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아노

케이티 해프너 <굴드의 피아노>를 읽다가 문득

by Mihyang Eun


사람들이 조율사라는 직업을 향해 몰려들던 1900년대 초에 어떤 이들은 시끄럽고, 또 종종 불협화 상태인 소리에 늘 노출된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1904년 영국의 한 조율사는 빚을 크게 지는 바람에 고소를 당해 법정에 출두하여 판사로부터 왜 일을 그만두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거의 제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소음이었다." 그는 불평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정신병원에는 피아노 조율사의 수가 다른 어떤 직업에 속한 사람들보다 많았다.
에드퀴스트는 조율을 배우면서 자신에게 절대음감에 가까운 우수한 능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평생 수와 계절을 색깔로 보듯이 음악을 들을 때도 그와 똑같은 묘한 종합적 감각 혼합 시스템을 이용했다. 만일 그에게 F음이 어떻게 F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 그건 파란색이니까." C는 약간 석회 색깔이 섞인 녹색이었다. D 음은 모랫빛, E는 노란색을 띤 분홍색, A는 흰색, G는 주황색, B는 진녹색이었다. 그는 이런 비정통적인 방법을 부끄러워하여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다가 글렌 굴드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러자 굴드는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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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에 내 꿈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였다. 부자가 아니면 이루기가 더 어려운 꿈이란 걸 알았지만 열 살이면 그 정도 장애물은 자연스레 치워지게 돼 있다는 환상에 가까운 패기를 가질 법한 나이다. 여덟 살 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이 되던 열네 살 때까지 고집스럽게 학원에 나가다가 결국은 그만뒀다. 학원을 그만둔 직후에 음악시간에 반주를 하면서 오르간을 꾸준히 칠 수 있긴 했지만 집에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에 그 후로 십 년 동안 내가 피아노 건반을 만져본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끔 피아노가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피아노가 그렇게 쳐보고 싶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오로지 악보를 읽어 피아노를 치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화성만 보고도 자유롭게 반주를 한다거나 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글렌 굴드의 전담 조율사였던 베른 역시, 반드시 점자로 악보를 읽은 후에만 피아노 연주를 하도록 했던 선생의 지도 방식 때문에 결국 피아노 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악보를 보며 연주했던 곡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혔고 악보를 읽는 것조차도 더듬더듬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나마 악보가 없으면 피아노가 눈 앞에 있어도 칠 수 있는 게 거의 없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피아노를 보면 꼭 쳐보려고 했는데 한 번은 친구가 '시끄럽다'고 말했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굉장히 친하게 지내지만 당시에 받은 상처는 아직도 기억할 만큼 깊었다.

스웨덴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나는 운이 좋아 교내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본관까지는 자전거로 약 3분 거리였는데 학생증 카드만 있으면 늦은 밤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 대학교 본관 1층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됐을 때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피아노를 치러 갔다. 유일하게 구할 수 있었던 악보가 캐논변주곡이었고, 연습이 필요했으므로 학생들이 많은 낮에는 그 앞에 앉기가 창피했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학교 건물에서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완주를 하지 못하면서도 굉장히 행복했다.

열네 살에 학원을 그만두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 듣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주로 80년대 가요나 클래식 재즈, 브릿팝, 모던록을 들었기 때문에 글렌 굴드를 알게 된 것은 거의 십 년 후였다. 이성복 선생님이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라는 책을 추천해주셔서 책을 읽으며 글렌 굴드를 처음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깊이 공부한 것도 오래 들어온 것도 아니어서 듣는 귀가 없었음에도 글렌 굴드는 딱 한 가지만으로 굉장히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짚는 모든 음들이 너무 정확해서 연주를 듣고 있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이 아주 명확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가면, 맥북 할부를 다 갚고 나서 건반을 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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