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날들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07 - 캄보디아 캄폿

by Mihyang Eun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캄폿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캄폿 올리스 플레이스에서 처음 며칠 동안 여자가 한 일을 최대한 자세히 나열해보면 이렇다.


침대에 눕는다.

잔다.

일어난다.

씻는다.

커피를 마신다.

점심을 먹는다.

책을 읽는다.

맥주를 마신다.

저녁을 먹는다.

맥주를 마신다.

책을 읽는다.

해먹에 눕는다.

음악을 듣는다.

침대에 눕는다.

(이하 반복)


중간중간 이런저런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위에 나열한 규칙 속에 편입시킬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하고 우연에 의존하는 일과였으므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뺐다.


도착한 첫날부터 그랬다. 더운 빗속에 캐리어 끄느라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쥘이 자신이 쓰던 방갈로를 내어주려 청소하는 약 한 시간 동안 여자는 맥주만 홀짝이며 멍하게 앉아 기다렸다. 도착해서 빈 방갈로 있는지 물었을 때만 해도 손님 하나 더 받고 덜 받고에 큰 관심 없어 봬던 쥘이 갑자기 쓰던 방을 내주기로 결심한 것은 아마, 여자 특유의 게으른 에너지를 직감해서였을지 모른다. 얘는 일단 자리 잡으면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겠구나, 여기 오래 머물겠구나.


사양의 미덕이 몸에 밴 터라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네가 쓰던 방까지 내어주고 그러진 마. 그렇게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했어도 손사래와 미안한 표정으로 뉘앙스만큼은 전달했다 믿었다. 손님 하나 더 받고 덜 받고에 관심 없어 보였던 쥘은 본인이 여기서 자든 저기서 자든 그것도 크게 관심 없어 보였다.


청소하고 시트 바꾸려면
한 시간 걸릴 거야.


한 시간이야 기꺼웠는데, 클랑 맥주캔 따고 삼십 분 남짓 기다렸을 즈음 방에 들어가도 좋다 했다. 삼십 분이면 맥주 한 캔은 비우고도 남을 시간이므로 또 여자는 별 무리 없이 짐을 옮겼다. 아무 계획이 없어서 좋은 점은 언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뭘 해도 상관없고 뭘 못해도 아쉽지 않다.


공용공간으로 통하는 짧은 복도를 지나 가장 처음 보이는 오른쪽 방갈로가 여자의 것이었다. 나무 계단을 한 번, 올라간 계단에서 또 한 번, 몇 발짝만 오르면 방이었다. 발아래 강물이 일렁이는 황홀한 곳에서 불과 십 미터 거리에 내 방이 있다니, 여자는 방금 시트를 갈아 끼운 침대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다소 살짝 몸서리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과장된 동작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연기 못하는 배우처럼 실제로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방갈로는 나무와 짚, 면, 모기장, 선풍기만으로 된 공간이었다. 가로세로 각 삼 미터 채 되지 않는 좁은 방갈로 사방은 대나무로 틀을 잡고 짚으로 벽을 채운 것이었고, 바닥은 틈 사이로 흙바닥이 보이는 나무판자를 이어놓은 것이었다. 옷걸이도 나무였고, 짐 놓는 선반도 나무, 창문도 나무, 창을 열어 고정하는 막대도 나무였고 쓰레기통은 짚으로 만든 거였다. 그 공간 안에 이질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건 나무로도 짚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여자와 여자의 물건들뿐이었다.



비 오는 와중에도 놀랍도록 보송보송한 침대 시트에 앉아 좁은 방 안을 살피고 또 살폈다.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이었다. 밖에 나가 동네 구경할까, 강가에 앉아 맥주 마시며 책이나 읽을까, 하다가 다 좋지만 일단 좀 누워볼까, 하고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밤엔 그렇게 정신이 맑고 낮엔 자꾸 자고 싶던 여자였기에 잠깐 눕는다는 게 내리 몇 시간을 잤다. 문도 닫지 않고 깜깜해지도록. 문 열어놓고 몇 시간씩이나 자다니, 걱정전문가인 엄마나 시집가고 더 잔소리가 는 친구들이 알았다면 암튼 겁도 없이! 하고 잔소리했겠지만 정작 여자는 정말 푹 잤다.



다만 밝을 때 와서 해질 때까지 자느라 몇 시간을 보내버린 것이,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작 관심조차 갖지 않을 테지만 왠지 머쓱했다. 머쓱해서, 잠깐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막대를 꽂아두면 향이 조금씩 공중으로 퍼져나가 조금씩 액체가 줄어드는 디퓨저처럼, 잠시 앉아 있으면 자다 일어난 흔적을 기화시킬 수 있을 것처럼.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을 때쯤 슬며시 나갔다. 공용공간에서 몇몇 여행자들이 무리 지어 먹고 마시며 웃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행지라도 완전히 낯선 사람과 처음 면 트고 인사 나누는 것은 적지 않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종의 스트레스였으므로 여자는 일단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그러자 쥘이 말했다.


주방은 마감했어.
요리하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는 자신이 굉장히 많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됐나?', '요리하는 직원도 따로 있나?', '요리하는 직원 퇴근했으면 자기가 해줘도 되지 않나?'


그 많은 생각들 뒤로 하고 여자가 요구한 것은 다시 캔 맥주였다. 곡기야 맥주로도 채울 수 있었다. 클랑을 다시 주문했다. 쥘의 플레이리스트는 레게음악이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며, 맥주 마실 때만 잠깐씩 멈춰가며 책을 읽었다.


사람들은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싶다는 말을 잘 한다. '책이나'라니. 시간이 남아돌아야만, 멀리 여행 가야만 책을 읽을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시간이 남아돌거나 휴양지에 가도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러면서 늘 그걸 꿈꾼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늘 그걸 꿈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는 모두가 바라는 궁극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셈이었다. 자신에게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것이, 그러고 있는 곳이 캄보디아의 이름 없는 동네, 깜깜해서 강물은 보이지 않지만 강물 흐르는 소리는 발 바로 아래서 들리는 물 위에 지은 공간이라는 것이, 바에서는 쥘이 오가는 사람을 상대하며 웬만한 손님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시고 담배도 더 많이 피우고 있다는 것이, 왠지 여자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재밌어?>

<응, 좋아.>

<뭐했는데?>

<커피 마시고 맥주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커피 마시고 맥주 마시고 책 읽고 글 쓰는 건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걸면 여자의 엄마는 비아냥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그렇게 물었다.


<거기서도 할 수 있는 거지만, 여기서 하니까 더 좋아.>

<뭐가?>

<몰라, 그냥 좋아.>

<안 심심해?>

<안 심심해.>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가끔 좀 외롭지만 무섭진 않아.>

<그런데도 좋아?>

<응, 그래도 너무 좋아.>

<거 참 희한하네.>


그러게 정말 희한한데, 이상하게 떠나서 하면 뭐든 더 좋았다. 뭐든 더 좋은 것처럼 느꼈다. 커피를 마신다, 맥주를 마신다, 책을 읽는다, 글을 쓴다, 하는 행위 자체의 속성이 달라지는 게 아니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낯선 곳에 머문다는 건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했던 평범한 행위들조차 특별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좋아서, 여자는 먹고 마시고 게임을 하며 떠들던 여행자 무리가 모두 자러 들어간 후에도 한참 그대로 앉아 맥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 금세 자정이 훌쩍 지났다. 바에는 쥘이, 바 앞 소파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쥘은 여전히 맥주 마시며 담배 피우고 있어서 여자도 맥주를 더 주문했다. 바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인 손님은 네가 처음이야.


원래 올리스 플레이스는 '올리'라는 벨기에인이 처음 시작한 곳이라 했다. 쥘은 친구 세바스티앙과 캄폿에 여행 왔다 그곳에 반해, 나고 자란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을 떠나 캄폿에 정착했고 올리스 플레이스도 인수했다. 정작 올리라는 남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한다.


쥘과 세바스티앙은 오랜 친구로, 여름에는 쥘이 겨울에는 세바스티앙이 그곳을 지키는 식이었다. 세바스티앙이 올리스 플레이스를 지키는 겨울에 쥘은 고향에 돌아가 스키장 장비 대여숍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번다고. 세바스티앙은 며칠 후에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고향에서 버섯 농사로 돈을 꽤 벌어뒀다 했다. 겨울이면 고향에 가 일을 하는 쥘과 달리 세바스티앙이 여름에도 인근에 머물며 여유롭게 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던 건 버섯 농사 덕분이었다.


"어떻게 프랑스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거야?" 여자가 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살 수 있는데
왜 거기서 그렇게 살아?


여자는 그 두 사람의 선택이 멋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쥘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사는 게 멋있지는 않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지만."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을 그만둔 후 아주 잠시 캄폿에 머물게 된 여자는,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을 그만둔 후 캄폿에 정착한 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 억양이 강한 쥘의 말을 완전히 알아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고, 쥘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각자의 나라를 떠나 그곳 말도 모국말도 아닌 제 삼의 언어로 소통하며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또 어떤 부분은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갔다. 제 삼의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이해하고 있다는 기쁨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과 친해지는 게 직장동료와 친해지는 것보다 더 쉬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배가 고팠다. 쥘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그 말만큼은 정확히 알아들은 쥘이, 몇 시간 전 '주방이 마감을 해서 말이지"하고 사무적으로 말할 때와 달리 "주방에 먹을 게 좀 있나 볼게." 하고 사라졌다. 잠시 후 커다란 바게트 2개와 바나나, 프랑스에 갔을 때 사 왔다는 치즈와 누뗄라를 쟁반에 담아 나타났다. 여자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하지만 좋아하는 향긋한 풀도 함께.



빵과 술을 나눠 먹은 쥘이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혼자 좀 더 시간을 보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다음날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났다.


마치 집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처럼 대충 씻고 바에서 점심을 주문해 아이스커피와 함께 먹고 내내 글을 썼다. 책을 읽다 해가 지면 다시 저녁과 맥주를 주문해 먹고 마시고 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바에서 쥘과 쥘의 친구들, 혹은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하거나, 강가에 걸린 해먹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며칠을 내내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되는 날씨였고 그래도 되는 곳이었고 그래도 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어서, 그렇게만 해도 시간이 너무 잘 가서, 겨우 십 미터 문 밖으로 산책을 나가기까지 며칠씩이나 걸린 것이다.


올리스 플레이스에는 총 열흘(이면 짧은 시간은 아닌데도) 머무는 여자로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장기 투숙자가 두 명 있었다. 벨기에에서 온 멜라니와 호주에서 온 사이먼. 멜라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로 옆 요가 센터에서 요가하고 낮에 부지런히 쏘다닌 후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침형 인간이었고, 사이먼은 항상 밤이 돼야 바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당연히 여자가 더 많이 만나게 된 건 밤에 나타나는 사이먼으로, 사이먼은 쥘이 일찍 퇴근해버린 후에도 잠긴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꺼내 마실 수 있는 특권을 지닌 투숙객이었다.


사이먼은 호주에선 택시운전과 바텐더 일을 한다 했다. 여름에 운전하고 겨울에 바에서 일하는데 어느 쪽이든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아 호주에서의 일상이 끔찍하다고, 일하고 잠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보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어서 끔찍한, 일 년 중 열 달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먼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깊어졌다. 희한하게도 눈가 주름은 웃을 때 생기는 것과 찌푸릴 때 생기는 것이 다르다. 사이먼도 그랬다.


사이먼이 캄폿을 알게 된 것도 쥘이나 세바스티앙처럼 그리고 여자처럼, 우연히였다. 삼 년 전 어쩌다 캄폿을 여행하게 됐고 비자 연장해가며 일 년을 머물렀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호주에 돌아갔지만 그 후로는 일 년 중 두 달을 캄폿에서 지낸다 했다. 캄폿에서 보내는 시간이 항상 두 달인 이유는, 여행자 비자로는 최장 한 달을 머물 수 있고 최대 한 번 더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쥘이 자러 가고 나면 바 안쪽에 앉아 쥘 대신 맥주 꺼내 주고 장부에 적어주던 사이먼은 여자가 여행 중 만난 그 누구보다 여자 말을 차분하게 잘 들어줬다. 이해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대충 넘어가는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여자가 하려는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려고 귀 기울이고 되물었다. 여자는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도 사이먼에게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날에는 이제 그만 자야지, 응 그래야지,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하고도 한 시간, 두 시간씩 더 이야기하기도 했다.



라오스 볼라벤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바이크를 타야 한다 말해준 건 쥘이었지만, 정작 여자가 바이크 배울 용기를 준 건 사이먼이었다. 집중하는 눈으로 상대 이야기를 듣고 조용한 목소리로 힘 있게 격려할 줄 알던 사이먼이 호주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자는 캄폿을 떠난 후로도 종종 안부가 궁금했다. 어쩔 수 없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고 있을까. 여전히 그런 일상을 매일 버텨내고 있을까. 그렇다 해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유월이 된다는 사실이다. 유월은 사이먼이 캄폿을 찾는 달이다.


혼자 여행 중이던 여자는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는데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먼 사진은 단 두 장이었다. 그와는 이야기를 많이 했고, 이야기 한창 하다 '사진 좀 찍을게'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이먼은 낮엔 만나기 힘들었는데 여자는 예정하지 않은 어느 낮에 갑자기 떠났다. 그곳에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났을 때부터 새벽에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여자가 항상 말했던 것처럼.


내일 떠날지도 몰라. 내일 밤 내가 바에 없다면 떠난 거야.

그리고 정말 여자는 사이먼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 날 떠나지 않으면 여행이 끝날 때까지 거길 떠나지 못할 것 같은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캄폿에서도 한참 북쪽에 있는 라오스 비엔티앤에서 타야 했고 슬슬 올라가기 시작해야 여자의 게으른 속도로도 날짜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거였다. 올리스 플레이스를 떠난 후 짧은 메일을 서로 주고받았을 뿐 사이먼에게 다시 안부를 묻지 못했지만 캄폿을 생각하면 항상 쥘과 함께 사이먼이 떠올랐다.


여자는 여행에서 돌아와 돈이 떨어질 때까지 몇 달을 더 버티다 다시 직장인이 됐다. 비록 일 년 중 열 달을 괴롭게 보내기는 해도, 일 년 중 두 달씩이나 그렇게 보낼 수 있는 사이먼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매년 두 달만이라도 누구보다 편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자는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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