 걷고 있다 생각하게 된 데 근거가 하나 더 있었는데, 강이 흐르는 방향이었다. 여자는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동서로 흐르는 강도 있고 남북으로 흐르는 강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 테지만 길게 흐르는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게 여자만의 방향 인식 방법이었다.


여자의 무식함 혹은 우둔함을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북쪽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줬다 해도 여자는 겉으로만 "아 그랬구나!" 한 뒤 금세 또 북쪽으로 걷고 있는 기분으로 걸었을 테니까. 우리 몸과 마음이 방향 감각이라는 걸 언제 어떻게 체득하는지 모르지만 여자는 방향 감각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교정 기회를 놓쳤다. 여행지에서, 혹은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수없이 길을 잃으면서 가혹할 만큼 대가를 치르고도 고치지 못한다면 그건 앞으로 영영 고칠 수 없는 거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 사연으로 여자는 나는 지금 북쪽으로 걷고 있어 하는 느낌으로 위로, 또 위로 걸어 올라갔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학생들을 봤고, 집에 안 가고 학교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고, 여자가 한참 자고 있을 시간부터 시작했을 시작했을 일을 여전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고, 바이크 타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봤다. 그 모든 것을 보면서 여자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를 보는 것도 봤다.


자신은 여행자지만 그곳 사람들은 생활인들이라 너무 살피면 좀 미안한데, 혼자만 보는 건 더 미안한데 서로 구경하니 마음 편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정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여자를 쳐다봤다. 공평하다 할만했다. 캄폿은 아직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쳐다보는 곳이었다. 누군가 그곳을 지나간다면 그건 아는 사람이거나 여행자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까. 아는 사람이면 인사해야 하고 낯선 여행자면 또 구경하는 맛이 있으니까. 아마 그날 동네 사람들은 웬 동양인 여자 하나가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알았으리라. 그곳은 그렇게 작고 조용하고 서로에게 조용히 관심을 갖는 동네였다.



걸으며, 그 동네 사는 건 모두 야위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은 물론이고 소도, 개도, 고양이도, 마르지 않은 동물이 없었다. 특히 털이 하얀 소들은 얼핏 말처럼 보일 정도였다. 말근육은 말에게만 허용되는 멋진 근육인 줄 알았는데 소도 말근육일 수 있구나, 하지만 역시 말에게만 어울리고 소는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마른 몸으로 마른 풀을 뜯고 있었다. 날씨와 식생 때문이겠지. 시하눅빌에서 먹은 소고기가 그래서 그렇게 질기고 맛없었구나.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여자는 스스로를 경멸했다. 물론 금세 잊고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다음 북쪽 산책은 바이크 타고서였다. 여자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바이크를 직접 몰아본 적 없었고 뒤에 타는 것조차 싫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작은 삼촌 뒤에 앉아 삼촌 허리 꼭 껴안고 공기 중에 눈물이 흘날리도록, 눈물이 달리는 속도 못 쫓아오고 자꾸 뒤에 쳐지도록 넘치게 울었던 기억, 대구 죽전네거리 왕복 육차선인가 팔차선 도로에서 차량과 부딪친 바이크 운전자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아가던 걸 본 기억, 라이딩을 즐기던 친구가 몇 번씩이나 사고로 입원과 수술을 반복했던 기억들이 바이크에 관한 기억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여자가 바이크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은 건 사이먼의 격려 덕분이었다. 캄폿은 길이 한적해 연습하기에 더없이 좋았고 전자동 바이크 하루 대여비가 겨우 육달러였고 산책하며 봤던 길거리 주유소를 이용해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바이크 없이 여행하기 힘들다는 라오스 볼라벤 고원에 꼭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올리스 플레이스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하던 피케이에게 바이크 대여를 부탁한 다음날 점심 무렵, 누군가 빨간색 혼다를 가져다주었다. 피케이에게 간단한 조작법을 배웠는데 조작법은 정말 간단해서 다 배우는 데 오분도 안 걸렸다. 피케이는 도로로 나가기 전에 올리스 플레이스 안에서 주행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길가부터 방갈로 네 개를 지나 올리스 플레이스 바의 입구이자 주차장까지 주행 거리 약 십 미터. 여자는 그 짧은 자갈밭을 몇 번 오가지 못하고 금세 지쳤다.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서 균형 잡는 게 쉽지 않았을뿐더러 짧은 거리를 오갈 때마다 바이크를 반대로 돌려놓는 일이 균형 잡기보다 백 배는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시동을 껐다 켜느라 부아아앙 요란스러운 소음 내가며 연습하고 있으니 피케이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자를 데리고 도로로 나가 뒤에 태우고 실제로 주행하면서 한 번 더 설명했다. 그때, 몸살로 앓아누워있던 쥘도 밖으로 나왔다. 쥘은 피케이와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도로에 바로 올려보지 그래. 여기부터 그린하우스까지는 칠킬로미터밖에 안 되니까 거기까지 일단 멈추지 말고 한번 달려봐. 그럼 금세 익숙해질 거야."


가뜩이나 자갈밭 위에서 퉁퉁퉁 몸을 튕겨가며 연습하던 게 힘들었던 여자는 쥘의 말대로 했다. 위태롭게 출발하는 여자 등 뒤에서 피케이가 외쳤다.


"기름 별로 없으니까 가다 보이는 첫 주유소에서 기름부터 넣어!"



기름 넣으려고 한 번 멈춘 걸 넣빼면, 여자는 정말 쉬지 않고 칠킬로미터를 냅다 달렸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거나 방향 바꾸는 것보다 그냥 달리던 대로 달리는 게 제일 쉬웠다. 속도는 비록 삼십킬로미터를 넘기지 못했지만 며칠 전 걸으며 봤던 풍경 속을 빠르게 통과하면서 문자 그대로의 쾌감을 느꼈다. 이미 충분히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여행하고 있었고 마음대로 속도를 올리거나 방향을 바꾸지도 못하고 무조건 직진이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자유를 느꼈다. 이래서 타는구나. 역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관해선 함부로 말할 게 못됐다.


주행의 첫 목적지인 그린하우스는 자갈과 흙이 뒤섞인 비포장도로를 따라 도로에서 일점오킬로미터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사이먼이 올리스 플레이스도 좋긴 하지만 여유만 있다면 그린하우스에 묵었을 거라 말한 적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여자는 속으로 올리스 플레이스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린하우스에 도착해보니, 역시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관해서는 함부로 생각도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물론 여자는 다시 캄폿에 와도 올리스 플레이스에 짐을 풀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 정도 그린하우스에 묵어도 좋겠다 싶었다. 올리스 플레이스 일인실이 비수기에 오륙달러 정도라면 그린하우스는 삼십 정도, 그린하우스가 비싸다기보다 올리스 플레이스가 지나치게 싼 거였지만 장기 투숙자인 사이먼에게 하루 이십오달러 차이는 굉장히 컸을 것이다. 여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그린하우스에서 아침형 인간이라 통 마주치기 힘들었던 멜라니를 마주쳤다. 낮 동안 어디서 뭘 할까 궁금했던 멜라니를 거기서 만나고 보니, 역시 모두의 로망은 그린하우스지만 현실은 올리스 플레이스인 건가 싶어 조금 씁쓸했다. 올리스 플레이스를 너무 좋아해서 그곳 장기 투숙자들이 실은 그린하우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올리스 플레이스가 제 집도 아닌데. 마음이라는 건 일단 한번 줘버리면 되돌려 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었다. 


멜라니와는 올리스 플레이스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려 보였는데 멜라니는 여자보다 겨우 두 살 아래였다. 고향 암스테르담에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정착할 곳을 찾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요가 강사를 하거나 동남아 어디에서든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여행비자 만료를 앞두고 있어서 계속 캄폿에 머물려면 일단 국경을 한번 넘었다 돌아와야 했는데 만료 일주일을 앞두고도 전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치 앞 일도 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선 여자도 멜라니와 비슷했다. 짧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다시 취직을 하기보다 우선 귀를 완전히 치료한 후 글 쓰며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알 수 없는 미래에 관해 한참을 얘기했다. 한참을 얘기해도 알 수 없는 미래에 관해서라면 조금 암담한 기분도 들었지만 적어도 여자와 멜라니 모두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 어떻게는 살고 싶지 않은지에 관해서는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엄살 피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여자와 멜라니 모두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있었으니까.


멜라니가 요가 수업 늦겠다며 먼저 일어서고 혼자 남게 됐을 때 여자 눈에 얼핏 완벽해 보였던 그린하우스의 단점인 날파리떼가 여자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올리스 플레이스보다 강에서 멀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파리 수가 훨씬 많았는데, 글 쓰기에도 책 읽기에도 밥 먹기에도 커피 마시기에도 곤란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을 재빨리 마무리한 후 올리스 플레이스로 돌아갈 때가 되었군 생각하며 비장하게 그린하우스를 나섰다. 바이크 타고 다시 온 만큼 돌아간다 생각하니 왠지 긴장되었던 탓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장에서 작전 지시 내리는 사령관처럼 여자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것.



주차장에서 바이크를 빼 다시 그 험한 자갈밭을 돌아나갈 생각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가야 하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과, 그 길의 악명을 체험한 후 다시 돌아나가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미리부터 겁먹어 그런지 일단 그린하우스 문턱을 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두툼한 나무를 대어 만들어둔 턱이 꽤 높이가 있어서 한 번에 자연스럽게 넘어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실패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자신감을 잃었다. 턱만 넘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곤란했던 건 짧고 강하게 액셀레이터를 밟아 턱을 넘은 직후 재빨리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방향 전환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턱만 넘은 후 잠깐 멈추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당시 여자에겐 그렇게 섬세한 핸들 조작 능력이 없었다.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문턱 바로 앞에는 앞집 사는 어르신들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부르릉 소리 내고도 턱을 못 넘으니까, 불안해 보였으리라. 여자는 아주머니 몇 분과 아저씨를 향해 웃어 보였다. 머쓱하기도 했지만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 싶어 서로 안심하자고 억지로 내어 보인 웃음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끝내 이 작은 턱을 넘지 못하면 어쩌지 싶어 초조했지만 그렇게 웃어 보임으로써 마음이 조금 편해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초조함이 가라앉기는커녕 여유 있는 척 웃었던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압박에 여자가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고 세게 오른쪽 손목을 돌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아주 순식간에 문턱을 넘는 데는 성공했지만 브레이크 잡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여자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은편에 있던 철조망으로 그대로 돌진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손에 들었던 농기구들을 던지듯 내려놓고 여자에게 달려왔다. 여자는 그 와중에도 두 가지 생각을 먼저 했다. 


'아 씨, 바이크 새 거였는데 망했다.' 그리고 '아 씨, 쪽팔려.'


아저씨가 여자를 바이크에서 끌어내렸다. 여전히 철조망에 껴 있던, 처참하게 긁힌 바이크도 빼냈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여자의 팔다리를 붙잡고 옷을 걷어 다친 데가 없나 확인했다. 이상한 건, 그들은 분명 모두 크메르어를 했고 여자는 그 언어를 전혀 몰랐지만 그 순간 이런 말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괜찮아?", "안 다쳤어?", "다친 데 없나 한 번 보자."


크메르어를 알아들었다 확신할 만큼 충격이 컸다. 여자는 끝까지 웃으며 괜찮다 했다.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도 분명 크메르어였지만 이번에도 분명히 여자는 들었다.


갈 수 있겠어?

여자는 위아래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린하우스에 있던 여행자들이 혹시 이 꼴을 본 건 아닐까 궁금해졌지만 차마 뒤돌아볼 용기까진 낼 수 없었다. 누군가 그 사고를 목격했다면 달려 나와 일으켜주었을 것이므로 그 사고를 목격한 건 오직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뿐일 거라고, 여자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일단 도로로 나온 여자는 그제야 제대로 숨을 골랐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동태를 점검하고, 다시 칠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잠깐의 점검으로 여자는 한쪽 귀걸이가 사라졌으며 오른쪽 발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한 번 사고가 나면 한동안 바이크를 다시 못 타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다행히 여자는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에 더 연연하는 편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심지어 솔솔 부는 바람이 여자의 부끄러움과 긁힌 상처들을 호오-하고 불어주는 것 같다, 라는 생각까지 했다. 정신이 나간 거지.



숙소해 도착해 다른 바이크 사이에 여자의 상처뿐인 바이크를 무사히 주차했을 땐 굉장히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아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마 그건, 여자가 주차공간까지 바이크를 몰고 가는 동안 자갈밭 위에서 덜덜거리고 있을 때 바 앞에 앉아 있던 사이먼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이먼은 여자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거 봐. 너도 할 수 있댔잖아.'하는 표정이었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바이크에서 내리자마자 바 앞으로 쪼르르 가 앉았다.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해가며 첫 바이크 운행 무용담을 펼쳤다. 이야기의 극적 효과가 필요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 긁힌 상처도 보여줬다. 여자는 은근히 아이고 저런 어쩌나 같은 반응을 기대했지만 사이먼과 피케이, 사이먼의 독일인 친구는 하나같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여자보다 더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며 여자는 세 남자의 사고 경험담을 듣고 또 들었다.


그러는 동안 해가 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올리스 플레이스로 돌아가겠다는 작전은 어쨌든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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