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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an 19. 2017

그을린 사랑(Incendies)

you and whose army? 최고의 오프닝 [그을린 사랑]


감히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오프닝 시퀀스라고. 많은 사람들은 충격적인 결말을 이야기하지만 [그을린 사랑]은 이미 오프닝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선명한 초록도 아닌, 아름답고도 축축해보이는 그 초록에서 시작해 그 아이의 발뒤꿈치와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와 카메라를 무표정하게, 하지만 똑바로 응시하던 그 아이의 눈빛. 영화가 바로 거기에서 끝이 났어도 나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냐"고 욕하지 못했을 것 같다. 모든 걸 다 말해주는 눈빛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을린 사랑]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강렬하게 시작된 이야기니까 더 강렬하게 끝내야했을까.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극장 안 사람들은 참지못하고 소리를 냈다. 마지막 진실마저 모습을 드러냈을 땐 극장 안이 병원 같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진실에, 관객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함께 영화를 본 이는 구토증세와 복통을 호소했다.


감독(연극의 원작자라고 해야하나, 암튼)은 왜 이렇게 뒤엉킨 편집과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관객들에게 줬을까. 기교가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게 이윤 아닐 거다. 이렇게 '말도 안 돼!' 라고 할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만들어내는 것이 전쟁이고 그렇게 처참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거나 '낯설다'거나 '원래 그래왔던 거야'라는 단순한 생각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전쟁통에는 말 되는 일보다 말 안되는 일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이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마음 먹었을 때 이것보다 더 약한(?) 결말은 생각하진 못했을 거다. 그러므로,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고 해서 이 영화에서 보여준 진실을 '영화니까 가능한 진실'이라고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뼈아픈 이야기이기에, 감독은 차분하게 순차적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보여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이었더라도 아마 이 얘기, 저 얘기가 시간 순서와 상관 없이 뒤죽박죽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현재의 쌍둥이와 엄마의 상사이자 친구인 공증인 아저씨의 행보와 그들의 기억과 엄마의 기억이 마구 뒤엉킬 수밖에, 달리 수가 없었을 거다.



여기에 중동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복잡한 도시, 빽빽한 인파 속에서도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비참한 삶은 비참하지만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라면 그 비극이 대조적으로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 과연 이 땅은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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