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고 나면 더 끔찍한, 진짜 공포영화 [나를 찾아줘]
결혼 5주년 기념일에 닉의 아내 에이미가 사라졌다.
에이미는 왜 사라졌는가
그녀는 닉과의 관계에서 결혼 후 약 2년까지는 완벽하게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완벽한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키는 대로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더군다나 에이미는 퀴즈를 내어가며 남자가 어떤 게 정답일지 고민하게 만드는 여자가 아니었다. 넥타이도, 시계도 그저 골라주는 대로만 하면 에이미를 화나게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닉은 에이미를 화나게 했고 에이미는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갚아주기 위해 사라졌다.
에이미는 왜 화가 났나
에이미가 닉에게 그토록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얼핏 보기엔 바람을 피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에이미가 닉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 진짜 계기는 어머니가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고 닉이 에이미와 상의 없이 미저리로의 이사를 결정했을 때라고 생각된다.
이전까지는 닉의 중심이 에이미였을 테지만, 이때 중심이 엄마에게로 옮겨간다. 낳고 키워준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자식이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에이미는 닉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 자체에 저 깊은 곳으로부터의 분노를 느낀다.
이후 드러난 이전 연애의 패턴을 보아도 에이미는 모든 관계에서 명확하고 독점적인 주도권을 갖고자 했다.
에이미는 왜 연인들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하나
많은 여성들이 아마도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남자를 내 뜻대로 컨트롤하는 것. 그러한 통제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기보다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에이미는 보통의 여성들보다 연인을 직접 통제하고자 하는 성향이 더욱 강하다. 이는 작가인 어머니가 만들어낸 '어메이징 에이미'의 영향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가 항상 자신의 삶을 앞질렀다는 말을 한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아이가 자라는 모습 그대로를 지켜보고 사랑해주었을 텐데, 작가였던 에이미의 엄마는 딸의 성장과 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앞지르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미리 만들어뒀던 것이다.
에이미가 남자들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한 것은 정작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지 못하고 엄마가 만들어놓은 어메이징 에이미에게 늘 추월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이미가 조금만 덜 똑똑하고, 조금만 더 평범했더라도, 그러한 유명세를 별생각 없이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어메이징 에이미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 크고 나서도 어느 정도 엄마가 원하고 매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인터뷰에 응해주는 에이미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결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결혼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결합인 만큼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나로서는 아무래도 닉의 편으로 기운다. 예쁘고 똑똑해서 에이미에게 끌렸다는 닉이 다소 멍청해 보이는 큰 가슴을 가진 어린 여자에게 빠진 것도, 에이미의 통제 속 삶에 대한 갑갑함의 반작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가 봐도 백치미가 넘치는 앤디와 만나면서도 닉이 앤디에게 꿈을 가지라고 설교하고, 그 말을 들어 앤디가 연극을 했다는 것을 보면 닉은 여자에 대한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에이미가 조인 숨통을 앤디에게 가서 틔웠던 것 같다. 에이미와의 관계에서 상실했던 주도권을 확실히 회복하기에는 사제지간만 한 관계도 없지 않나.
그렇다면 어디서부터가 에이미의 대본인가
미저리로 온 이후는 모두 에이미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처음 미저리로 이사한 후 자신이 잘못 챙긴 짐처럼 느껴진다는 에이미의 일기는 전반부의 입장에서 보면 몹시 애잔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역시 에이미의 관점이거나, 에이미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낸 이야기의 일부로 해석 가능하다. 오히려 닉은 에이미에게서 멀어지는 마음을 아이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이를 거부한 것은 에이미인데, 이것이 닉에게 벌을 주기 위함인지, 자신만이 중심이 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다.
결혼기념일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선물을 주고받고 퀴즈를 풀던 두 사람은, 결혼 5주년 숙제의 주제로 '에이미'를 받게 된다. 답을 찾지 못한 4주년 때부터 이는 이미 예고된 바였다. 에이미가 스스로 명확하게 자신이 닉의 주인임을 인지하고 있을 때는 굳이 자신이 퀴즈의 중심이 될 필요가 없었지만, 4년 차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던 거다. 마침내 닉이 아예 정답을 못 맞히는 상황이 되자 다음 해는 에이미 자신이 퀴즈가 된다.
에이미는 왜 돌아왔는가
다른 사람들의 평을 보니, 에이미가 돌아간 것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닉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에이미가 닉의 그 말들을 진심이라고 믿을 만큼 멍청하거나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보고 에이미가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고 돌아가기 위한 시나리오를 다시 쓴 것은, 그 상황에서의 새로운 시나리오가 떠올랐기 때문일 뿐이다.
그 인터뷰를 한 후 닉과 마고, 변호사가 모두 흡족해하지만 이때도 에이미는 한 수 위였다. 닉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에이미를 찾고자 했고 그 작전에 에이미가 넘어왔다고 믿겠지만, 어메이징한 에이미는 오히려 닉의 어설픈 시나리오에 착안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돌아가서 다시 둘의 관계를 완벽한 자신의 통제하에 놓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이를 행동에 착착 옮긴다.
에이미와 닉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에이미라는 이름이 화면에서 타이트하게 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 'aim'이라는 단어를 품은 에이미의 이름과 '던'이라는 발음을 가진 던의 이름 또한 상징성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에이미의 명확한 조준과, 정해진 결말.
태어나기 전부터 닉과 함께였던 마고가 에이미를 싫어했다는 것은 본능적인 자기방어였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에 비친 언론과 마녀사냥 등에 대해서는 워낙 리뷰마다 언급됐으니 굳이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조차도 이야기와 에이미라는 캐릭터를 보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왜냐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나 원작자가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한 황색 저널리즘이나 여론몰이 자체를 다루고자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라지만 이 영화의 힘은 두 주인공 캐릭터에 있다고 본다. 모든 놀라움과 반전과 스릴과 공포 역시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에이미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에 엄지를 들지만, 곰곰이 곱씹을수록 벤 에플렉의 연기야말로 놀랍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찌 보면 불쌍하고 어찌 보면 나쁘고 어찌 보면 멍청하고 어찌 보면 평범한 이 남자가 겪는 이 어메이징한 결혼생활과 갖가지 감정들을 오버하지 않고 너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에이미의 실체를 모르고 보면 나빠 보이고, 알고 보면 불쌍해 보이는 이 남자를,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만드는 연기야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력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