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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Sep 05. 2017

게을러서가 아니다

게으른 건 맞지만


농도와 두께가 일정하고, 튀어나간 곳 없이 매끈하게 발린 매니큐어도 예쁘지만 그것보다는 그렇게 못 바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못 바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군데군데 불규칙적으로 까진 채 남아있는 게으른 건 맞지만 게으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니큐어의 흔적을 좋아한다.


비록 업무 미팅 자리라든가 별로 가깝지 않은 관계의 사람에게 보일 때는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까진 걸 지우지도 덧바르지도 않고 둔 걸 게으르게 볼 것 같고, 나는 게을러 보이는 게 별로 부끄럽지는 않지만, 왠지 낯선 사람에게는 그렇게 비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은 이게 예쁘다고 생각 안 할 거라는 내 편견(?) 때문일 수도 있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매니큐어가 가장 먼저 까지는 것은 오른손 검지, 그다음 왼손 엄지 순이다.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 위의 것은 자라서 올라올 뿐 웬만해서 벗겨지는 일이 없는데, 그래서 새끼손가락 너는 하는 일이 뭐냐고 비난할 일이 아닌 게, 걔는 약속할 때도 쓰고 엔터 칠 때도 쓰는 것이다. 가끔 새끼손가락이 욱신거리는 걸 보면 알게 모르게 또 많은 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니큐어가 벗겨지는 걸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내 손가락 하나하나의 쓰임도 알 수 있고, 시간의 흐름성(?)도 알 수 있고, 여러 모로 유익하고 교훈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아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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