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yang Eun May 22. 2017

라카는 조용히 도살당하고 있다(RBSS)

2017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 - 유령의 도시

내가 기억하는 시리아


우리에게 타국이란 기껏 여행의 장소, 친구나 친척이 있는 나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상관있는 누가 살고 있지도 않고 언젠가 여행하기를 꿈꾸지도 않는 타국이라면, 국제 경기의 상대국 혹은 뉴스에 등장하는 분쟁국 정도로 기억되거나 평생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시리아'라는 나라를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일했던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처음 구체적으로 인지했다. 당시 나는 전 세계 전시 주관사와 연락해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미국 CES나 스페인 MWC, 독일의 IFA 같은 곳과 파트너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지만 각국의 가장 대표적인 전시회에 두루 연락했다. 그러다가 시리아의 한 전시 주관사와 연락이 닿았고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시리아에서 열릴 전시회에 공식 초청하겠다는 답을 얻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시리아는 여행 유의 국가에서 여행 자제 국가가 되었다. 시리아 내전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건 2013년이었지만 2011년 시리아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이후 유혈 사태가 빈번해졌다. 결국 우리 쪽에서 방문이 어렵겠다고 거절했는지, 그쪽에서 먼저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초대하겠다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내가 기억하는 시리아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시리아일 것이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시리아 난민, 단지 '시리아 난민'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앞에 너무 생생한 참상의 증거로 나타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 차마 다시 떠올리기조차 괴롭고 죄스러운 그 아이, 그리고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난민들.


심지어 나와 몇 번이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때마다 서로 이름을 불렀던 그의 이름을 나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고 생사도 알지 못한다.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 '유령의 도시(City of Ghosts)'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유령의 도시'라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 건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유령의 도시'는 시리아 내전 이후 자칭 이슬람국가(IS)가 수도로 삼은 시리아 라카(RAQQA)에서 활동하는 시민 저널리스트 단체 '라카는 조용히 도살당하고 있다 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 (RBSS)'의 목숨을 건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40년 간 지속된 알아사드 독재에 신음하던 시리아에도 혁명의 물결을 일으키지만, 끝없이 이어진 내전의 결과 이 평범한 시민들의 고향 '라카'는 IS라는 지상 최대의 극악한 테러조직의 근거지로 전락하고 만다. 세계적인 통신사들마저 모두 철수한 뒤에 철저하게 고립된 이 유령의 도시에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글 한 줄, 사진 한 장을 전송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유를 향한 갈망 때문이다. (맹수진 예선심사위원)


민주화를 위해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싸우지만 이 틈을 노리고 시리아 접경지대로 세력 확장을 꾀한 무장단체 ISIS에 점령당하는 또 다른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미완의 민주화운동



우리나라는 최근 새로운 대통령을 뽑으며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 정권교체의 의미는 무엇보다 촛불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혁명이 미완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평을 읽었다. 우리에게는 5.18 민주화운동도, 6.10 민주항쟁도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도 결국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정부를 세우지 못해 미완으로 남긴 뼈아픈 역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게 유혈사태 없이 역대 가장 많은 국민이 동참한 평화시위를 바탕으로 대다수 국민의 원하고 많은 국민이 지지하는 정부를 출범시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그 문장을 통해 더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역사공부가 부족해서 눈 앞에서 일어나는 대단한 역사적 사건들과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그 가치나 의미를 그만큼 적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해석이 그만큼 와 닿았다.


더불어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통해 혁명 이후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고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유령의 도시'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몹시 아팠다. 40년이나 되는 군부독재로부터 완전히 주권을 회복했어야 할 중요한 아랍의 봄에,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낸 민주화 운동 끝에, 그보다 더 극악무도한 극우 테러 단체에 고향을 빼앗기고, 자유와 인권을 빼앗기고, 더불어 친구와 가족까지 잃게 된 시리아, ISIS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라카 주민들의 삶은 매일이 인간답지 못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고 있었다.


또 다른 안타까움은 군부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해나가는 방식이 수십 년 전 우리나라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공포정치를 무기로 삼지만, 점차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점령하기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만이 유통되도록 미디어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시리아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사기극을 꾸며 내보내고, 처음엔 조악하기 그지없었던 선전물이 점차 헐리우드 못지않은 테크닉을 모방해나가 어린아이와 극우주의자들을 군대에 동원한다. RBSS라는 시민 저널리스트 단체가 목숨을 걸고 시리아의 참상을 전 세계에 보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목숨을 건다는 것



목숨을 건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삶에 목숨을 걸만한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을 그저 수사로, 비유로, 습관적으로 쓸 수 있다.


목숨을 건다는 말이, 언제고 자신의 정체와 위치가 발각되기만 하면 곧장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90분 남짓한 이 영화에서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신념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고,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 목숨을 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건 시리아 라카의 현장과 RBSS의 대원들이 숨어 활동하는 터키며 독일 안전가옥에서 그들을 밀착 취재하는 '유령의 도시'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이 만약 극영화라면 결국 영화가 끝날 때쯤엔 그 고귀한 투쟁의 결과 평화와 민주화가 찾아올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그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RBSS의 대변인인 아지즈가 말하듯, 라카에서 ISIS를 몰아낸다고 해서 이 싸움이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비극인 상황에까지 우리는 와 있다. ISIS의 세력은 더 이상 시리아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선전에 넘어간 극우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건 더 이상 시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힘들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일종의 사전 도피다. 극영화는 그것이 아무리 있을 법한 일을 그려내고 아무리 우리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한들 어쨌든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러기가 힘들다. 외면하고 싶고, 모른 척 살고 싶은 수많은 비극들이 주로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일단 보고 나면 최소한의 반성이나 죄책감, 혹은 책임감 없이 영화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 이래봐야 결국 나는 또 언제나처럼 시리아의 이 비극은 잊고 내 작은 고통과 괴로움에 연연하고 온통 집중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굳이 찾아보는 일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편협한 인생을 살아가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인생의 제동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구절절 글까지 썼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잊지 않고 그들이 목숨 걸고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그 소식의 구독자가 될 것이다. 최소한 그 정도의 양심과 책임감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애쓰게 되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서울환경영화제는 오는 24일(수)까지 이화여대 ECC 삼성홀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계속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