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도 더 전에 쳤던 피아노 악보집 하나를 대구 집에서 들고 왔다. 여태 갖고 있던 악보집 여러 권 중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열 살 때부터 열네 살 때까지 매일 같이 꾸준히 치던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지도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어버려서, 건반을 샀는데 악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치지를 못한다는 내게 친구가 악보들을 보내줬지만 그것들은 쉬이 내 손에서 노랫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피아노인데, 물론 진짜 피아노가 아니라 유사 피아노, 의사 피아노, 아날로그 피아노 소리를 흉내 내는 디지털 피아노지만,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산 피아노인데, 사서 처음 며칠은 매일 같이 하루 한두 시간씩을 꼬박꼬박 연습하다가 그냥 덮어만 둔 채로 그렇게 한 달도 넘게 지났다. 예전에 한번도 내 손가락으로 소리를 만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들을 건반 위에서 짚어보다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채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흥미는 자만심에서 나온다.
대구에서 엄마 몰래 가져온 책은 태림사에서 나온 '새로운 피아노 명곡집'이다. 엄마 몰래 가져온 이유는 아직 엄마한테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말하지 못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엄마가 왠지 내게 피아노를 사주지 못한 것을 아직도 마음 아파하고 있을 것 같아서이고, 두 번째는 돈 모아서 시집가야 하는데 자꾸 이렇게 써제낀다고(때로 사투리는 대체 불가능한 언어가 된다) 걱정(이 된 나머지 잔소리를 퍼부을까 봐)하실 것 같아서이다. 언젠가 엄마가 읽을 이 글이, '엄마 나 피아노 샀어.' 하고 본론으로 훅 들어갔을 때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인 완충제(역할을 하는 구구절절하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긴 글)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가져온 책 위에 붙은 견출지에는 내 이름이 아닌 '진희'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다.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도, 나이도, 생김새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지만, '진희'는 아마도 책을 학원에 두고 멀리 이사 가버렸을 것이다. 책을 매일 학원에 두고, 매일 학원에 와서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다시 학원에 올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이사를 가게 됐을 것이다. 그 책은 그렇게 학원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가, 깜빡하고 집에서 책을 들고 오지 않은 누군가에게 잠시 빌려졌다가, 결국은 나에게 왔을 것이다. 당시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나를 유난히 더 챙겨주셨던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 몰래 내게 주었을 것이다. '진희'에 대해서는 정말 까맣게 잊었는데도 나는 '진희'를 기억하는 것만 같다. 책 위에, 단단히 붙은 견출지 위에, 볼펜으로 써놓은 '진희'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진희 언니'라는 두 마디가 입술 끝에 떠올렸다. 내 기억 속에 없지만 아마 '진희 언니'가 맞을 것이다. 만난 적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언니.
책을 펼치고 두 시간이 넘도록 연습했다. 예전에 쳐본 곡들은 이십몇 년만에 치는데도 손가락 끝에 남아있었다. 물론, 빨라지고 변조되기 전까지만.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다시 짚고 더듬고 하느라 여전히 악보는 완전한 한 곡이 되어 나오지 못했지만 처음 쳐보는 악보들을 읽고 따라 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자꾸 틀리게 짚으면서도 크레센도나 데크레센도, 포르테, 피아니시모 같은 강약 기호가 눈에 띄면 무대 위 피아니스트가 된 거처럼 몸을 숙이고 손가락 끝에 힘을 줘가며 신나게 연습하고 또 했다. 따로 떨어져 있어 자꾸 도망가는 페달을 힘차게 밟고 또 밟았다. 마침내 왼손 새끼손가락이 부어올랐고, 양 팔과 오른쪽 다리가 조금 떨리기 시작했을 때 책을 덮고 전원을 끄고 커다란 천으로 다시 건반을 덮었다. 마치 각성제를 먹은 직후처럼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저릿한 새끼손가락을 주무르며 잠시 앉아있었다. 엄지로 새끼손가락을 꾸욱 꾸욱 눌렀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납작하던 치약 튜브에서 생각보다 많은 양의 치약이 쑤욱 나오듯이, 아빠 생각이 쑤욱 나왔다. 어설프게 피아노 건반을 짚던 새끼손가락에서 아빠에 대한 생각이 쑤욱 나왔다. 며칠 전 차례상 앞에서도 아빠 생각이 안 났는데, 그저 상 위에 엄마가 한 제사음식들을 올리고 대충 절만 했는데, 새끼손가락을 누르니까 아빠 생각이 났다.
너무 오래 아빠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너무 오래 아빠 없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며칠 전 미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서 한 배우와 찍은 사진이 올라온 것을 봤다. 분명 외국인인데도 이상하게 아빠와 닮아서, 친구에게 우리 아빠 사진과 그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짜 닮았지? 그랬다. 친구는, 진짜 닮았네, 그랬다.
며칠 후는 아빠의 기일이다. 아빠는 음력 일월 초이레에 돌아가셨다. 설 차례상을 차리고 엿새 만에 다시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 연휴가 끝나고 서울로 왔다가 사나흘 만에 다시 대구로 가야 한다. 이제는 살아서 곁에 계신 엄마가 고생하시는 게 싫어서, 연휴 지난 지 얼마 됐다고 며칠 만에 다시 휴가를 쓰는 게 마음 편치 않아서, 오늘 퇴근길에는 조금만 더 늦게 돌아가시지,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만이라도 더 계시다 돌아가시지... 그래서 아빠가 내 부어오른 새끼손가락 안에서 쑤욱 나왔다보다.
불과 오 년 후면, 내 나이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살아본 나이가 된다. 그것도 겨우 일주일밖에 못 살아본 그 나이가 된다. 당시 아빠는 너무 젊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