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21 - 콩로의 콩로 동굴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콩로에 도착해 적당한 숙소를 구했다. 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가깝고, 세 명이 함께 잘 수 있는 방을 보유한 곳. 말로는 방을 먼저 봐도 되겠느냐고 하며 까다롭게 고를 것처럼 굴었지만, 실제로는 셋이 누울 침대가 사방이 막힌 공간 안에 있기만 하다면 그냥 바로 가서 누워버리겠다는 마음이었으므로, 여자들은 방을 보자마자 더 둘러볼 것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마음에 들어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작정하고 마음에 들어했다.
썽태우를 타고 오면서 대충 본 중에서도 굉장히 큰 축에 드는 집이었다. 마당이 넓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대형버스 두 대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너른 마당 뒤쪽으로 나무 계단 위에 단층으로 방이 나란히 있었고 입구에는 영업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식당이 있었다.
여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빗발이 잦아든 후였지만, 조금 전 나힌에서 온 것만큼 그곳에도 비가 왔다면 아마 엄청난 양이었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듯, 그 너른 마당 어느 구석에도 마음 놓고 발을 디딜 만한 곳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곳에 묵기로 결정한 상태였던 여자들은 다시 입구로 가서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어안고 발이 푹푹 들어가는 진흙들을 디디어 다시 방으로 갔다.
그렇게 다시 가 보니 모든 것이 눅눅한 방이었다. 이불과 시트, 베개가 모두. 하지만 침구들이 모두 새로 세탁해 둔 것이 맞는지까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날씨에선 어쨌든 웬만한 섬유들은 젖은 공기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고, 굳이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짐을 꾸려 새로운 숙소를 찾아 나설 의지가 여자들 중 누구에게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리케는 두통이 있었다. 방에서 잠시 쉬겠다는 마리케를 두고 여자와 테스는 동네 산책을 나섰다. 여자 역시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눅눅한 방에 누워 있기보다는 눅눅한 땅을 밟고 걷는 편을 선택했다. 바닥에 거칠게 내리 꽂히던 빗방울이 어느새 힘이 빠져 있었다. 테스와 여자가 함께 걸은 길은, 나힌에서 썽태우를 타고 들어오며 봤던 길과 다르지 않았다. 비가 한껏 채도를 높여두어 더 새파래진 풀과 나무와 나무를 엮어 만든 낮은 울타리들과 드문드문 길을 걷는 마을 사람들. 그것이 전부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전반적으로 취향과 욕망과 타이밍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단 한 가지 허기를 느끼는 빈도와 강도와 타이밍과 식욕은 조금 달랐다. 마리케는 채식주의자였고, 하루에 두어 번 정도 배가 고팠다면 여자와 테스는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으며 하루에 세 번 이상 배가 고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자는 테스와 비슷했지만 테스보다도 좀 더 자주 허기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콩로에서의 산책에서도 여자는 곧 허기를 느꼈다. 그래서 강과 접해 있다는 해피 스마일링 보이인가, 스마일링 해피 보이인가, 그도 아니면 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식당은 마을의 꽤 구석진 곳에 있었다. 푸힌분 강에 바로 인접해 있었고, 식당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엔 행복해 보이는 어린 소년이 정말로 있었다. 나무 의자가 비에 흠뻑 젖어 아마 최소 이틀 동안은 완전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강 바로 곁의 식탁 대신 지붕 아래에 있는 식탁에 앉아 일 인분의 음식과 한 병의 맥주를 주문했다. 여자가 음식을 주문할 때 테스가 지켜보기만 했던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요리사는 행복한 소년의 아버지였다. 행복한 소년의 아버지가 만든 요리는 훌륭했다. 비어 라오가 한 번 입맛을 더하고, 마을 전체를 관통해 콩로 동굴로 이어지는 푸힌분 강(Phu Hin Bun River)이 또 한 번, 저편 강 위에 떠 있는 배 위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이 거기에 또 한 번, 밥을 먹는 동안에도 가끔 천장을 때리던 빗방울들이 또 또 한 번 더 입맛을 돋웠다.
여자의 배가 부를 때쯤, 테스는 배가 고파왔고 마침 체력을 회복한 마리케에게 연락이 왔으므로 여자들은 또 다른 식당으로 갔다.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테스와 마리케가 저녁을 먹는 동안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더는 보이는 것도, 갈 곳도 없어 식당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다른 여행자들과 합류했다. 라오스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여자들과 달리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여행자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눈 뒤에야 서로의 국적과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한국인들을 보고 온 터였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온 여행자들은 여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에는 왜 그렇게 한국 사람이 많은 거냐고. 여자는 한국에서 방영된 꽃보다 청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잠시 후 시리아에서 온 한 여행자가 제안한 게임을 하다 늦은 밤이 돼서야 서로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여자들은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동굴 방향으로 갔다. 하루 방값이 겨우 30달러 정도밖에 하지 않는데도 당시 여자들에게는 그런 곳에 묵는다는 게 사치에 가까웠으므로 호화 리조트에서 아침을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리조트 식당은 높고 가파른 산 아래에 숨어 있었다.
아주 충분히 천천히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에 콩로 동굴로 가서 배를 빌리고 사공을 만났다. 콩로 동굴은 총길이가 7킬로미터, 동굴 안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92미터(300피트) 정도 되는 석회암 동굴로, 모두 둘러보는 데만도 ㅡ여자의 미덥지 않은 기억력에 의하면ㅡ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동굴 안을 다니는 기다란 보트를 타려면 먼저 또 다른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동굴 입구로 가야 했다.
동굴 입구에 도착하면, 보트가 가득 정박해 있고 그중 하나를 타고 동굴 탐험을 시작한다. 그 날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일단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끼고 어두운 동굴 속 물 위를 달리면 보이는 것은 자신과 함께 탄 이들과 뱃사공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만이 선명하게 눈이 보인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으면 넓은 동굴의 겨우 일부밖에 볼 수 없지만, 함께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만은 분명하게 보였다. 그 눈들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7킬로미터에 이르는 동굴의 중간쯤 도착하면 뱃사공은 여행자들을 내려준다. 동굴 안에 짧은 산책로를 만들어 종유석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두었는데, 이곳엔 종유석들의 기괴한 모양들이 잘 보이도록 조명이 설치돼 있었다. 그중 특히 에메랄드 빛 조명은 현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힌디 신 인드라의 피부 색깔을 반영한 것이라고, 여자는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참 후에 어디선가 읽었다.
조명에 의지해 종유석들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곳은 동굴 속 어딘가가 아니라 굉장히 커다란 누군가의 내장 속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살피고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줬다. 훗날 여자는 엄마의 대장 내시경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엄마의 대장 구석구석을 봐야 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콩로 동굴에서 본 그 종유석들이 떠올랐었다. 종유석은 동굴의 혈관이고, 그 안을 흐르는 강물은 피였던 셈인데, 그것은 정말로 그랬으므로,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라고 훗날 여자는 엄마의 대장 속을 보며 생각했다.
동굴 속 산책로에서 여행자들을 한 번 내려줬던 보트는 산책로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온 만큼을 가서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동굴의 밖이자 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숲에다 여행자들을 한 번 더 부린다.
그 숲에는 높은 나무들만 살았다. 산의 너무 깊숙한 곳이어서, 키가 크지 않으면 숲 밖의 세상은 조금도 구경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높은 나무들만이 살아남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의 산책을 마치면 사공은 다시 여행자들을 태우러 왔다. 그리고 온 길을 되돌아 간다. 돌아가는 길엔 산책이 없다. 돌아가는 그 길을 처음 가는 여행자들을 종종 마주치는 것, 그리고 처음 지날 때 헤드라이트로 미처 비추지 못한 곳들을 비추며 마지막으로 동굴 속을 여기저기 살피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상한 것은, 동굴에서 나온 후에 여자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여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 주 동안의 동남아 여행에서 유일하게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냈는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유일한 오후이고 유일한 저녁이고 유일한 밤이다.
단지 동굴에서 나와 찍어둔 사진을 통해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인데, 그나마도 많지 않고, 그나마도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여자는 그 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기 힘들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오후와 저녁과 밤을 지나, 다음날 새벽 여자들은 숙소 마당에서 비엔티엔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저렇게 많은 나무판자들이 대체 이 버스 어디에 다 들어가는 건지 의아할 정도의 나무판자들을 모두 싣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지만 이미 라오스의 버스들은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실었다 내렸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들이 그 버스에 타고 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 버스는 콩로에서 비엔티엔을 가는 버스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버스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분명한 것은 그 여정이 아주, 아주아주, 긴 여행이 될 예정이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