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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Sep 10. 2017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네 시간 환승 대기

퍽킹 입국심사원

샌프란시스코에서 네 시간 환승대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관문이라며, 제 아무리 공항에서 환승하는 사람이라도 그냥은 못 간다 한다. 미국 비자(eSTA)도 있어야 하고, 짐도 찾았다가 다시 부쳐야 하고, 역대 가장 불쾌한 보안검색 통과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네 손가락 + 엄지손가락 순서로 양 손가락 지문 열 개를 다 찍어야 했는데, 지문 찍는 기계가 얼마나 둔한지 잘 안 찍혀서 입국심사원이 볼펜으로 손가락을 몇 번이나 눌렀다. 처음엔 참다가 나중에 너무 기분 나빠서 아프다고 소리 쳤더니 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 찍혀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길래 말로 설명하라고 했다. 그 다음 바로 사진 찍었는데 다 끝날 때까지 내내 노려봤더니 끝까지 눈도 안 맞췄다. 아, 마지막으로 이걸 묻긴 했다. 가방에 음식 없냐고, 없댔더니, 김치 같은 거 없냐고 재차 물었다. 미친놈. 미국 관문 들어오자마자 불쾌함의 극치를 맛보고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친절해서 걸으면서 조금씩 기분이 회복됐다. 볼펜으로 짓눌려서 붉어진 손가락도 조금씩 원래의 색을 찾아갔다.



나오자마자 서점이 있어서 책 구경 실컷 하고, 할인코너에서 책 한 권 샀다. 욕심 부려봐야 원서를 얼마나 잘 읽을까 싶어서 딱 한 권을 골랐다. 춥다는 핑계로 래글런 티셔츠도 한 장 샀다. 공항 밖엔 못 나가도 미국 비자까지 받았으니 기념품 겸 가슴팍에 살포시 샌프란시스코가 쓰인 것으로 골랐다. 황소도 한 마리 그려져 있다.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지만 캘거리 공항 도착하면 바로 렌터카를 픽업해야 하니까 참는다. 대신 걸어서 세계 속으로, 말고 걸어서 공항 속으로, 구석구석 다 다녔다. 탑승까지 두 시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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