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극장에서, 그리고 낯선 사람과의 사이에서
팔걸이는 누구의 것일까.
낯선 사람과 나란히 앉았는데 가운데에 팔걸이가 하나뿐이면 나는 그것이 팔걸이가 아니라 경계선이라고 여긴다. 낯선 사람과의 사이에 팔걸이가 하나뿐일 때는 그만큼 공간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고, 팔꿈치는 뾰족해서 아무리 살짝 걸쳐도 일단 올리면 옆사람에게 닿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팔을 올리고 보는 것 같다. 먼저 올리는 사람이 장땡인 것이다.
대부분은 사람마다 팔이 두 개인데, 간장종지를 두 사람 당 하나만 주는 인심 사나운 초밥집처럼 두 사람 당 팔걸이가 세 개인 공간들이 있다. 그것도 머무는 시간이 긴 편인 기차칸이나 극장 같은 곳들. 기차여행이든 영화관람이든 아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있었던 것인지, 단지 공간의 효율 때문인지 몰라도 꽤 불편하다. 그나마 극장의 경우는 몇 년 전 개그콘서트에서 자기 오른쪽에 있는 컵홀더를 사용하자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줬고 나는 혼자서나마 그 약속을 규칙으로 생각하며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근거로 만들어진 약속이라 왼손잡이인 사삼들이게는 폭력적인 결정일 수 있지만 일단 합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단 좋았다. 나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서 가습적이면 왼쪽 가장자리를 예매하려고 하는 편이고. 다시 개콘(코너 이름이 뭐였더라)에서 기차 가운데 팔걸이 문제를 논의해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팔이란 건 앉아있는 동안은 꽤 거추장스러운 신체부위다. 어딘가에 올려놓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해야할지 좀 난감하다. 그래서 나는 옆자리에 엄마나 애인이 있으면 팔걸이를 올려서 없애버리고 손을 잡는 편인데, (친구의 경우 서로 팔꿈치가 닿아도 관계 없으니 서로 엇갈리게 팔을 올리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그것도 귀찮게 여기는 기색을 느껴본 바 없지 않아 가운데에 하나뿐인 팔걸이에 대한 곤란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낯선 사람과의 사이에 놓인 가운데 팔걸이는 누구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