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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Sep 13. 2017

나는 왜 혼자 여행해?

이유가 있다

"여기서 travel(여행)의 어원이 travail(노동, 고통, 출산)이라는 점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 레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중


내게 혼자하는 여행은 "완전한 혼자를 즐기기 위해 혼자라는 노동과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브런치 검색유입어 보는 건 재미있다. 그중에 꽤 많은 것이 "여자 혼자 (지명) 여행"이다. "남자 혼자 (지명) 여행"은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여자고, 혼자 여행한 경험을 브런치에 남겼기 때문에 "남자 혼자 (지명) 여행"을 검색했을 땐 다른 브런치나 다른 블로그가 상위에 노출돼 그쪽으로 "유입"됐을 거고, 그래서 내 브런치 유입검색어로는 거의 볼 수 없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특히 여자가 더 많이 "혼자 하는 여행"을 검색해본다고 주장할 순 없겠지만, 확실히 여자의 외모를 갖고 혼자 여행하는 것의 두려움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는 사람들의 심리에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 아닐까.



나 역시 비슷한 검색을 해본 적 있는 경험자로서, "여자 혼자 ••• 여행" 가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울까?가 아니라 "여자 혼자 ••• 여행" 가면 위험하진 않을까?가 수많은 '예비 여자 혼자 여행자'들의 걱정이었을 거로 짐작된다. 그러니, 내 브런치로 유입됐다면 결과적으로는 안심하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을까 은근한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혼자라는 노동과 고통"을 충분히 감당할 준비는 필요하다.

혼자 여행 오면, 혼자 여행 왔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장소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다. 요즘은 그냥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완전히 잊지 않은 게 다행인) 영어실력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에는 대체로 한계가 있고, 회화연습하러 여행 온 건 아니니까 그저 그런 여행자 대화를 반복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2년 전 라오스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랬는데 너무 모든 게 잘 맞아서 라오스 여행 전체를 같이 할 정도로 편하고 잘 통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내 경험으로는, 흔히 오는 만남이 아니다. 대체로는 일회적이고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관계들이다. 그러니까 예상치 못한 새로운 관계맺음에 대한 기대를 배제한 홀로 여행은 정말로 모든 것과 동떨어져 혼자서,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 안 하고, 가고 싶은 데 가고 가기 싫은 데 안 가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에는 한다.

어쨌든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라는 고통과 노동을 견뎌야 하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한다.




내 경우는 오늘 온천에 갔을 때가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는 것 같아서 뻘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가져간 책을 읽었고 그곳에서 바로 저 구절, "여기서 travel(여행)의 어원이 travail(노동, 고통, 출산)이라는 점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를 읽었다. 책에 빠져들면서 다시 혼자라는 걸 즐기며 감사하게 됐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미 이틀 전 노를 저으며 온통 물에 젖어 불어버린 책이 또 젖는 건 싫어서 책을 덮었다.



바로 그때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대화는 평범했다. 왜 혼자 왔는지, 혼자 하는 여행이 왜 좋은지, 캐나다는 처음인지, 며칠이나 머무는지, 한국에도 온천이 있는지 같은 하나마나한 대화를 나눴고, 결국 나는 예정보다 일찍 온천을 떠나왔다.



여행을 하며 특정 음식을 먹거나 특정 장소에 가면 각각 떠오르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함께 먹는다면, 함께 본다면 좋았을 사람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 모든 순간에 내내 함께 해도 좋았을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가 있었다면, 혼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상당수의 일들과 그것들을 할 때의 자유로움, 마음편함 같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또 좋은 것 중 하나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거의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고, 그것들을 거의 바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인데, 너무 기니까 이만 줄인다. 돌아가서 찬찬히 정리해봐야겠다(라고 적었지만 아마 안 하겠지.. 여기까지 다 읽은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하루종일 추위에 떨다 온천에서 온몸에 온기충전하고, 가까운 호수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혼잔데, 아무도 없으니 더 좋았다. 거기엔 두 명의 잭이 있었는데.. @투잭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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