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바뀌어 버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야기가 달라지면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사라진다. 이야기를 매개로 이어진 관계는 끊어진다. 끊어진 다리 저 너머에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고 끊어진 다리 이쪽에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사람이 있으며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는 끊어진 다리 저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이야기'는 '약속'일 수도 '계획'일 수도 있다.
지나간 일 년 동안, 우리 사이의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추락해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잃는 것이 많아지는 일이 꾸준히 반복되는 동안 그렇게 일 년이나 되는 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내일이면 내일이 아니라도 모레면, 결국은 사라지고 말리라는 불신에 대한 확신은 우리 사이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균열은 시간이라는 톱질을 거쳐 무너지는 다리가 되고 만다.
언젠가 무너질 다리 위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을까. 다리가 무너질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두려움 없이 그 위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본능적으로 다리의 중심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려 애쓰다가 결국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리가 무너지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전에, 먼저 도망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해야 할까. 우리의 이야기가 언젠가 우리가 딛고 선 아슬아슬한 다리 위의 틈을 메우고 더욱 단단해질 수도 있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도망가지 않는다는 상대방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이번에는 끝까지 무너진 다리 위에 망연자실 혼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내가 먼저 도망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