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가장 아름다운 언덕 비크(Vik)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1

by Mihyang Eun

여행지에서 나를 가장 흥분하게 하는 건 우연과 우연이 안내한 풍경 혹은 경험이다.


가려고 미리 계획했던 곳은 어느 정도 미리 알고 가는 곳이다. 그곳의 어떤 점이 나를 매혹시키고, 나를 기대하게 한 후 대개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만 때로는 아직 가보기 전이 더 설레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슬란드의 곳곳, 어디 하나 놀랍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런 점에서 Vik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특별한 장소로 남아 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이 검은 모래의 해변이었다.

vik, iceland, 201309


부드러운 검은 모래의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고,

vik, iceland, 201309


모래 위를 걷고,

vik, iceland, 201309


누군가 돌로 적어놓은 글자를 구경하고,

vik, iceland, 201309


누군가는 그 누군가가 적어놓은 글자 앞에 나란히 누워도 보고,



모래만큼 반질반질한 돌도 줍고,

vik, iceland, 201309 by river


우리는 언제든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갈 수 있는 여행자니까 그저 앉아있기도 하고,

vik, iceland, 201309 by elanor


우리만큼이나 한가로운 다른 여행자들을 몰래 훔쳐보다가,

vik, iceland, 201309


들키기도 하고,

vik, iceland, 201309


검은 모래밭에 앉아 뒤쪽 언덕을 한 없이 올려다 보고,

vik, iceland, 201309


그러면서도 저기 저 언덕 위에 우리가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한참을 거기서 빈둥거렸다.


그러다 장이나 봐서 숙소로 돌아갈까 하고 나오는 길엔 오래돼 보이는 나무와,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정확한 용도는 알지 못한 채 그저 추측할 뿐인 나무더미들을 발견하고는, 저기에 누군가 시체를 묻고 불태워버린 건 아닐까 이야기를 했다.

vik, iceland, 201309

나는 어떤 나라를 여행하기 전에 여행 정보가 있는 책보다는 그 나라의 작가가 쓴 소설을 읽어보는 편인데,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에 읽은 책들이 죄다 추리소설이었던 탓도 있지만,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아, 여긴 누구 한 명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두려움도 살짝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해변에서 빠져나오는데, 아까 해변에서 봤던 뒤편 언덕으로 차 한 대가 살금살금 오르는 것이 보였다. 멀고 높아서 그곳에 길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우리가 해변에서 빠져나와 그 언덕길을 바라봤던 그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그 차가 올라가면서,


여기에 길이 있다


고, 그러니


너희도 올라올 수 있다


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냥 돌아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그 차가 올라갔던 길 쪽으로 무작정 가봤는데, 거기에 이런 표지판이 있었다. 사륜구동만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길이었던 것이다.

vik, iceland, 201309


찻길의 경사는 최소 40도는 되는 것 같았는데, 우리에겐 베스트 드라이버와 사륜구동이 있었으므로, 더군다나 일단 올라가기 시작하면 멈추는 것이 더 어려웠으므로, 결국 편평하게 펼쳐진 길이 나와 안전하게 차를 세울 때까지 올라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은 없었다.

vik, iceland, 201309


올라가는 내내, 엘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고, 올라가는 내내, 나는 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vik, iceland, 201309


올라갈수록 아래쪽으로 이런 풍경들이 조금씩 더 넓게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vik, iceland, 201309


그리고 마침내 올라간 곳의 풍경은,

vik, iceland, 201309 by anne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by elanor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저 멀리로는 빙하로 뒤덮인 산도 보이고,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by river
vik, iceland, 201309 by river
vik, iceland, 201309 by river
vik, iceland, 201309 by anne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by anne
vik, iceland, 201309 by elanor
vik, iceland, 201309 by elanor


비크 언덕에서 내려오기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은 중요하지도 않다. 저기서 하루 종일 있었어도 내려오는 그 길은 눈물의 이별이었을 것이고, 저기서 단 5분을 보냈어도 아마 평생 그곳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 우리의 배 밑에 깔렸던 부드러운 잔디들, 다른 편 언덕 너머로 보이는 빙하로 이루어진 산, 주위를 날아다니던 새들, 그 공기는 코가 빨개질 만큼의 추위도 잊게 하고, 내일 가야 할 곳도 잊게 하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도 잊게 하고, 잊으려고 해도 도저히 잊히지 않던 지긋지긋한 잡념들도 잊게 하고, 오로지 그 순간에 그곳에 우리만 있게 했다.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vik, iceland,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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