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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Sep 05. 2017

캘거리, 밴프국립공원

캐나다로 D-4

캐나다 관광청 페이스북 계정 때문이었다. 처음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 가고 싶은 곳은 캐나다가 아니었다. 가고 싶은 장소가 되기에 '캐나다'라는 이름은 물리적으로도 너무 크고 관념적으로도 역시, 너무 크다. 큰 것은 구체적인 욕망을 특정하지 못한다.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캐나다가 아니라 캐나다 관광청 페이스북 계정에서 올린 사진 속 바로 그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중남미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고,  ㅡ기억하기로 딱 한 번 생각해봤는데 그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봤을 때였다. 어쨌든 거기도 로키산맥, 여기도 로키산맥, 같은 산맥 아래 놓여있으니 인간들이 굳이 여긴 미국, 여긴 캐나다 하고 나누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딱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그곳에까지 가게 되는 셈인 것 같다.ㅡ '캐나다' 하면 보통은 밴쿠버를 많이 떠올리니까, 사진을 봤을 당시 거기가 어딘지 몰랐고 그러니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그때 저기에 가야지, 저기에 가려면 저곳의 이름을 알아야지 하면서 단 하나 기억해둔 이름이 '밴프국립공원'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캐나다 관광청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가장 많은 사람들을 유혹할 만한 장소의 사진을 찍어 올렸을 거라 가정해보면 그곳은 레이크 루이스, 루이스 호수였을 것 같다. 지금 기억하는 것은 커다란 산 깊숙한 한가운데 에메랄드빛 호수와 호수를 빽빽하게 둘러싼 침엽수들의 이미지뿐이지만, 아마 그것은 레이크 루이스였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오래 고민하는 편이 아닌 나는 그렇게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때는 일 월이었고, 예매한 때는 구 월이었나. 추석 연휴를 끼고 다녀올 생각이었으니 대략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해에 나는 뜻하지 않게 재입원을 했고,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했고, 병가를 냈고, 병가 후에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밴프국립공원에 못 갔다. 거기 갈 거라고 들떠서 자랑한 것에 관한 이야기가 회사 경영진에게 들어가 ㅡ간접적으로ㅡ 욕만 먹고 끝났다.


그게 이천십오 년의 일이었으니까, 우와, 나는 굉장히 오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2년여 전의 일이었다. 그 후로 여행지를 정할 때도 항상 밴프국립공원을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다. ㅡ오늘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지만 돈이 없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돈과 에너지가 있지만 시간이 없고, 노년이 되면 돈과 시간이 있지만 에너지가 없다는ㅡ 아직은 노년이 아닌 내 경우 에너지의 문제는 아니었고 대체로는 가진 돈과 누릴 시간의 불균형 때문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지난 화요일 오후에 갑작스레 시간이 생겼다. 물론, 나는 현재 여행 필요조건의 세 가지 중 에너지와 시간을 갖췄으니 돈에 있어서 균형을 잃은 상태지만 갑자기 생긴 게 돈이라도ㅡ물론 넘치게 생길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ㅡ, 시간이 없으면 못 가는 게 여행이니까 기꺼이 기쁘게 그 갑작스러운 시간을 끌어안았다.


그날 밤, 나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숙박을 알아보고 렌터카를 알아보고 캐나다 입국을 위해 필요한 eTA(Electronic Travel Authorization)까지 거의 세 시간 만에 다 계획을 마무리했다. 출국까지 겨우 열흘 남짓 남았으니 같이 갈 친구 없나 물어보고 함께 결정할 여유가 없었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만큼 좋아한다는 것도 이유였고.


한국에서도 차가 필요할 땐 주로 쏘카를 이용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운전을 하지 않을뿐더러, 총 운전 횟수나 시간이나 경험이 많지 않은 터라 렌터카를 결정할 때는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막상 조언을 참고 삼아 예약하고 나니 그것도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국제면허증 발급에 필요한 증명사진의 사이즈가 올해 6월부터 일반 증명사진 사이즈에서 여권사진 사이즈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찰서까지 갔다가 한 번 허탕을 쳤고, 급하게 여권사진을 찍으려다가 지하철에서 만 원, 가격도 안 알아보고 덜컥 회사 근처 스튜디오에 갔다가 거기서 사만 원, 정말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 여권사진 14장을 얻는 데 사만 원을 쓰긴 했지만 그건 내 여행의 필요충분 중 하나다. 안 써도 될 돈을 쓰고 안 써도 될 돈을 썼다고 아까워하는 것.


이제 며칠 뒤면, 오래 기다렸던 여행지로 간다. 숙소도 캘거리에 도착하는 첫날을 빼고는 모두 국립공원 내에 있는 것으로 잡았다. 들어가서 도시로 나오지 않고 작은 마을과 국립공원 안에서 오롯이 일주일을 보낼 예정이다. 호수만 있어도 며칠은 가뿐히 기쁘니까 아마 일주일로는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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