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06 - 캄보디아 캄폿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시하눅빌에서 캄폿 가는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운전기사가 빗물에 패인 구간을 피해보려 핸들을 꺾을 때마다 미니밴은 바다 위 배처럼 요동쳤다. 물 위를 달리는 배 아닌 밴이었다.
그때 여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키 크고 덩치 큰 두 독일인 대학생 사이에 껴 앉아 있었다. 봉고차 맨 뒷자리에 먼저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빈자리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여자와 나란히 앉아야 했다. 여자가 논 위위 농부처럼 허리를 숙이고 뒤쪽으로 가자 두 사람은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지며 가운데 자리를 내주었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안쪽에 앉은 갈색머리는 이미 사마귀처럼 접은 다리가 위로 높이 솟아 있었고, 바깥쪽에 앉은 금발머리는 그나마 통로 사이로 다리를 조금 더 뻗을 수 있었지만 금발이 갈색머리보다 키가 더 커서 그래봐야 불편해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여자가 뒤쪽으로 다가갈 때 서로 각자의 가장자리로 붙어앉으며 여자에게 양해를 구했고, 하여 여자는 그들 가운데 앉게 된 것이었다. 밴은 좁았다. 그들에 비하면 삼십 센티미터는 더 짧은 다리를 보유한 여자 역시 다리를 구십도로 접고 꼼짝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사연으로 두 친구 사이를 갈라놓게 된 거였지만 여자는 차가 위아래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두 독일인에게 미안했다. 두 사람은 최대한 여자에게 닿지 않기 위해서 각자 자기 머리 위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부여잡고 창문 쪽으로 최대한 몸을 밀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시간쯤 갔을까. 여자의 왼쪽, 그러니까 구석의 갈색머리 독일인이 여자에게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우리가 얼마쯤 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뭘 저렇게까지, 생각하며 스마트폰 지도를 켜보니 그곳은 여정의 딱 가운데쯤이었다. 그걸 보여주며 온 만큼 더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독일인 대학생은 아까보다 더욱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랬다. 그는 한 시간 동안이나 화장실을 참아온 것이었다. 여자에게 참을 수 없다는 말을 할 여유가 있다면 우선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워 달라는 얘기부터 하는 게 맞았겠지만 그는 참는 데 온 힘을 다 쏟고 있어서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자는 독일인에게 얼른 차를 세워달라고 말하라는, 별로 참신하지도 않은 해법을 그에게 제안했는데, 그는 마치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말한 뒤 곧바로 운전기사에게 차를 좀 세워달라고 소리쳤다.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휴게소가 있어서 얼마 가지 않아 차는 멈춰 섰고 그 독일인은 마침내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캄폿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이미 캄폿을 여행한 그 독일인들은 캄폿을 거쳐 베트남으로 간다고 했다. 여행하다 만난 몇몇 여행자에게 듣자 하니 유럽의 대학생들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을 횡단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인 모양이었다. 두 독일인 대학생은 아무리 접어 봐도 끊임없이 차체에 부딪치는 무릎을 그러모으고 앉아있던 두 시간 동안 너무 불편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지나친 친밀함과 그로 인한 어색함을 잘 견딘 끝에 미니밴이 드디어 캄폿에 도착했다.
시하눅빌처럼 폭우는 아니었지만 캄폿에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자가 캄폿을 다음 장소로 정한 건, 캄폿 강과 강변에 바로 인접한 여행자 숙소들 때문이었다. 두리안 동상을 중심으로 여행사들이 주로 모여 있는 강 이쪽에도 식당과 카페를 겸하는 전망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많았지만, 그 사이엔 도로가 껴 있었다. 하지만 강을 건너 조금만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강 바로 위에 지어놓은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 가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자는 배낭을 메고 그 위에 우비를 입고 캐리어를 끌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몇 명의 툭툭 기사들이 여자에게 다가와 가격을 흥정했고, 여자는 모두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혼자 쓸 수 있는 방갈로도 하룻밤 6달러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바로 저기까지 가는데 2달러면 너무 비싸다고. 그렇게 몇 명의 툭툭 기사들을 돌려보내고 십 분 넘게 걸어서 강을 건넜다. 하지만 방향을 반대쪽으로 잡는 바람에 여자는 꽤 먼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강을 건너기 전 도로는 매끈하게 닦여 있었는데 강을 건너자 자갈이 가득한 흙길인 데다 비까지 멈추지 않고 내려 여자는 아주 조금만 걷고도 금세 완전히 지쳐버렸다.
2달러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수정되었고, 이제는 일단 일단 툭툭이 보이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타고 보자는 마음이 됐다. 하지만 꼭 그럴 때는 희한하게도 그 많던 툭툭들이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던 여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버렸다. 일 분이 마치 한 시간 같았기 때문에 오 분인지, 십 분인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을 때쯤 드디어 저쪽에서 툭툭 한 대가 오는 게 보였다. 캄폿에 막 내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귀찮았던 툭툭이 그 순간 얼마나 반가웠던지 여자는 여행 중 처음으로, 크게 손을 흔들어 툭툭 기사를 먼저 불렀다. 가려는 숙소의 이름을 알려줬더니 역시나 2달러라고 했다. 저기서부터 와도 2달러, 여기서부터 가도 2달러라면 대체 나는 왜 빗속에서 이 고생을 했나 싶은 마음에 여자는 방금 전 했던,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타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을 잊고 기어이 가격을 깎았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곳은 그 후로 여자가 열흘 밤낮을 머물게 되는 올리스 플레이스(Olly's Place)다.
올리스 플레이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자는 실망했다. 사진으로 봤을 땐 분명 강물이 손이 닿을 것처럼 보였는데 입구에선 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갈 데도, 갈 힘도 없어서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방갈로 네 개를 지나고 나자 금세 강이 보였다.
강이 보이는 좁고 짧은 건물 복도를 지나면 리셉션 겸 바가 있었고 더 안쪽으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있었는데, 그곳은 정말로 강 위에 지어져 있었다.
여자는 방갈로에서 묵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비어 있는 방갈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침대가 여러 개 놓인 도미토리 안에 짐을 가져다놓긴 했는데, 여자의 실망한 표정을 읽었는지 프랑스인 주인 쥘(Gilles)이 갑자기 괜찮다면 자신이 쓰던 방갈로를 치우고 그걸 여자에게 주겠다고 했다. 여자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왠지 그곳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짐을 두고 편하게 잘 곳이 꼭 필요했다. 여자는, 쥘이 쓰던 방이 청소되기를 기다리면서 강과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우선 맥주를 주문했다.
성기게 엮었지만 단단한 대나무 의자, 그 위에 얹힌 꿉꿉한 쿠션, 그 위에 앉아 강을 바라보면서 캔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클랑(Klang) 맥주의 캔 뚜껑을 따던 바로 그 순간, 그리고 첫 모금을 넘기던 바로 그 순간, 여자는 눈으로 보고 있던 강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여자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만으로 됐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