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돌아왔다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25 - 비엔티엔

by Mihyang Eun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함께 아침을 먹고 여자는 숙소 앞에서 테스와 마리케의 배웅을 받으며 툭툭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차마 문밖을 넘어서지도 못하던 여자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여자는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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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비엔티엔으로 가는 길에 버스를 타는 대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방비엥에서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미니밴을 타고 이동했던 그 기나긴 이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비행기는 버스보다 훨씬 비쌌지만 여자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부족할 때는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도 좋다, 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싼 비행기 티켓을 사기 위한 수고 정도는 감수할 의사가 있었다.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엔을 오가는 항공사는 라오스 국적기와 라오 스카이웨이 두 가지 정도인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는데,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으므로 여자는 라오 스카이웨이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저가항공사답게 그 티켓은 예약이라는 것을 하기가 힘들었고 공항에 가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공항으로 갔는데 티켓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또한 없지 않았으나 비수기였으니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공항엘 갔고, 세상을 비교적 편하고 만만하게 살아가는 여자에게 수월하게도 표는 있었다. 다만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긴 했는데 여행 중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아직 덜 읽었으니까 책을 읽으면 됐고, 그간 일기 쓰기를 미뤄뒀으니까 밀린 일기도 쓸 수 있었으니까 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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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엔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돈으로 남은 하루를 보내야 했으므로 시내로 나가려고 하는 프랑스인 자매와 함께 툭툭을 흥정해 돈을 나눠 내고 시내까지 갔다. 말했다시피 비엔티엔에 대해서 여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쯤 되니, 시작할 때 가득 채워뒀던 열정도 바닥이 났고, 남아 있는 열정으로는 캐리어를 끌고 어디 돌아다니기도 힘들었으므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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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틀 하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그냥 제일 가까웠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적당하고 또 좋은 공간이어서, 여자가 스스로 난 꽤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기 충분했다. 가장 간단한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 가급적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테이블들, 없는 손님, 멀리 있는 손님 등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오후 다섯 시였던가, 여섯 시였던가, 생각보다 훨씬 더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다는 점만 빼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에어컨이 없어도 창문을 열어둘 수 있으니까 그만 됐다 싶은, 창문이 열려 있는 각도마저 마음에 꼭 들었던 더 리틀 하우스.


그곳에서 여자는 커피를 시켜두고 여행 중 읽으려고 가져온 책들을 다 읽었다. 미뤄둔 일기도 썼다. 문 닫을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여자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비엔티엔까지 와서 비엔티엔을 둘러보지는 않고 거기서만 그러고 있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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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곳을 떠나야 했을 땐 또 마침 인근에서 야시장이 슬슬 시작되고 있었고,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아봤을 땐 또 마침 강변으로 해가 지고 있었고, 해 지는 걸 조금 구경하고 있자니 또 마침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비를 피해 어느 카페로 가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자니 슬슬 공항으로 가도 너무 이르지 않을 시간이 돼서, 그냥 그렇게 했다.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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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냥, 육 주 동안의 여행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건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비행기만 타면 간단하게, 대여섯 시간이면 그 모든 것에서 한 순간에 돌아갈 수 있게 되는 세상이니까.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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