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먹어왔나

by Mihyang Eun

지금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웃지만, 어릴 적 나는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땐 비교적 날씬했다


아기 때부터 입 짧기로는 유명했던 것 같다. 우유는 입에도 대지 않아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2년씩이나 먹었고, 밥을 먹기 시작할 나이에는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한 숟갈씩 떠먹이느라 한 끼 먹이는 데 몇 시간씩 걸렸다고 한다. 밥 때가 되면 아예 밥그릇을 밖에 들고 나와 한 숟갈 입에 물리면 쪼르르 도망가고, 쫓아가서 또 한 숟갈 먹이면 또 쪼르르 도망가는 불효녀였다.

이런 불효는 크면서도 계속 됐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아서 꼭 한 숟갈씩 남기는 못된 버릇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먹는 양은 늘 정해져있는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가 늘 내 양보다 더 많이 밥을 푼 탓이다.

당시 나는 눈앞에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부르면 절대로 먹지 않았고, 고기도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돼지갈비집에서 모처럼 외식하는 날에도 감자샐러드나 깨작대다가 고기가 익기도 전에 금세 배가 부르다고 수저를 놔버려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이런 거 맛을 몰랐던 때가 좋았다


식탐이 없다 보니 용돈이 정해져 있던 학생 때는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먹는 데 쓰는 돈을 아꼈다. 그렇게 아낀 용돈으로 중학교 땐 주로 카세트테이프나 편지지를 샀고, 고등학교 땐 씨디를 사 모았다.

그랬기 때문에 씀씀이가 크고, 간식 사먹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았다.

쉬는 시간이면 매점에 우르르 몰려가 간식거리를 사 먹고, 어디 같이 놀러 다닐 땐 금방 밥을 먹었어도 간식을 또 사먹어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몹시 괴로웠다. 매번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같이 먹어야 맛있다고 굳이 같이 먹기를 강요하는 경우도 많았다. 먹고 싶지도 않은 걸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걸 위해 돈을 써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이도 저도 다 하기엔 부족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방송반이라 점심 때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매일 정오방송을 했기 때문에 동기들은 주로 3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곤 했는데, 나는 심지어 먹는 속도도 엄청 느려서 점심도시락을 5교시 마치고 조금 먹고, 6교시 마치고 조금 먹어도 다 못 먹을 때가 많았다. 덕분에 학기 초엔 친구들에게 오해 아닌 오해도 받았다.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이 두 개였던 날엔 도시락 하나를 몰래 버리고 집에 가져가는 날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생 땐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그 좋아하는 맥주도 잘 마시지 않았다. 맥주는 한 잔 이상 마시기가 힘들었다.


이젠 뭐 이 정도는..


친구들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면 내가 주문한 메뉴는 친구들이 함께 먹는 공통 메뉴였다.


이랬던 내가 배가 불러도 더 먹고, 못 먹던 음식도 배우고, 음식 남기는 게 아깝다고 마저 먹고, 맥주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실 수 있게 된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취를 하게 됐는데, 이때 회식을 통해서 각종 회며(이전까지는 오징어회나 문어숙회만 겨우 몇 점 먹는 정도였다) 개불이나 산낙지 같은 다소 고난도의 해산물에 맛을 들였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먹어도 살아 있는 육고기는 절대 못 먹는다고 손사래 치던 내가 육회도 배웠다. 심지어 감자탕도 그때 처음 먹어본다고 말해서 좌중을 놀라게 한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이때, 눈앞에 있을 때, 누가 사 줄 때, 많이 먹어두자, 하는 생존본능을 배웠다.


그러니 그 힘들다는 크로스핏을 3개월 동안 해도 살이 안 빠지지


이렇게 새로 배운 음식들은 대부분 이전에 내가 좋아하던 음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거듭하면서 나도 돈을 벌고, 먹어본 음식이 많아지니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졌다.


여전히 남들보다 훨씬 빨리 배가 부르다고 느끼지만, 남들처럼 "배불러.", "배 터질 것 같아.", "배불러 죽을 것 같아." 삼단고음을 외치면서도 눈앞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후식까지 먹으며 위장의 놀라운 잠재력을 새롭게 발견했다.

예전엔 내가 시킨 메뉴 하나도 다 못 먹어서, 둘이 가서 세 가지를 시키거나, 셋이 가서 네 가지를 시키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젠 내가 먼저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서 나눠먹자”고 할 때도 많다. 다 못 먹을 게 뻔하더라도, 상대가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고 하면, 그래, 인생 뭐 있냐며,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자고 그랬다.

먹는 재미를 알게 되고, 먹을 것 사 주는 사람의 존재감이 어떤 건지 배워서인가.

영화제 일을 할 때는, 우리팀원만 4명에, 아직 대학생인 자원활동가들까지 하면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을 매번 내 힘으로 배불리 먹일 수 없는 내 신세가 참으로 속상해서 무리하게 돈을 쓰기도 했다. “마음껏 시켜.” 하고 말한 뒤, 계산할 땐 “내가 낼게.” 하면 아이들이 잘 훈련된 방청객처럼 좋아하고, 그럼 일단 나도 좋았다.

‘밥 먹여주는 사람’, ‘돈 걱정 말고 마음껏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월요일을 그토록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출근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있고, 가끔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고도 아무 말 못하고 일하는 것도 다 그들이 밥을 먹여주기 때문 아닌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그랬다. 마을사람들을 잘 다스리는 비결은 잘 먹이는 거라고.


엄마가 배부르면 내 배도 불..러


당연히, 늘 나를 먹여주던 사람인 엄마나 식구들에게 비싸고 맛있는 걸 사줄 때도 기분이 좋았다. 가격이 적당한 메뉴를 고르면, 더 비싼 걸 시키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엄마가 왜 그렇게 속상해하고, 일하면서도 몇 번씩이나 전화해서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지도 알게 됐다.


거기다 심지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조카까지 생겼다


그런데 다시 백수가 되면서, 월급 주는 회사에 다시 취직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며 살아보고 싶어지면서, 먹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먹는 건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으로 여겼던 내가 어쩌다 배고픈 걸 참을 수 없게 되고, 먹는 즐거움을 넘어서 무리하게 먹어대는 식탐을 갖게 됐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한 통이라도 더 쓰기 위해서라면 적당히 배만 채워도 전혀 허기를 못 느꼈던 내가, 이제는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다 욕심을 내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입으로 먹는 양식 말고 마음의 양식 어쩌고, 몸이 느끼는 허기 말고 영혼의 허기 어쩌고를 얘기하려고 이 긴 글을 쓴 게 아니다.

그런데 이건 분명한 것 같다. 정말 꼭 필요한 만큼의 돈만 갖고 정말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으니까, 꼭 이것저것 다 해야 행복하고 이것저것 다 먹어야 배부른 건 아니라는 걸 조금 알게 됐다. 뭐, 알 수밖에 없게 됐다. 조금 부족해보니까, 뭐가 더 갈급한지 알겠고, 조금 부족해보니까, 그동안 내가 무엇을 과하게 취해왔는지 알게 됐다. 뭐, 알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부터는 좋아하는 해산물 앞에서까지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더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