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그 말의 용법과 용량

by Mihyang Eun

사운드클라우드로 음악을 듣던 중에 한 라이브파일에서 마지막에 "Love you"라고 인사하는 걸 듣고 멈칫했다. 그 버전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니면서 들을 때마다 거기서 의식의 렉이 걸리는 일이 반복됐다. 덕분에 '아, 나는 유명 팝가수가 열렬한 팬들의 환호성에 답하기 위해 심박수가 높을 때의 호흡으로 알러뷰 하고 외치는 건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인디 밴드가 잔잔한 노래 끝에 잔잔한 반응에도 이렇게 애정을 전달하는 것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런 편견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하는지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다. 내한 공연에서 두 팔로 하트를 그려 한국 관객에게 전에 없던 애정표현을 했던 에미넴을 두고 사람들이 '네 두개골을 쪼개버리겠다'는 뜻일 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평소엔 그런 말을 하지 않던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면 놀랍고 기쁘면서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일상적으로 친숙한 말은 아니었다. 어버이날 혹은 사과의 편지 속에서나 어렵게 어렵게 끄집어내는 것으로 발화를 익혔으므로,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했던 사랑해 게임ㅡ이젠 정확한 룰도 기억나지 않고 암튼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사랑해 하고 말해야 하는 게임이었던 것만 생각난다ㅡ은 나에겐 곤혹이었다. 당시엔 아직 연애 경험이 없어서 더 그랬다. 막상 연애를 처음 할 때도 이 정도면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맞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면 그 말은 내 혀끝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서구 영화나 드라마들은 그런 의미에서도 내겐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의 용법과 용량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거의 반대라고 할 만했기 때문이다.


당시 무척 촌스러웠던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보다는 애인에게 그 말을 더 많이 하는 편이며, 연인관계에서도 그 말은 곧 연애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고백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누군가가 어떤 이를 향해 더이상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키우다가 결국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시작되는 연애가 분명히 많았으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다. 연애라는 것이 항상 불행의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점의 차이라고. 한 사람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왜 참음? 하지만 나도 일단은 참는다) 고백을 해서 시작되는 관계는, 고백하는 당사자의 정점을 통과하는 가운데 시작되며, 상대의 고백을 계기로 그 상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사람의 경우는 그 이후에 감정의 정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결국 불행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거라고. 나는 지금 이만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처음보다 나를 덜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고 그것을 비교하기 시작할 때 불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내가 본 서구권 영화들에서는 모든 것이 반대였다. 그들은 애인보다는 가족에게 훨씬 더 많이 더 쉽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지, 해도 될지는 정작 관계가 어느 정도 지속된 이후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은 대체로 감정이 무르익기 전 가벼운 호감만 있으면 데이트를 시작하고 한 번 두 번 데이트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자라온 문화환경을 벗어나서 생각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래서, 나를 확실히,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으로 확인되지 않고, 그저 약간의, 가벼운 호감만을 보이는 남자와는 쉽게 관계를 맺지 못했다. 오히려 나에게 별 특별한 애정이 없는 남자들과는 친하게 지내도, 나에게 미약한 호기심이나 호감을 갖고 있는 남자들과는 왠지 거리를 두면서 살아왔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알지만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서운 게, 머리로만 알 뿐 실제로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괜찮아도, 나를 조금만 좋아하는 것은 허용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노래 한 곡 듣고는 생각을 이렇게나 마구잡이로 펼쳐나가는 이것도 참 병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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