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운 커핏잔이 테이블에 놓여있네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26 - 에필로그

by Mihyang Eun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겨우 6주 정도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여자가 종이책에 담을 요량으로 시작한 이 연재 첫 글, 프롤로그의 제목은 '마침내 실패를 인정하기까지'였다. 그 글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여자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물론 이미 진작에 돌아오긴 했지만 글로 여행을 정리함으로써 정말로 완전히 그 여행에서 돌아오면, 마침내 실패를 인정하고 떠난 여행이었으니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조금은 다른 곳에서 조금은 다른 풍경을 보고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침내 마지막 글을 쓰면서 여자는, 이것은 또 다른 실패이며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더 해야 할 일은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마침내 실패를 인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책을 만들기로 약속하고 출판비를 후원받았으니 책을 만들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게 정말로 꼭 책으로 만들어져야 할 글들인가를 생각하면 여자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역시 깨끗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손을 터는 것인데, 이제와 손을 터는 것은 범죄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쓴 글이라는 횟감을 이미 한 약속이라는 도마 위에서 최선을 다해 손질하고 그것을 내어놓는 일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재를 시작하면서 고정적으로 사용했던 저 상단 박스(스물다섯에 어쩌고~ '번외 편'이다 어쩌고) 속 글을, 상자를 뭉개 없애듯 함께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하면서도 무려 스물여섯 번이나 똑같이 복사해 붙여 넣어야 했던 일은 어떻게 해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게 됐다. 언제든 수정하고 지울 수 있는 온라인상의 글이라지만, 부끄러워도 그것을 견디는 것이, 부끄럽다고 은근슬쩍 그걸 지워버리는 것보다는 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여행에서 돌아오기 직전, 여자는 와이파이가 되는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마지막으로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고 자랑함으로써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만 한 것도 없었으므로 비엔티엔에서 아주 마음에 꼭 들었던 더 리틀 하우스 카페의 사진 몇 장을 골라 올렸다. 창가 자리에 앉았던 여자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자신이 비운 잔이 아직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자신의 거의 마지막 짧은 흔적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사진을 찍어뒀다.


그 사진은 그날 저녁 '내가 비운 커핏잔이 테이블에 놓여있네.'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업로드되었는데, 그렇게 한글로 된 문장을 올려두고 보니 문득 그날 아침까지도 함께 있었던 테스와 마리케가 떠올랐다. 여자들이 만약 그 문장이 궁금해 구글 번역기에서 자신들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번역해본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우선 네덜란드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여자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으므로 그 번역이 잘 됐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 번 한국어로 번역해 봐야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그렇게나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구글이 보여준 문장은 이러했다.


테이블에 큰 거짓말이 있다. pitjan 나는 비워.


아마 여자가 '커핏잔'이라는 틀린 철자 대신 '커피잔'이라는 맞는 철자를 썼다면 번역된 문장은 한글과 한글 사이에 'pitjan(핏잔)' 같은 어느 나라 말도 아닌 말을 끼워 넣는 대신 좀 더 그럴싸한, 또 다른 뜻을 가진 문장을 만들었겠지만, 당시 여자로서는 그 문장이 마치 어떤 계시와도 같이 느껴졌다. 이를 테면,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테이블에 큰 거짓말이 있다.'라는 문장이 들어가는 소설을 쓰라고 그 누군가가, 테스나 마리케가 멀리서나마 그 문장을 여자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비록 아직은 그 선물을 풀어보지도 않은 채 끌어안고만 있지만.



테이블 위에 큰 거짓말이 놓여 있고 그 핏잔을 비우는 이야기는 쓰지도 못한 채 6주 동안의 여행에 대해 첫 번째 글을 올린 것이 올해 1월 6일이었는데, 이제 정말 마지막이 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7월 하고도 19일이나 됐다. 첫 번째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여자는 2016년 7월 19일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가난하더라도 다시 회사원이 되기보다는 어떻게든 글을 쓰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형태의 삶ㅡ사실 그게 정확히 어떤 삶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형태의ㅡ을 살고 있기를 바랐다.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면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고 있기를, 당시의 여자는 바랐다.


물론 삶이 흘러가는 형태는 항상 여자의 바람과는 달랐다. 분명히 노를 이렇게 이렇게 저으면 저쪽으로 갈 거라 배웠는데 막상 노는 배운 대로 저어지지 않고, 배운 대로 저어봐야 물살과 바람까지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방향을 바꾼 뱃머리가 닿은 땅은,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선이 불시착해야만 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비겁한 결론이라고 하겠지만 그 땅에는 그 땅대로의 사람들과 삶이 또 존재했다.


그렇게, 여자는 다시 회사원이 되어 일을 하고 있다. 다섯 달이 됐다. 다시 글 쓰고 책 만들며 사는 삶을 놓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회사원이라는 '낮의 일'이 글 쓰고 책 만드는 사람이라는 '밤의 일' 또한 가능하게 함을 알고 있다. 단순한 월급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의 문제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의 에너지가 위치에너지에서 운동에너지로 변환되듯 낮 동안의 일에너지가 밤 동안의 글에너지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낮동안 그만큼의 에너지를 끌어올려뒀기 때문에 밤동안 태울 것이 생기는 것 같다, 고 여자는 아직까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여자는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일과를 마치고 부엌 식탁에 앉아 쓴 글'을 '키친테이블라이팅(Kitchen Table Writing)'이라고 부르면서, 자신과 비슷하게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면을 만들고 있고, 자신 역시 키친테이블ㅡ비록 식탁까진 둘 곳 없는 원룸에서 살고 있지만ㅡ라이터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그날 비엔티엔의 그 카페 테이블에 놓아두고 온 것이 내가 비운 커핏잔이었는지, 큰 거짓말이었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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